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헌신, 큰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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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아 그렇게 애를 태웠는데, 이번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남가주가 떠들썩했습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을 지나, 눈과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우수’를 기다리던 2월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 내내 비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어느 정도 멈추면 비가 새는 곳을 점검하려 했지만, 목요일 늦은 오후까지도 비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우산을 들고 교회 건물을 살피러 나섰습니다.
아래층 남자 화장실에는 천장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이 새로 깐 마룻바닥을 적시고 있었고, 오래전부터 비만 오면 물이 새던 작은 예배당은 여러 번 수리했지만, 여전히 곳곳에 물이 흥건히 고였습니다. 벽을 타고 흘러내린 물로 친교실 입구에도 물이 가득했습니다. 부목사님과 함께 빗자루로 빗물을 쓸어내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찾아 플라스틱 통을 여기저기 받치면서 조금이나마 비 피해를 막아보겠다고 빗속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스멀스멀 짙게 깔리는 어둠과 비 오는 날의 스산함이 맞물린 채 날이 저물어갈 때였습니다. 비와 어둠을 뚫고 장로님 두 분이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비로 인해서 목요일 저녁에 모이기로 한 중보기도 모임도 취소되었는데, 교회의 재단 이사장이신 이삼휘 장로님과 오랫동안 교회 관리를 도우셨던 황인조 장로님이 교회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들르신 것입니다.
두 분은 마치 낯선 지역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탐원대처럼 손전등으로 이곳저곳을 비추며 비 새는 곳을 점검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에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기 싫은 법인데, 그분들은 교회가 걱정돼 오히려 교회로 달려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보여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헌신이 큰 울림이 되어 제 마음을 진한 감동으로 채웠습니다.
일주일 후, 언제 그렇게 비가 내렸냐는 듯 화창한 하늘을 뽐내던 지난 화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두 남자가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지난번 임원회에서 결정한 대로 교회 음향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임원회장인 박양수 권사님과 미디어 사역 부장인 권오선 장로님께서 이른 아침부터 교회에 오셔서 음향 시설을 보수하는 작업 현장을 지키셨습니다. 박 권사님은 출근 전에 잠시 짬을 내서 들르셨다고 했습니다. 권 장로님은 두 시간이 넘게 교통 체증을 뚫고 달려오셨다고 했습니다.
거의 20년째 사용했기에 골동품이라고 놀림을 받던 믹서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교체했습니다. 앰프도 새것으로 바꾸고 창고에 숨어있던 스피커를 꺼내서 설치하고, 마이크도 여러 개 새것으로 마련했습니다. 전기선을 비롯한 여러 선을 정리하고, TV 스크린도 스피커 뒤로 옮겨 달다 보니 공사가 커졌습니다. 작업을 위해서 사다리를 수십 번 오르내려야 했고, 스피커 수리를 위해서는 높은 곳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기도 했습니다. 고된 일인데도 불구하고 작업하시는 분들과 도우시는 분들 모두 기쁘게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에게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하려는 사명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음향 시설 보수 공사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매일 저녁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부품을 구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고된 작업이었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었지만, 교우들의 지원과 기도가 힘이 되었습니다. 식당으로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해 주시기도 했고, 밖에 나가 식사하는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했더니, 교우들이 끼니마다 음식을 주문해 오셔서 격려해 주셨습니다. 교우들의 작은 헌신이 모여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그 울림은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을 담아 함께 부르는 은혜의 합주곡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교회의 이곳저곳을 살피기 위해 비를 뚫고 오신 분들의 수고를 보면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향 시설을 교체하기 위해 애쓰는 교우들의 섬김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작은 헌신이 모여 이루는 사랑과 은혜가 가득 담긴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변화와 헌신이 큰 감동의 울림이 되었던 것처럼, 음향 시설 교체라는 작은 헌신을 통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더 큰 울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음향 시설 교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더 선명히 전달되고, 정성을 담아 부르는 찬양이 하나님께는 더 큰 영광이 되고, 마음을 모아 드리는 예배가 더 아름다운 울림이 되어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기도하며 수고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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