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3장 육신의 문제와 통증 (9) > 묵상/기도 | KCMUSA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3장 육신의 문제와 통증 (9) > 묵상/기도

본문 바로가기

  • 묵상/기도

    홈 > 목회 > 묵상/기도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3장 육신의 문제와 통증 (9)

    페이지 정보

    본문

    성과주의 육신(Performance based acceptance)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올인(all in)하는 풍조가 사회 전반에 만연된 지도 한 세대가 넘었다.


    1995년경 런던의 어느 한인 교회에서 만난 목사님이 한 가지 고민을 털어놓았다. 유학생과 주재원이 많이 출석하는 이 한인교회는 영국 교회당을 빌려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안에 잘 진열된 비싼 골동품 하나를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깨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왜 주의를 주지 않느냐고 묻자, 만일 주의를 주면 다음 주부터 그 가족은 아예 교회 출입을 않는단다. 특히 젊은 엄마들은 자녀 기를 죽이지 않으려 야단을 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의 아이들이 이제 삼십 대가 되었고 그 엄마들은 이제 오십 대 초반에 접어들었다. 그들은 현재의 한국가정을 주도하는 그룹이다. 위험하다. 


    아이들이 제대로 방향 감각을 갖도록 교육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경계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강남 엄마들이다. 강남 엄마들은 성공을 위해서는 대가 센 자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성공에 올인한다. 강남 엄마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신 가정보다는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을 필요로 하며, 야곱의 서원 기도(창 28:20)와 야베스의 기도(대상 4:10)에 적극적 공감을 한다. 강남 엄마들은 자녀가 취학 연령에 접어들면 조건 없는 사랑과 용납보다는 성공을 주된 관심사로 삼는다. 


    집안의 모든 의사 결정은 이제 강남 엄마들의 전유물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베이비부머(baby boom generation) 강남 엄마들의 대 반격이 지난 30년 동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녀들은 일단 강남의 모든 부동산을 점령하여 경쟁력을 확보했고, 심지어 지난 한 세기 동안 정교하게 쌓아 온 아이비리그 입학 사정관들의 입시전략을 한방에 제압했다. 


    그들은 두려운 것이 없는 무적의 아르마다 함대다. 작금에 흔히 일어나는 삼십 대의 이혼에 오십 대 장모의 역할이 지대한 것도, 성과주의 육신으로 무장한 어미의 작품이다. 성과주의 육신으로 무장하고는 전 세계를 휘저으며 알렉산더 대왕처럼 통곡을 하는 이유가 “세상은 좁고 할 일도 별로 없다”다. 그나마 그녀들의 무대가 아직도 좁은 이유는 ‘영어’라는 막강한 도구에 서툴기에 그러하다. 


    지난 세기에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성공의 크기는 상상의 크기에 비례”라는 직설적인 표현이 대세였지만, 21세기는 영악한 세태여서 경영학에서는 성공이 거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성공처럼 실패하는 것은 없다”(제랑드 니크만)라든가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MIT 교수의 “성공은 혁신의 가장 큰 적”이라는 명제만 봐도 알 수 있다. 성공을 위해서 실패를 어떻게 이용하는가가 주안점이다. 이제는 실패든, 성공이든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성과주의 세상이다. 도무지 쉴 수 없다. 그나마 쉬는 것도 성공하기 위함이다. 이런 말 뒤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성과주의 육신’이다.


    작금의 한국은 불행하게도 성과주의 육신에 의한 폐해로 ‘자살 공화국’이 되었다. 2009년 한 해 동안 15,413명이 자살했다. 특히 청년 자살이 최근 급격히 늘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성과주의 육신으로 인한 경쟁과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젊은이들은 절망으로 내몰리고 거의 매해 20퍼센트 정도의 자살률 성장세를 보이는 기가 막힌 세태다. 한국은 지금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된 대신에 성과가 없으면 존재 이유가 퇴색되는 성과주의 정체성으로 굳어진 사회다. 성과는 노력의 부산물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성과가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주객이 전도된 사회다. 


    만일 성과주의를 부정하면 산속으로 들어가야 할 정도이고 세상풍조를 좇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는 이는 기인 취급을 받는 세대다. 성과주의가 우리에게 윽박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과주의 육신이 주는 편리와 자유와 성취감에 스스로 세상을 조종할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으니까 하나님도 눈감아 주신다는 것은 오산이다. 성과주의는 입시지옥을 겪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가장 보편적인 육신이다. 


    특히 끊임없이 단순평가로 비교 검토되는 직업은 그 후유증이 심각해서 우리로 성과주의에 종노릇하게 한다. 가장 심한 직업군은 운동 선수, 음악인, 그리고 기업가다. 경기가 시작되면 실시간으로 승자와 패자를 빠르고 단순하게 가른다. 엄청난 부신 호르몬이 분비되는 삶이다. 예술가들의 삶 중에 특히 성악이나 기악을 하는 이들에게는 삶 전면에 성과라는 단어가 항상 따라다니고, 직업 특성상 끊임없이 비교되는 경쟁 구도 속에 살아간다. 성과주의가 가장 극명한 곳이 기업의 분기별 실적 발표 날이다. 어떠한 핑계나 변명도 소용없다. 나의 성과를 가장 쉽고 정확하고 빠르게 수치화해서 발표한다. 현대인에게는 성과주의의 독재를 빠져나갈 별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다음 지문 중에 다섯 가지 이상 ‘예’라고 대답하면 심각한 성과주의 육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방증이다(USA TODAY지).


    ○ 자녀가 또래보다 성과가 좋지 못하면 불안하다.

    ○ 자녀의 특별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활동이나 시간을 희생한다.

    ○ 자녀 중심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낀다.

    ○ 자녀의 선생님의 인격보다는 교과과정에 더 신경이 쓰인다.

    ○ 자녀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면 실패자라는 느낌이 든다.

    ○ 자녀가 스스로 활동이나 재료를 선택하기보다는 내가 꾸준히 대신해 준다.

    ○ 자녀가 흥미를 잃은 일에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윽박지른다.

    ○ 자녀가 새로운 것을 것에 도전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 자녀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 자녀가 일이나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내 눈치를 더 많이 본다. 

    ○ 자녀가 내가 원하는 해답을 가지고 오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그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

    ○ 자녀가 친구 사귀는 것이 학업 성취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전문가에게 배운 자녀 양육법을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곧 실천에 옮긴다. 

    ○ 전문가에게서 자녀 양육법을 배운 대로 실천하되 그 출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 자녀가 성취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

    ○ 자녀가 배우기는 하는데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 장래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 자녀가 종종 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 자녀의 성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 자녀가 흥미로운 일에 빠질까 봐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한다.

    ○ 자녀가 즉시 어떤 일을 소화하지 못하면 좌절하거나 화를 낸다.

    ○ 자녀가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대면 화가 난다.

    ○ 자녀의 장래 결정에 대해 나의 생각보다는 전문가의 의견에 비중을 둔다.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4155c47eb06944d8515b7a17a2a05cff_1616617336_6754.jpg
    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KCMUSA,680 Wilshire Pl. #419,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