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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제2장 영혼의 밤의 실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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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하나님관 때문에 

    영혼의 밤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불신’도 잘못된 하나님관의 일종이다. 신자에게 일어 나는 크고 작은 사건은 대부분 욕심과 비뚤어진 하나님관의 합작물이다. 성경적 상담시 잘못된 하나님관을 바로 세워주면 대부분 급격한 회복을 보인다.


    하나님은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시고 용서하시며 공평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양육해 주시고 좋은 것과 은사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상을 베푸시며 우리와 함께하는 분이다. 그러나 부모와 권위자들로부터 상처를 받거나, 거짓 예언이나 잘못된 가르침을 받거나, 신성 모독적인 생각에 빠지거나, 불건강한 관계가 형성된 어린 시절을 보내면 잘못된 하나님관을 품게 된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무관심하시고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필요할 때는 부재하시고 거부하시고 불공평하시고 예측 불가능하시고 신뢰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 비춰진다. 아이의 눈에는 부모나 교사 또는 권위자들이 하나님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잘못된 하나님관을 가진 사람들은 믿음을 갖기 어렵고, 믿은 후에도 성숙의 과정이 힘겹다. 


    태생적인 맹점 때문에 

    선천적인 맹점 또는 부족함은 죄나 실수와는 무관하지만, 본인이나 가족 또는 주위 사람들에게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브렛은 보기 드물게 유능한 석유공학 엔지니어다. 그가 가진 특허는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하 유정관에 달린 밸브를 지상에서 유압으로 열고 닫는 새로운 공법인데, 이는 세일가스와 더불어 현재 중요한 석유 공학기술로 꼽힌다. 그의 첫아이는 자폐와 간질을 동시에 앓았는데, 지금은 그 아이가 신장 190센티미터에 110킬로그램이 넘는 이십 대의 건장한 남성으로 장성했다. 


    그는 일주일에 여러 번 간질로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화장실에 있을 때 경련이 오면 거구인 그가 무의식적으로 변기 밸브를 차는 바람에 온 집안에 물이 넘친다. 어느 주에는 두 번이나 집에 물난리가 났다. 어느 날 브렛에게 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심스레 묻자 그는 주저함 없이 아이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며 날마다 그 아이를 통해 하나님을 본다고 했다. 그 아비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다. 그 아이와 단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치는 것과 그 아이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사는 것이다. 담담히 소원을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인생의 행불행을 뛰어넘는 거룩함이 묻어났다. 


    그렇다. 복음을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요술 방망이로 믿으면 브렛에게는 그 복음이 절대로 적용될 수 없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맹인에 관한 물음에 주님은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선포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브렛의 얼굴에 비쳤다. 신앙이 아니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광채였다. 그는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다.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고백하는 그의 눈에서 기이한 평안이 엿보였다. 절망과 신위적인 믿음의 세계는 이처럼 긴밀하다.


    처한 환경 때문에 

    1985년부터 원유 값의 하락으로 필자가 다니던 석유 회사에서 구조 조정이 시작됐고, 본격적으로 ‘리엔지니어링’이라는 단어가 미국 산업 전반에 불기 시작했다. 여섯 명의 동료가 해고되었고, 나는 혼자 댈러스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내 나이 서른여섯, 신앙생활 10년차의 내면은 마른 논바닥마냥 갈라져 있었다. 


    댈러스 연구소에 출근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건물 청소하는 박 형을 만났다. 동년배인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매일 점심을 같이했는데, 어느 날 박 형이 내게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부친은 정규 육사 출신의 총명 강직한 군인이셨는데 전쟁 중에 전사하셨고, 모친은 일제 때 수피아여고를 다닌 신여성이었다. 모친은 부친이 남긴 재산을 잘 관리하며 생계를 이어 갔는데, 누군가로부터 계란 장사가 좋다는 말을 듣고 큰 트럭을 대절해서 시골을 돌며 계란을 사서 동대문 시장에 도착했다. 


    급한 일을 보기 위해서 운전수에게 당부를 하고는 한 시간 정도 자리를 비웠는데, 그 한 시간 안에 모든 비극이 일어났다. 운전수가 짐을 조심스럽게 내리지 않고 트럭 위에서 그냥 던진 것이다. 계란은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었고 그것으로 모친은 사업을 접었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삽시간에 한 가정의 경제적 몰락이 찾아왔다. 그 후 고등학교를 마친 박 형은 유람선을 타다가 댈러스로 와서 청소부 일과 태권도사범 일을 했다. 혼자 5년 이상 떠나 있는 동안에 그의 가정도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처한 환경에 찾아든 곤고한 밤이었다.


    그와 1년 반을 같이 지내는 동안 여러 모로 주님을 증거했지만 그는 항상 씩 웃으며 지나쳤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토론토에서 전화가 왔다. 박형이었다. 그는 좋은 사람을 만나 재혼했다며 쑥스러워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자 박 형은 투박한 사투리로 두 사람이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목소리는 오랜만에 참 밝았다. <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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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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