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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제2부 제1장 십자가의 비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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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 이르는 병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그는 평생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한 방향만 추구했던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다. 그 역시 영혼의 밤을 철저히 겪었다. 통증의 마지막 관문인 ‘절망’에 관한 그의 견해는 탁월하다. 그룬트비 목사(1783-1872)와 동시대 인물로 42년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그가 전 인격적으로 부딪친 명제는 실존주의 철학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가?”였다. 


    그가 평생을 이 주제로 씨름했던 배경은 부친의 신앙관이 한몫을 했고 또 부유했던 부친의 유산으로 평생을 일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부친은 두 가지 이유로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 하나는 젊은 시절 먹을 것이 없어서 하나님을 저주했던 죄, 또 하나는 나이 들어 키에르케고르의 모친과 혼외정사로 여러 자녀를 낳은 것 때문이었다. 많은 재물을 소유했어도 그의 부친은 경건한 삶을 죄책감과 동시에 지고 살아갔고, 키에르케고르도 일종의 저주인 양 42년을 그렇게 불안과 죄와 씨름하며 살아갔다. 


    키에르케고르는 기묘한 신앙의 편린(片鱗)을 경험하고, 마침내 절망이라는 거대한 괴물과 싸워 기가막힌 역설로 깊은 신앙의 세계를 표현했던 신자였다. 그의 모든 저작은 절망에서 비롯된 부산물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의 끝자락에 좌정하시는 하나님을 만 나지 못하면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단순한 명제로 평생을 부딪친 “절망하라”는 그의 절규가 이제 21세기 번영과 풍요 속에 있는 신자에게는 절실한 화두다. 그의 절규는 욥의 고백과 유사하다.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욥 19:10).


    오히려 그는 평생을 물질적인 부요 속에 살았기에 스스로 절망을 추구하지 않으면 희망 없음을 알았고, 그래서 자신이 유일하게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길이 절망이라는 사실에 감사했을 것이다. 번영이라는 우상을 찬송하는(신 31:20, 사 66:3) 21세기에는 어떻게 하면 절망을 피하는가가 삶의 절대적인 과제다. 이 질문에 의문을 품는 자체가 신성모독으로 여겨지는 세태가 되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살을 택한다. 절망을 대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번영을 사랑하지만 절망이라는 십자가의 메시지는 철저히 미워한다(요 15:19). 교회도 예외 없이 번영, 행복, 성공이라는 우상을 꿈꾼다. 그러나 번영이 현실이 되면 교회는 죽음의 길로 접어든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에 해악이 된 것은 바로 공화국의 번영이었다고 선언한다. 마침내 번영이 왔고 최고의 행복 국가가 되어 번영이라는 괴물이 현실로 등장했을 때 덴마크 교회는 맥없이 주저앉았다. 번영이라는 괴물을 대할 때 키에르케고르의 “절망하라”는 선언은 선견지명이다. 그에게 다가왔던 절망이라는 단어를 이 책의 주제인 영혼의 밤과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절망은 인생이 하나님에게 눈을 돌릴 절호의 기회다. 어쩌면 인생이 가진 유일한 기회라고 하자! 이전의 수많은 기회를 날려 버린 인생에게는 신위적인 믿음을 가질 절호의 기회가 절망하는 그 순간이다. 그 때 하나님께로 눈을 돌리는 것이 바로 눈 맞춤이다. 광야에서 불순종하다가 불뱀에 물린 그들이 극심한 통증 속에서 낫기를 간구했을 때 한 행위가 바로 놋뱀과의 눈맞춤이다. 저주하며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주님 말씀대로 세 번째 닭이 울자 주님과 눈맞춤을 했다. 절망적인 통증 가운데서 눈맞춤이 일어나는 것은 이 세상보다 더 큰 믿음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절망(絶望)과 체념(諦念)


    인생은 절망을 대면하면 어떻게든 피해 가려고 한다. 가인은 험한 죄를 지었으나 하나님의 죄사함을 받았고, 이마에 뚜렷한 표식을 받고 증표로 아들을 받았다. 감격한 그는 에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아들 이름의 성을 쌓기 시작하면서 절망을 피하고자 필사의 노력 끝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갔다. 인생은 결코 원치 않는 절망이 슬며시, 그러나 집요하게 다가왔을 때 어떻게 그 절망을 대면하는가에 따라 그 후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겪은 사건 속에서 절망과 체념, 이 두 단어의 실체가 대조된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 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 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 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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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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