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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건 목사의 "내 영혼의 방들 - 영적 성장의 일곱 단계"] 1장 이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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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이사야서 64:8)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 신앙 여정에 대한 나의 의문은 매우 뜻밖의 장소에서 불거져 나왔다. 반원형 막사 같은 닭장에서 키가 크고 여윈 한 수도사와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나(톰 목사)는 솔트레이크 시에 있는 루터교단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영적 성숙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그 때에는 별 다른 기대 없이 어느 트라피스트회 수도원을 찾아갔었다. 그 수도원에는 혼자 기도하며 묵을 수 있는 조용한 방들이 잘 마련되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찾아간 홀리 트리니티(Holy Trinity) 수도원은 경치 좋은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1,800 에이커에 달하는 농장 부지와 목초지에서 신부와 수사들이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을 하고 있었다. 푸른 채소밭이 드넓게 펼쳐진 주위에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경치였지만 수도원 시설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외벽을 단열재로 감싼 수수한 반원형 건물들이 안뜰을 중심으로 정방형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나중에는 그곳의 단순함, 침묵, 소똥 냄새 같은 것들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변화의 은혜를 되새기는 추억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그저 밀린 일들을 처리하며 혼자 지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수도원에 도착하자 방문객 안내를 맡고 있는 에마뉴엘 신부가 나를 작은 거실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1인용 침대와 옷장, 의자, 책상이 전부였고 외투를 걸 수 있는 옷걸이가 벽에 하나 붙어있었다. 장식이나 꾸밈새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에마뉴엘 신부에게 이곳에서 드리는 미사에 참석해도 되느냐고 천진난만(?)한 질문을 던졌다. 


    가끔 그곳을 방문한 가톨릭 신부나 수사들이 그들과 함께 시편으로 찬송을 드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개신교 신자가 동석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고 더욱이 루터교 목사가 그들의 미사에 참석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에마뉴엘 신부는 수사들이 하루에 미사를 일곱 번이나 드린다는 말로 나의 기를 죽여 놓았다. 그것도 새벽 3시 30분부터!  과연 내가 그 미사들을 참석할 수 있을까?


    그날 저녁, 에마뉴엘 신부는 나를 데리고 커다란 목재문을 지나 2층으로 되어 있는 반원형 예배당 건물로 들어갔다. 내부 주변에는 거친 재질의 긴 나무의자들이 놓여있고 중간에는 개인좌석들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일렬로 놓여 있었다. 중앙의 제단 앞에는 오른쪽에 두 줄의 좌석과 왼쪽에 두 줄의 좌석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게 보였다. “토마스 목사님을  보니페이스 수사 옆에 앉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수사는 손님들을 좋아하거든요”라고 에마뉴엘 신부가 내게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과연  나이가 지긋한 수사 한 명이 내 옆에 앉았다. 키가 크고 깡마른 체구에 푸른 눈과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일단 보니페이스 수사가 할 일은 미사 중에 무엇을 읽어야 하고,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언제 앉거나 일어서야 하는지를 내게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나에게 신기한 체험이었다. 시편을 바탕으로 한 그레고리오 성가, 성경 봉독, 침묵과 기도의 시간들은 엄숙하다 못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었고 내가 다녔던 교회들이나 현재 목회하는 교회의 예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묵은 지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나자 수사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 때나 방에 홀로 있을 때, 그리고 주변 언덕을 산책할 때에 예전과 달리 깊은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것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콰이어’(미사 전례를 일컫는 줄임말) 동안 보니페이스 수사 곁에 서 있으면 예수님의 사랑이 마치 피부로 와 닿는 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건 정말로 희한한 일이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사랑의 교감을 언어로는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수사들은 그저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했을 뿐 어디를 방문하거나 누구를 만난 게 아니었다. 말을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내게 눈길조차 준 일이 없었다. 보니페이스 수사가 자리에 앉으면서 나를 향해 윙크를 한 적은 있었지만 예배 시간에는 단 한 마디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소는 뭔가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번 방문 기간이 끝나면 이 수도원에 다시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 달이 지난 후 나는 시간을 내어 다시 그곳을 찾았다. 이번에도 하루에 일곱 번씩 드리는 미사에서 나는 보니페이스 수사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사랑의 교감이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 규정을 어기고 미사가 끝날 무렵 그에게 닥아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그는 “8시 반에 닭장 앞으로 나오세요”라고 낮은 음성으로 속삭인 후 그대로 예배당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오전 8시 반을 말하는 건가, 오후 8시 반을 말하는 건가? 대체 닭장은 어디 있는 건가?


    그날 저녁, 나는 에마뉴엘 신부를 만나 내가 미사의 규정을 어기고 보니페이스 수사에게 말을 걸었다는 참회를 하고나서 그의 조언을 구했다. 알고 보니 보니페이스 수사는 양계 책임자였고 오전 8시 반이면 일이 끝난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와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닭장이라는 그곳은 3천 마리의 닭과 달걀을 포장하는 전자동 기계장치까지 갖춘 어마어마한 크기의 헛간이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수사복 위에 헤어진 작업복을 걸치고 있는 보니페이스 수사가 보였다. 그는 막 달걀 선별 작업을 끝마치고 밖으로 나오려는 참이었다. 


    잠시 서성거리며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키 크고 깡마른 보니페이스 수사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에게 축복기도를 해 달라고 했다. 나는 이번에도 어안이 벙벙해진 채 그에게 몇 마디 기도의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그에게 내 소개를 한 후 그의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기에 만나고 싶었던 것이라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닭장을 나와 함께 걸어가던 그가 내 말을 받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오, 저도 목사님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고 그래서 저도 목사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목사님이 먼저 만나자고 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시더군요.”  


    그렇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이러이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영 의심스러운 사람들.... 하지만 보니페이스 수사는 달랐다. 실제로 그는 하나님께 나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 말에 갑자기 더 흥미가 당겼다. 나는 하나님과 그런 관계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었던가? 내 영혼은 하나님을 더 깊이 느끼고 싶어했고 그분의 인도와 지시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갈망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하나님이 나를 홀리 트리니티 수도원과 보니페이스 수사에게 인도하신 이유도 그런 내 마음의 갈망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잠시동안 함께 산책을 했다. 나는 나중에 또 다시 그곳을 오겠다고 결심했다.


    몇 개월이 지나 세 번째로 그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머무는 기간 동안 계속해서 눈물이 나왔다. 미사를 드릴 때에도, 혼자 방에 있을 때에도, 수도원 주변의 산길을 산책할 때에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창피하게도 코를 훌쩍거리고 다녔다. 희한한 것은 내가 흘리는 눈물이 어떤 특정한 감정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성경 구절이나, 꽃이나, 사람이나, 그 어떤 것 때문이 아니었다. 


    머물기로 예정한 기간이 지나고 떠나는 날이 되었을 때 나는 아내 샬롯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더 남아있는 것 같소. 아무래도 여기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구려.” 그 때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아내는 하나님의 역사에 나를 전적으로 맡겨드렸다. 그것은 내 삶의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이튿날, 에마뉴엘 신부를 찾아간 나는 계속해서 눈물이 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이렇게 대꾸했다. “토마스 목사님, 아무래도 예수님이 목사님을 그분의 마음 가까이로 부르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냥 그분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잠자코 들어보세요.” 들어보라고? 도대체 어떻게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내게 큰소리로 말씀하신 적도 없고 벽에 글씨를 써서 읽게 하신 적도 없으셨는데....


    나중에 나는 보니페이스 수사를 만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바로 그게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하는 말보다 그분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더 중요한 것은 당연하니까요.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는 이번에도 어느 책에서 읽었던 진부한 충고가 아니라 본인의 경험과 영적 권위에서 우러난 말을 들려주었다. 그제야 내가 성경책에 기록된 말씀 이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너무도 무지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내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마치 하나님이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처럼 그분이 무엇을 하고 언제 해야 할지를 내가 하나님께 지시하는 형태가 아니었던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신앙생활은 늘 그런 식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제 새로운 과정이 시작되는 것 같았고 나는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장관을 바라보기 위해 산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일들이 가능한지조차도 몰랐던 나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앙생활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도 너무 멀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짝 엿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새로운 희망이 솟았고 가슴이 설레었다. 그 때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드렸던 기도가 생각이 났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3:16-19). <계속>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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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건 목사(사진)는 지도자계발 전문 선교단체인 CRM/NOVO(Church Resource Ministries, www.crmleaders.org)의 국제 파트너 그룹인 CoNext의 정식회원인 CRM/NOVO Korea (www.crmkorea.org, www.novokorea.org) 국제 대표로서 섬기고 있다. 서울 상대 경영학과(BA)를 졸업하고, UCLA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으며1993년에 목회자의 소명을 받은 후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M. Div.)를 취득한 후 북미주 개혁교단(CRC)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남가주에서 목회를 하다가 1998년에 동 교단의 한인사역 디렉터로 임명돼, 15년 간 교단에 속한 한인교회와 목회자들을 섬겼다. 목회자들을 세우는 데 헌신한 사도적 지도자들과 함께 2003년에 CRM/NOVO Korea를 창설하고 한국과 미주에 이사회를 조직하여 미국의 주류교단에서 사용하는 CRM/NOVO의 검증된 훈련과 코칭 프로그램으로 미국과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을 돕고 있다.  


    R. 토마스 애쉬브룩(R. Thomas Ashbrook) 박사는 미국 루터교단에서 안수를 받고 26년간 목회했으며, 현재는 CRM(Church Resource Ministries, 2019부터 NOVO로 이름이 바뀜)에서 영성개발 책임자로서, CRM/NOVO의 영성개발 사역인 이마고 크리스티(Imago Christi)를 창립했다. 전 세계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영성인도와 영성개발 세미나를 인도하는 애쉬브룩 박사는 항공 공학, 경영 관리, 목회학, 영성개발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한 권위자다. 또한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조지폭스 복음주의 신학대학원의 부교수이며 록키산 영성개발 파트너스(Rocky Mt. Spiritual Formation Partners)의 코디네이터이고 덴버 지역의 목회자 공동체 일원이며, 교육가, 영성 지도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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