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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제2부 제2장 선택과 반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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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밤에 취하는 행동


    영혼의 밤이 오면 육신이 취하는 전형적 행동 세 가지를 다시 짚어 보자. 


    첫째, 스스로 불을 밝히는 행동이다. 이는 최악의 선택이자 반응이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어두움을 밝히는 행동이다. 인간의 꾀로 난관을 극복하려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주어진 환경에 치여 개선점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분별력 없이 패시비티(영적 소극성)로 빠지는 경우다. 셋째, "하나님을 기다림"(Waiting on God)을 잘못 이해하면 패시비티가 되고 신위적인 믿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패시비티와 모양은 비슷하나 속은 전혀 다르다.


    신앙생활에 열정이 생기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용히 잠잠하게 기다릴까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뛰어나가서 싸울까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혼돈이다. 기다려야 할 때가 있고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영적 분별력’과 하나님의 안목인 ‘영성’이 요구되는 순간이다.


    영혼의 밤에도 시간은 흐른다. 동이 트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시간은 지극히 천천히 흘러간다. 영혼의 밤을 지날 때 가장 힘든 것이 바로 기다림의 시간이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쫓김이 있다. 그러나 숨이 멎을 듯한 시간에는 세상을 향한 일을 최소화하고 가장 먼저 그 나라와 그 일을 구하는 일(마 6:33)에 집중해야 한다. 큐티, 곧 주님과의 교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다음 여섯 가지 일상생활을 이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의 이름을 기억함(눈맞춤)

    삶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앎,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함,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바른 이해, 단순한 일상생활만을 영위함, 그리고 침묵하고 기다림이다. 영혼의 밤을 지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행위가 바로 ‘주님을 기억함’(눈 맞춤)이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시 119:55). 


    인생에게 가장 험한 일이 일어날 때 주님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한다” “율법을 지킨다” “주님께 붙어 있다”와 같은 표현이다. 춥고 어두운 밤에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평소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었다는 방증이고, 이는 그들에게 허락되는 특권이다. 평소에 그렇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핑계를 이용해서라도 우리가 당신을 의지하게 하신다. 


    기억한다는 표현은 주님께서 그 혹독한 시간에 나와 함께 계신다는 표현이고, 주님께서 내 옆에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영혼의 밤이 은혜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이제 더 잃을 것이 없는 시간에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면,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그 시간을 바꿀 수가 없다. 성경에서 가장 절박하게 하나님과의 눈맞춤을 설명한 이가 욥이다.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욥 16:20).


    모든 것이 뒤틀린 상태는 어떤 변명이나, 항변이나, 어떤 합리화나, 어떤 소리도 통하지 않을 때다. 우리가 할 일은 흐르는 눈물 사이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비록 광야에서 자신의 음행으로 불뱀에 물려서 죽어 가던 사람들도 자신의 죗값을 치른 것이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세가 든 놋뱀을 본다. 온몸에 독이 퍼지면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그 와중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을 들어 쳐다보는 것뿐이다. 이 기막힌 상황에도 쳐다보지 않고 죽어 갔던 사람이 수천이었던 것을 보면 마지막 순간에조차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처절한 현실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 


    캄캄한 밤에 주님과 눈을 마주하는 것은 감각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밤은 직소퍼즐처럼 이제까지 내 속에 들어왔던 모든 정보들을 가지고 비로소 제자리에 짜 맞추고 우리의 행동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아브라함과 바울은 영혼의 밤을 지나면서 각인된 주님과의 눈맞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창세기 23장에는 깊은 영혼의 밤을 지난 아브라함의 결단이 나타나 있다.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40세가 되어도 장가들지 않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신붓감을 찾고자 마지막 시도를 한다. 그의 종에게 고향에 가서 며느리를 데려오라고 명령할 때, 종이 "만일 며느리 될 여인이 따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를 묻자 아브라함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창 24:8).


    자신의 전 생애 동안 있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브라함은 압축해서 한마디로 대답했다. 비록 이삭이 장가를 못 가더라도 그 땅으로는 돌아가면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의 지시가 바로 "하나님과의 눈맞춤"이다.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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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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