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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시대의 선교: 희년을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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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연합감리교뉴스| 작성일2021-01-11 | 조회조회수 : 1,0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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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유니온 신학교 졸업식 후, 더운 날씨에 맞춰 졸업식 가운이 아닌 사블라이 (Sablay)를 착용한 교수들과 최재형(맨 오른쪽 끝) 목사가 채플에 모였다. 사진 제공, 최재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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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최재형 목사.


    (편집자 주: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상용화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감염병 대유행의 위협은 여전히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고, 바이러스가 완전히 퇴치되지 않는 한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연합감리교뉴스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의 기독교 시리즈’를 매주 연재한다. 오늘은 그 네 번째로 연합감리교 선교부 주재선교사(Missionary in Residence)이자 필리핀 선교사였던 최재형 목사의 글을 소개한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은 재난과 동시에 시대의 표적(sign)이다. 따라서 백신 개발로 위기를 극복하는 한편, 이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의 팬데믹은 역사적 전환기의 문턱에 한 발 올려놓은 인류가 살아내야 할 새로운 일상의 단면이며, 시기적 특성상 북방의 이민족들의 침입으로 몰락해가던 로마제국의 말기(기원후 400-500)와 유사한 점이 있다.   


    당시 상황에서 봤을 때, 로마의 멸망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로마가 기독교의 유일신을 받아들이면서 버렸던 다른 신들이 내린 형벌로 여겼고,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이라는 글을 통해 역사가 무엇인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헬레니즘의 이원론을 바탕으로 세상 나라는 사라져도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어거스틴의 이러한 대응은 어려운 현실에서 교회가 어떻게 선교를 해야 하는지 그 비전을 제시했다기보다 훗날 중세시대의 왕(세상 나라)과 교회(하나님 나라) 사이의 세력 갈등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어거스틴 시대에는 제도화되어가던 교회가 제국의 후광을 받으며, 과거 핍박받던 초대교회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과 조직력 그리고 영향력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교회는 북방에서 밀려오는 이민자들을 포용할 사회·제도적 차원의 일보다 수도원적 영성을 중요시하며 개인의 금욕과 자선에만 몰두하여, 새로운 상황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적 실천안에 하나님의 선교를 가두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후 천년은 교회가 주도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요청에 대해 모세의 율법이 명하고, 선지자들이 외치며, 예수님이 선포한 희년의 정신(누가복음 4:18-19)을 바탕으로 한 구조적 개혁을 이끌어 낼 기회를 놓치고, 역사 속에서 “중세 암흑기”라 불리는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어거스틴의 때와 오늘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이민족들의 침입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유사한 점이 많다.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로 성장했으며,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잠재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교회의 선교는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제도적 교회의 힘과 조직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면 과연 오늘날의 교회는 중세시대와 다르게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힘을 자선의 차원을 넘어 빈곤의 원인을 제거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 구조적 변혁을 이끄는 선교에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어쩌면 코로나는 이 중차대한 전환기에 교회를 일깨울 전령이 아닐까?


    만일 기독교 선교가 이 전령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성찰은 하지 않은 채 팬데믹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과거의 선교를 이어가려 한다거나, 혹은 이 시대의 표적을 읽지 못하고 자신의 선교적 계획을 관철할 피상적인 방법들만 찾아 헤맨다면, 우리는 또 다른 암흑기의 공모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 된 락다운(lockdown)의 사전적 정의에 담긴 세 가지 의미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위한 선교적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팬데믹이라는 특정한 기간을 통해 선교적 돌아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선교는 활동과 성찰을 모두 포함한다. 새천년이 시작되면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 주어진 현재라는 짧은 시간 동안 교회는 불안한 현실 가운데,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붙잡고 몸부림치며, 자신 안에 있는 오래된 선교적 관성으로 인한 혼란과 피로를 느끼고 있다. 따라서 열심히 선교 활동을 해 온 교회는 이제 멈추고 성찰할 시간이 필요하다.


    1517년에 시작한 종교개혁 이후 오늘까지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경험해왔으며, 교회의 선교 역시 과학과 지식의 발달과 함께 서구 패권주의 및 진보와 성장의 이데올로기와 복잡하게 얽히며 진행되어 왔다.


    이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코로나는 우리에게 멈추고 성찰해야 할 때를 알리는 여러 신호 중 하나가 되며, 우리는 돌아봄을 필요로하는 이러한 시기적 요구를 외면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멈추라는 것은 선교를 그만하라는 것이 아니라, 더 힘있게 멀리 달리기 위한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의미에서 선교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팬데믹으로 인한 제한된 자유 속에서 선교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임을 인정하고, 선교를 “나의 것”으로 삼은 우리 자신들을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번 팬데믹을 사람들은 왔다가 사라졌던 과거의 역병과 다른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시작점이라고들 한다. 그렇기에  교회는 이제 자신에게 익숙하고, 자신이 원하는 선교만을 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서와 신학 그리고 역사는 선교가 “하나님의 선교”임을 확증한다. 왜냐하면 선교란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며, 구원하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고백 위에 하나님 이외의 모든 이는 하나님의 구원 선교에 초대된 참여자들이며,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교회가 특별한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도록 역사 속에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코로나로 인해 기존의 선교 활동들이 제한된 지금의 현실은 우리의 선교를 들여다볼 기회인 동시에 하나님의 선교로 돌이킬 기회가 된다. 


    셋째, 팬데믹으로 드러난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지구적 재난이 불러일으키는 위험을 생각하며, 희년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선교를 본받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성서는 참된 종교의 역할이란 바른 정치를 위해 하나님의 원리를 선포하는 것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또한, 예수께서도 그의 첫 설교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며, 기독교 선교의 핵심 과제를 명시하셨다(누가복음 4:18-19).


    50년마다 빚을 탕감하고, 종을 해방하며, 땅을 쉬게 함과 동시에, 땅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줌으로 빈곤과 불평등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제거했던 구약의 희년은 선지자들의 외침 속에 녹아 있었고, 후에 초대교회의 자발적 희년 공동체인 코이노니아의 실천적 근간을 제공했다(사도행전 2:42-47).


    존 웨슬리 또한 희년의 사람이었다. 토지종획(enclosure)으로 수많은 영국의 농부들이 경작지를 잃고 빈곤과 차별에 허덕일 때, 웨슬리는 가난한 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담대하게 토지종획을 비판했다.


    창세기에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요셉 이야기의 핵심인 애굽의 토지개혁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있어서 희년의 선포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보여준다. 요셉이 기근이라는 위기를 토지개혁과 조세개혁을 통해 만인의 생명을 살리는 기회로 전환한 이야기는 오늘날 교회의 선교에 제도적 정의와 공평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지 알게 하는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창세기 47:13-26).


    나는 필리핀의 선교사로 섬기면서 빈곤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고 대천덕 신부님의 토지와 경제정의(Biblical Economics)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대 신부님은 강원도 태백산 골짜기의 예수원에서 노동과 기도의 삶을 영위하며, 한국과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성령운동과 희년운동 등 크게 이바지하신 분이다. 이 하나님의 선지자가 임종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바로 “지붕 위에 올라가 희년을 외치라”였고, 이를 계기로 나는 개인적으로 필리핀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성경적 희년을 바탕으로 한 토지신학(Geo-theology)이라는 코스를 만들어 강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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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형 목사가 필리핀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토지신학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최재형 목사.
     


    기독교의 선교란 시대마다 가장 위급하고 보편적인 문제를 하나님의 마음과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며, 교회는 이를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희년의 원리와 상상력으로 지구적 생태 위기와 빈곤 및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 대안을 제공하는 선지자적 외침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진입하는 교회의 선교적 과제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백신 개발의 청신호로 코로나 시대의 끝자락에 왔음에 흥분하며 환호하고 있다. 불편함 없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뜬 것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코로나와 유사한 수많은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과거로의 단순한 회귀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팬데믹이 교회의 선교를 “돌아봄”과 “들여다봄” 그리고 “희년의 상상력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봄”으로 이끌어주기를 바라며, 교회로 하여금 성령의 바람을 대망하고 새로운 선교적 헌신을 위한 호흡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글쓴이: 최재형 목사 (연합감리교 선교부 주재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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