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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영혼의 밤에 경험하는 인도하심의 증거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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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신의 필요가 없어지고 이미 받은 것으로도 충분하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시니 여전히 원함은 있으나 필요함이 없어졌다. 숨은 쉬면 되고 일은 하면 된다. 사람을 의식하는 어떤 의식이나 겉치레가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안목이 치졸하면서도 추잡한 나의 육신을 정교하게 발가벗기기 시작했다. 


    어떠한 사역이 굳이 내가 아니라 누군가를 통해 진행되어도 감사했다. 혹 주님께서 선한 사역을 시키시면 이전과는 달리 결과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내 몫은 어떤 환경이라도 감당해야 하고 네 것에는 손대면 아니 된다는 경계가 뚜렷해졌다. 이 나이에 감히가 아니라 내면 깊이에서 나오는 경계에 대한 두려움이다. 남의 터에 집을 세우는 두려움과 같다.


    부러움이 없어진 뒤로 가장 뚜렷하게 일어난 변화는 만족함이다. 이미 나의 삶의 모든 필요가 주님으로 채워졌다는 확신이 밀려오기 시작하면서 삶에 필요한 것이 없어졌다. 틈만 있으면 비집고 나오는 부러움이나 질투심이 봄눈 녹듯이 급격히 사라져 버렸다. 어떤 인생이나 업적이나 사역의 열매도 부럽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는 나의 육신이 조종하는 대로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교묘하게 은폐되어 나를 조종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신실한 형제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접하게 될 때면 위축되는 느낌이 들곤 했었는데 그러한 느낌마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유로웠다. 속에 깊이 도사렸던 부러움이 명백한 죄라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졌기에 감히 그러한 생각이나 느낌이 자리 잡을 여유가 없어진 것이었다. 나의 전공 분야에서 업적을 이루는 이들을 만나면 그 업적에 합당하게 노력한 그들의 공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성과주의 육신이 물러간 자리에 대상을 향한 합당한 인정과 존경이 채워져 참으로 감사했다. 


    이 세상은 묘하다. 가지려고 할수록 가질 수 없던 것들이 부질없게 다가오고 무엇에도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자 주어진 과업에 충실히 임할 수 있게 됐다. 그에 따라 결과도 더욱 윤택해졌음은 물론이다. 상생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무리 험한 상대를 만나도 서로의 가치를 높여 줄 수 있는 방법에 마음과 생각이 미친다. 경쟁이 없어도 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 깨우쳐지기 시작한다. 성경의 원리로 경영을 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결론이다. 


    내게 닥친 불행이 축복이고 어떠한 추한 것이나 부정적인 것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연결되면 그만이다. 찾아 헤매던 행복이라는 신기루가 거룩함에 압도되고 치환(置換)되기 시작한 뒤, 7년이 훌쩍 지난 오늘까지도 이전에 나를 옭아맸던 부러움의 감정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성과주의 육신은 불철주야 재기를 노리며 부러워함이라는 메커니즘을 이용해 교묘하게 나의 삶에 다시 스며들어 오려고 한다. 추하고 원치 않는 일들은 여전히 시시로 일어난다. 그러나 그 모든 추함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과감히 치환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고, 비록 시간은 걸리지만 아직까지 치환되지 않은 일이나 사건들은 하나님의 시간과 때에 치환될 것으로 본다.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요 15:19).


    이 구절은 급격히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라 지난 7년 동안 내 안에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묵상하면 할수록 오묘한 느낌이 들고 마치 완벽한 음식처럼 여겨졌다. 이 한 구절만 있어도 이 세상의 온갖 부조리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상을 살다보면 언짢은 일이 마음을 빼앗으려고 하고 짜증이 날 정도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 구절을 묵상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었다.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면 나를 키에 얹어서 까불어도 (비록 멀미는 날지 모르지만) 흔들리고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니 이 세상의 것으로 나를 채우거나 저울질할 이유도 근거도 없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니 과거 또는 현재의 사건이나 사람이 나를 옥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구절도 없다. 나의 좌표가 전혀 다르고 또 확실하다. 이 구절을 생각 할 때면 항상 짝으로 등장하는 구절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다. 정말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육신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는 지를 그분이 나를 찬찬히 살펴보신다. 


    예전에는 실직한 이나 병으로 힘들어하는 이나 장애우를 자식으로 둔 이를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었다. 대학원 2년차, 주를 영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학교 앞 한인 슈퍼에 서 사십 대 중년 남자를 만났다. 그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의외의 말을 했다. 


    자신이 지난주에 실직을 했는데 직장을 구해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고, 그날 전도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의 복음이 과연 이 세상의 부조리를 해결해 낼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번번이 패했다. 물론 천국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이 세상에서의 처절한 삶에 과연 복음이 적용될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신위적인 믿음의 세계를 경험한 뒤 복음이 현재와 미래 심지어 과거 삶에서의 어떠한 부조리에서도 자유를 누리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현주소라고 확신하기에 주저함이 없어졌고 누구를 대해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귀한 복음이 누구보다도 그러한 부조리한 환경에 있는 이에게 더욱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고 또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담대함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소속감 앞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세상에 속하지 않으니 이 세상에 있는 누구나 무엇도 부러움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경쟁이 없어지기에 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고 더 빨리 더 높이라는 경쟁의 핵심이 더 이상 유혹의 자리에 앉지 못한다. 더 가져야 되는 이유도 더 많이 있어야 되는 이유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상대적인 세계가 허물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밤은 간헐적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밤과 낮의 길이가 뒤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긴 밤과 짧은 낮이었으나 이제는 짧은 밤과 긴 낮이다. 밤이 오면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하고 또 하나님을 뵙는 시간이 빨라지고 그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더 깊이 느낀다는 점이다. 이러한 내적인 변화가 자리 잡음과 동시에 기이한 외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에 특히 환경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 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 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이 말씀이 내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약속들을 주셨다.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요14:12).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요15:7).


    영혼의 밤에 신위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독대와 평강과 수용과 감사, 이 네 가지가 주어진다. 가지지 않은 것이, 불편한 것이, 불행한 것이 죄가 아니고 특권이라고 여기기 시작하면 어두움이 빛으로 변한다.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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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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