웃음으로 마음 열게 하고 눈물로 상처 씻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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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일보|
작성일2020-0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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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미션어워드 ‘올해의 목회자’ 김의식 치유하는교회 목사
김의식 치유하는교회 목사가 지난 10일 서울 강서구 교회 목양실에서 20여년 이어온 치유목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웃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눈물로 상처 난 감정을 씻긴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치유하는 목회’다. 국민미션어워드 올해의 목회자로 선정된 김의식(62) 치유하는교회 목사를 지난 10일 서울 강서구 교회 목양실에서 만났다.
김 목사는 2000년 분란이 한창이던 화곡동의 이 교회에 부임해 54건의 고소·고발을 겪었다. 20년간의 치유 목회로 현재는 갈등을 대부분 봉합하고 출석 성도를 5000명으로 늘리며 교회를 배로 부흥시켰다. 김 목사에게 치유 목회의 본질과 비전에 관해 물었다.
-어린 딸을 사고로 잃은 경험부터 말씀해 달라.
“노량진교회에서 전도사로 있던 1987년이다. 딸은 만으로 다섯 살이었다. 전도사여서 새벽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일이 반복됐고,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 딸이 감기에 걸렸다. 약을 먹여 재우고 기도해 준 뒤 잠깐 집사람 일을 도우러 밖에 10여분 다녀온 사이였다. 잠에서 홀로 깨어난 아이가 난간에서 떨어졌다. 북아현동 3층집 셋방이었는데, 내가 자리를 비워 그렇게 됐다. 딸 아이 장례를 치르며 교인들로부터 큰 위로를 받았다. ‘저는 첫째를 잃었어요’, 다른 분은 ‘저는 막내가 그렇게 됐어요’라며 다독여주셨다. 그때 로마서 12장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으로 치유 목회의 소명을 받았다. 이후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목회상담학 석사를, 시카고신학대학원에서 가족치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카고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목회하다 귀국해 호남신학대에서 3년여 강의했고, 2000년 당시 ‘화곡동교회’이던 지금의 치유하는교회에 부임해 이제 20년이 됐다. 귀국 직후부터 정태기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과 함께 크리스천치유상담연구원 등에서 강의하며 치유 목회를 전하고 있다.”
-교회 갈등은 어떻게 치유된 건가.
“교회 관리집사들과 일부 장로가 분란의 핵심이었고, 3명이 당회에서 출교를 당했다. 해고 소송 등으로 대법원까지 올라간 끝에 교회가 승소했다. 그중 한 분은 다시 교회로 돌아오셨고, 다른 한 분과도 화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잘못한 게 없으니 외부적으로는 법적인 시시비비를 가려보되 내부적으로는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저는 계속해서 주일 강단에서 치유 설교를 했다. 웃음과 눈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웃음으로 상처 난 마음을 열도록 돕고, 눈물로 상처 난 감정을 씻어주는 방식이다. 주일 강단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은 치유 프로그램이다. 개인 치유동산, 부부 행복동산,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홀로 사는 분들을 위한 주바라기 세미나 등을 진행해 20년 동안 1000명 이상이 수료했다. 동시에 외부를 위한 치유 집회를 한국교회와 이민교회 및 세계 각지에서 진행했다.”
-정치인들의 잇따른 실족으로 국민이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사람이 성취하고 나면 다음에 찾아오는 게 공허함이다. 그 공허함을 신앙의 힘, 영적인 은혜, 고통당한 이웃에 대한 봉사로 채우고 회복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엉뚱한 길로 빠진다. 정치적 성취를 이뤘더라도 공허함 고독감을 채우지 못하면 실수를 하게 된다. 그게 인간의 연약한 모습이다. 예외가 없다. 목회자들이 실족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열왕기상의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 영적 전투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싸워 이겼지만, 극도의 공허감에 광야로 나아가 죽으려 했다. 그때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영혼과 육체에 대한 치유가 이뤄진다. 이런 과정을 크리스천치유상담연구원과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목회자 소명은 언제부터 생각했나.
“한양대 금속공학과 77학번으로 입학했다. 1학년 과대표여서 종강 파티까지 잘 마쳤는데 다음 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급성폐렴과 유사한 증상이었지만 큰 병원에서도 병명을 몰랐다. 고향인 전남 나주로 내려가 약국을 하시던 부친께도 보였지만 답이 없었다. 링거를 꽂고 누워 있는데 장로로 섬기던 부친의 옛날 세로 읽기 성경책이 눈에 들어왔다. 딱 펼치니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이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내용이다. 말씀을 읽는 순간 지난 1년간 술 마시고 춤추고 했던 대학 생활이 동영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고통 중에 앓던 이유를 알게 됐다. 눈물 콧물로 통회하고 자복하는 가운데 성령의 불이 확 내려왔다. 몸이 회복되며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느꼈다. 성서침례신학교 야간 과정을 다니며 대학 생활을 병행했고, 이후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보나.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신천지 문제가 드러났고 이태원 집단감염으로 동성애 문제와 차별금지법 문제가 드러났다.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고 간절히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현장예배를 지속했다. 온라인예배도 운영하긴 했지만, 실시간이 아닌 녹화 방식으로 하고 있다. 방역수칙을 지키며 동시에 현장예배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일보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김의식 치유하는교회 목사가 지난 10일 서울 강서구 교회 목양실에서 20여년 이어온 치유목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웃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눈물로 상처 난 감정을 씻긴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치유하는 목회’다. 국민미션어워드 올해의 목회자로 선정된 김의식(62) 치유하는교회 목사를 지난 10일 서울 강서구 교회 목양실에서 만났다.
김 목사는 2000년 분란이 한창이던 화곡동의 이 교회에 부임해 54건의 고소·고발을 겪었다. 20년간의 치유 목회로 현재는 갈등을 대부분 봉합하고 출석 성도를 5000명으로 늘리며 교회를 배로 부흥시켰다. 김 목사에게 치유 목회의 본질과 비전에 관해 물었다.
-어린 딸을 사고로 잃은 경험부터 말씀해 달라.
“노량진교회에서 전도사로 있던 1987년이다. 딸은 만으로 다섯 살이었다. 전도사여서 새벽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일이 반복됐고,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 딸이 감기에 걸렸다. 약을 먹여 재우고 기도해 준 뒤 잠깐 집사람 일을 도우러 밖에 10여분 다녀온 사이였다. 잠에서 홀로 깨어난 아이가 난간에서 떨어졌다. 북아현동 3층집 셋방이었는데, 내가 자리를 비워 그렇게 됐다. 딸 아이 장례를 치르며 교인들로부터 큰 위로를 받았다. ‘저는 첫째를 잃었어요’, 다른 분은 ‘저는 막내가 그렇게 됐어요’라며 다독여주셨다. 그때 로마서 12장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으로 치유 목회의 소명을 받았다. 이후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목회상담학 석사를, 시카고신학대학원에서 가족치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카고한인연합장로교회에서 목회하다 귀국해 호남신학대에서 3년여 강의했고, 2000년 당시 ‘화곡동교회’이던 지금의 치유하는교회에 부임해 이제 20년이 됐다. 귀국 직후부터 정태기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과 함께 크리스천치유상담연구원 등에서 강의하며 치유 목회를 전하고 있다.”
-교회 갈등은 어떻게 치유된 건가.
“교회 관리집사들과 일부 장로가 분란의 핵심이었고, 3명이 당회에서 출교를 당했다. 해고 소송 등으로 대법원까지 올라간 끝에 교회가 승소했다. 그중 한 분은 다시 교회로 돌아오셨고, 다른 한 분과도 화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잘못한 게 없으니 외부적으로는 법적인 시시비비를 가려보되 내부적으로는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저는 계속해서 주일 강단에서 치유 설교를 했다. 웃음과 눈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웃음으로 상처 난 마음을 열도록 돕고, 눈물로 상처 난 감정을 씻어주는 방식이다. 주일 강단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은 치유 프로그램이다. 개인 치유동산, 부부 행복동산,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홀로 사는 분들을 위한 주바라기 세미나 등을 진행해 20년 동안 1000명 이상이 수료했다. 동시에 외부를 위한 치유 집회를 한국교회와 이민교회 및 세계 각지에서 진행했다.”
-정치인들의 잇따른 실족으로 국민이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사람이 성취하고 나면 다음에 찾아오는 게 공허함이다. 그 공허함을 신앙의 힘, 영적인 은혜, 고통당한 이웃에 대한 봉사로 채우고 회복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엉뚱한 길로 빠진다. 정치적 성취를 이뤘더라도 공허함 고독감을 채우지 못하면 실수를 하게 된다. 그게 인간의 연약한 모습이다. 예외가 없다. 목회자들이 실족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열왕기상의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 영적 전투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싸워 이겼지만, 극도의 공허감에 광야로 나아가 죽으려 했다. 그때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영혼과 육체에 대한 치유가 이뤄진다. 이런 과정을 크리스천치유상담연구원과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목회자 소명은 언제부터 생각했나.
“한양대 금속공학과 77학번으로 입학했다. 1학년 과대표여서 종강 파티까지 잘 마쳤는데 다음 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급성폐렴과 유사한 증상이었지만 큰 병원에서도 병명을 몰랐다. 고향인 전남 나주로 내려가 약국을 하시던 부친께도 보였지만 답이 없었다. 링거를 꽂고 누워 있는데 장로로 섬기던 부친의 옛날 세로 읽기 성경책이 눈에 들어왔다. 딱 펼치니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이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내용이다. 말씀을 읽는 순간 지난 1년간 술 마시고 춤추고 했던 대학 생활이 동영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고통 중에 앓던 이유를 알게 됐다. 눈물 콧물로 통회하고 자복하는 가운데 성령의 불이 확 내려왔다. 몸이 회복되며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느꼈다. 성서침례신학교 야간 과정을 다니며 대학 생활을 병행했고, 이후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보나.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신천지 문제가 드러났고 이태원 집단감염으로 동성애 문제와 차별금지법 문제가 드러났다.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고 간절히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현장예배를 지속했다. 온라인예배도 운영하긴 했지만, 실시간이 아닌 녹화 방식으로 하고 있다. 방역수칙을 지키며 동시에 현장예배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일보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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