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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영혼의 밤에 경험하는 인도하심의 증거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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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대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영혼의 밤을 허락하시는가? 밤만이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인가? 밤에는 별도 달도 없는가? 어두워야만 새벽이 오는가?


    밤에는 별도 있고 달도 있다. 캄캄한 그믐밤은 30일 중 오직 하루뿐이다. 이 책은 최악의 경우인 그믐밤을 잘라 그 속을 들여다본 것이다. 밤을 확대 해석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밤이 긴 사람도 있고 밤 이 아주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치 않게 닥쳐온 캄캄한 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미세한 인도하심의 증거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영혼의 밤에도 엘리야에게 들린 미세한 하나님의 음성처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는 증거들이 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듯 칠흑같은 영혼의 밤에 빛 되신 하나님을 본 사람의 공통적인 증거는 독대(獨對), 수용(受用), 평강(平康), 그리고 감사(感謝)다.


    독대(獨對) 

    영혼의 밤을 지나는 믿음의 선진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하나님과의 ‘독대’(獨對)다. 욥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그 독대는 질문성 응답이 주종을 이룬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세 가지 ‘질문성 응답’을 하신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피조물이 창조주를 독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귀하다. 내 이름을 기억하셔서 손바닥에 새기시고(사 49:16) 나의 머리칼이 몇 개 인지 세시고(마 10:30) 그 옛적에 나를 짓기를 이미 계획하시고(렘1:5) 이제 잠시 시간이 지나면 영원한 세계에서 나와 동행하실 분을 유한한 인생이 감히 독대할 수 있다는 약속은 이미 성경에 검증된 것이다. 솔로몬은 정확히 증거했다.


    “그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대하 6:1).


    그렇다. 영혼의 밤에 하나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우리와 ‘독대’하기를 원하신다. 이제 독대의 의미를 해석할 때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가치관이나 믿음의 안목(眼目)에 달렸다. 믿는 이에게는 하나님과의 독대가 가장 귀한 시간이다. 아무리 비참한 날들의 연속이라도 하나님과 독대의 시간을 가지면 모든 것이 바뀐다. 신앙의 선진들은 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 갔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24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정오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독대한 아브라함, 청춘을 바쳐 섬겼던 하나님으로부터 차가운 배신 한 방을 맞고 난 후 40년을 더 보낸 뒤에야 처음으로 하나님을 독대한 모세,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했고 또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을 목격한 후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 순간 하나님을 독대한 엘리야, 10여 년 감옥살이를 하고도 충분하지 않아서 꽉 채운 두 해를 더 보내고 난 후에 하나님을 독대한 요셉이 그들이다. 


    진창으로 굴러떨어진 가정사를 감히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던 욥은 38장의 긴 사설 속에서 간신히 체면 유지를 하고 있던 차에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을 독대한다. 그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을 독대한 순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독대한 후에 그들의 인생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이 홀로 비밀스레 만난다는 독대의 사전적 의미 속에는 거친 들판의 황량함이 묻어난다. 이제까지 의지해 온 것이나 곁의 사람들 때문에 만나 뵐 수 없었던 하나님을 뵐 수 있다는 것은 비로소 의지하던 대상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슨 수를 써도 독대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속마음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시간을 유예하며 기다리신다. 하나님을 독대한 순간은 바로 자신의 육신을 대면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이 순간에도 육신을 따라 성령을 거스를 수도 있다. 가인처럼 아들을 낳고 딴 길을 갈 수도 있고 에녹처럼 65 세가 되어 아들을 낳은 후 비로소 하나님과 동행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은 유턴이고 한 사람은 직진이다.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 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 5:14).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일어나면 순간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린다. 심지어 제사까지도 빛을 잃어버리는 장면에 대한 기록이다. 제사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하나님과 독대하는 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선한 일이 너무 중요해서 하 나님의 임재하심을 간과해 버린다. 하나님과의 독대가 이루어지면 아 무리 선한 사역도 빛을 잃어버린다.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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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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