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과’는 사랑·희망… ‘개 사과’는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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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 선교사, 제중원에 심은 사과나무
살림살이 도움 줘 ‘사랑의 나무’
대선후보의 ‘개 사과’ 사진 논란에
진정한 사과 의미 떠올려보게 돼
우드브리지 존슨 선교사가 1900년대 초 대구에 심었던 미국 사과나무의 2세목(오른쪽)과 3세목(왼쪽) 모습. 2세목은 2018년 고사해 지금은 볼 수 없다. 유튜브 캡처
“여기에 뿌리내린 이 사과나무는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미국에서 들여온 한국 최초 서양 사과나무의 자손 목으로, 동산의료원 역사를 말할 뿐만 아니라 대구를 사과의 도시로 만든 의미 있는 생명체이다. 초대 병원장 우드브리지 존슨 박사가 미국 의료선교사로 동산병원에 재임하면서 미국 미주리주에 있는 사과나무를 주문해 이곳에서 재배한 것이 대구 서양 사과나무의 효시이다.”
대구 중구 동산동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 있는 표석의 내용입니다. 2018년까지 표석 곁에는 수령 90년 넘는 사과나무가 있었죠. 이 나무는 2000년 대구시 보호수 1호로 지정됐던 나무로 우드브리지 존슨(1869~1951) 선교사가 1903년 심었던 사과나무의 2세 나무였습니다. 지금은 3세 나무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날 대구사과는 존슨 선교사가 심었던 미국 사과나무와 오래전부터 대구에서 키우던 재래종 능금을 접붙여 만들었습니다.
1899년 존슨 선교사는 대구에 ‘미국약방’과 ‘제중원’을 열었습니다. 대구동산병원의 뿌리입니다. 제중원은 1885년 4월 서울에 세워진 조선의 왕립 병원으로 미국북장로교가 운영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북장로교가 전국에 세운 병원이 모두 제중원이 된 이유입니다.
대구 제중원이 1900년대 초 동산동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선교사들은 병원 근처에 붉은 벽돌로 서양식 집을 지었죠. 존슨 선교사가 사과 묘목을 심은 것도 이때였습니다.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사택 마을에 푸른 담쟁이덩굴이 우거지자 대구 사람들은 이곳을 ‘청라언덕’이라 불렀습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가곡 ‘동무 생각’의 배경이기도 하죠.
제중원은 대구 시민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병원 마당에서 자란 사과나무가 대구 사람들의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됐으니 사랑받을 만했죠. 제중원이 대구의 근대를 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과와 관련해서는 유명한 격언도 있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입니다. 스피노자가 한 말인지 아니면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했는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고백교회 목사들이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격언이 품은 메시지는 희망입니다.
마침 10월 24일은 ‘사과데이’입니다. 지인에게 사과를 선물하며 사과(謝過)하는 날이라고 하죠. 최근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가 개한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려 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사과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행위입니다. 사과의 날, 사과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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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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