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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영혼의 밤과 믿음의 일곱 단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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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움도 없고 야망도 없이 경쟁도 하지 않은 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어깨를 펴고 살란 말인가? 당연한 질문이다. 이런 당돌한 행위를 피하라는 명제는 결국 산속으로 들어가 절간을 찾든지 아니면 실패자로 살든지 그것도 아니면 적당히 한 세상 그럭저럭 때우며 살다 천국 입성하면 그만이라는 현실도피적인 신앙관을 양산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본질적인 변이가 필요하다. 이것이 생물학적 상태 변이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신위적인 믿음이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선택하셨고, 그래서 우리로 자신을 부인하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현실 속에서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오라고 하셨다. 바로 그것이 나비의 삶이다.


    평생을 기어 다니기만 하던 애벌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애벌레에게는 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이때 ‘목마름’이라는 단어는 ‘원함’과 같은 말이다. 원함이라는 단어는 다음 성경에서 강조된 단어와 동의어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 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1:-5). 


    한 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가치관의 철저한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광야에서 40년을 자족하게 살았던 모세가 그러하고, 회심 후 십여 년의 세월을 야인으로 보낸 바울이 그러하고, 65세에 고대하던 아들을 맞은 에녹이 그러하고, 130세가 되어 비로소 빈손이 된 야곱이 그러하고, 바알을 좇던 450인을 처단한 뒤 나락으로 떨어지고 난 엘리야가 그러하다. 


    우리 속에 있는 가치관이라는 창고 속에는 모태에서부터 우리가 허락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들어갈 때도 우리의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가 없고, 한번 들어간 것은 우리의 허락 없이 절대로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보물 창고다. 올바른 정보가 쌓이면 ‘선한 양심’이라는 분별력이 생긴다. 우리의 할 일은 성경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가운데 정확한 정보를 우리의 보물 상자 속에 수집하는 일이다. 


    차곡차곡 수집하다 보면 어느 날 선하고 거짓이 없고 청결한 정보가 차고 넘치는 날이 온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경험하게 허락하시는 시간이고 우리의 영안이 열리는 때이며, 양질 전환의 법칙이 결과로 나타나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시간이다(골 1:6). 그날 이후로 나비의 비상이 시작된다. 상태변이를 하는 그 비상은 오직 하나님의 몫이다. 우리의 몫은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며, 나의 내면의 재고 정리를 하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일이다.


    바로 이때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이에게 신묘한 하나님의 묘수가 등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욥기 1장에서 38 장에 이르는 영혼의 밤이 지난 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폭풍우 속에서 욥에게 나타나셨고, 번개 속에서도 폭풍우 가운데서도 결코 나타나지 않으시던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나타나셨고, 밤이 맞도록 그물질을 하다 기진맥진한 제자들 앞에 주님이 나타나셨다. 그 모습은 다양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나신다는 사실이다. 때와 시기는 내 것이라 주장하던 것들이 다 사라지고 난 후다. 애벌레가 기어올라갈 이유를 모두 상실했을 때에야 홀연히 비상을 경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말로만 듣던 양질 전환의 법칙이 나의 삶에 적용되는 순간이다. 그때까지 축적되었던 우리의 보물창고 속의 에너지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내재된 에너지는 우리로 이제까지 생활했던 모든 관습과 전통을 뛰어넘어 찬란하게 비상함으로써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우 리를 날아가도록 이끈다.


    애벌레와 나비의 삶의 목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애벌레의 삶의 목적은 비록 기어 다니는 인생일지라도 어떻게든 ‘잘 기어 보자’는 것이다. 애벌레는 기어 다닐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 기에 ‘잘’ 기어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결코 기어 다닐 필요가 없는 나비의 목표점은 배설물로 만들어진 민둥산을 올라 가는 것이 아니다. 잘 산다, 못 산다는 구분은 기어가는 애벌레 세계 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날아다니는 나비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많은 이는 언젠가 나비의 삶을 선택하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어느 날이 ‘오늘’이 되지 않는다면, 내 일이란 절대로 오지 않는 내일일 뿐이다. 신앙 세계에서는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혹 어떤 이들은 위기 상황(emergency)을 만나면 나비의 삶을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기상황이 일어나면 단순히 내 속에 들어 있던 것이 ‘밖으로 나오기’(emerge)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위기를 만났을 때 평소에 기대하지 않은 행동이 나오기에 그때에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고 기대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위기 상황을 만나면 평소의 모습이 극히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직관력이란 지난날의 풍부한 느낌과 경험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평소에 압축된 행동 양상이 위기 상황에 저절로 흘러나올 뿐이다. 오늘 준비가 안 된 이가 내일이 오면 불현듯 기대했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없다.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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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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