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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첫 번째, 우리는 ‘2인자’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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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0-10-18 | 조회조회수 : 2,3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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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은 곳을 향하는 선교단체 ‘인터서브’



    변혁을 주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콜럼버스가 알을 깨듯 사람들의 상식과 구태의연한 사고를 뒤집어야 한다. 이젠 너무도 당연히 여겨지는 것이 파격이라 불리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상식은 파격이라는 모험을 감수한 선구자의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선교단체 인터서브는 선구자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분야에 앞서 발을 디뎠고, 지금에 와서야 상식이라 여겨지는 것을 먼저 고민했다. 그리고 그 변혁의 이유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가치가 중심에 있었다.


    인터서브는 1852년 여성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시작해 국제 선교단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 중 하나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붙들고 168년을 이어온 인터서브의 가치와 비전이 궁금했다. 지난 8일 인터서브코리아(대표:조샘 선교사) 사무실을 찾아 헌신과 섬김의 역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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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서브코리아의 리더십. 왼쪽부터 송기태 부대표, 서눔바 부대표, 김기학 부대표, 조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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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싱글 여성 선교사


    인터서브가 태동하던 19세기 중반은 서구권에서도 여성이 참정권을 갖지 못했던 시기다. 하지만 놀랍게도 인터서브는 오직 여성들의 힘으로 시작됐다. 그 당시에도 사회적 약자에 속했던 여성들이 자신들보다 더 어렵고 연약한 사람들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갔던 것이다. 조샘 대표는 인터서브의 시작을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향한 정신이었다고 설명했다.


    “1800년대 인도에는 제나나(Zenana)라 불리는 여성들의 규방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좁고 어두운 이곳에서 외부와 격리돼 평생을 보내야 했죠. 이들을 돕고 싶었지만 남성 선교사들은 한계가 명확했어요. 1852년 당시 영국에서 싱글 여성 선교사의 파송을 동의하는 교단은 어디도 없었지만 여성 두 명이 용기를 냈습니다. 인터서브는 이들 여성 선교사 두 명에 의해 시작됐어요.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라는 선언은 이후에도 쭉 인터서브의 핵심 가치로 남아있습니다.”


    최초의 여성 의료 선교를 시작한 곳 역시 인터서브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약 20년 뒤인 1871년 병든 여성들을 위해 여자 의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당시는 영국 전체를 통틀어 여의사가 단 두 명밖에 없었던 때다. 이런 경직된 상황에서도 여성 선교사 두 명이 인도를 돕기 위해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 중 한 명은 인도로 가는 배에서 사망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사역한 지 몇 개월 만에 과로로 순교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교사들의 희생과 섬김은 인도 선교의 밀알이 됐다.


    낮은 곳을 향한 인터서브의 가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1960년대부터 1973년까지 이어진 선교지 재산 이양이다. 개신교 선교는 교육과 의료 등의 통로를 활용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선교지에 학교와 병원 등 재산이 상당했다. 기독교 의료교육협회, 뭄바이의 퀸메리 고등학교 등 수많은 고아원과 학교, 병원들을 인도 현지 리더십에 모두 이양했다. 자산과 사역이 아니라 가치와 사람에 집중하는 결단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변화의 시작


    인터서브는 분명 선교단체지만 인터서브(International Service Fellowship)라는 이름에서 선교란 단어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인도의 ‘제나나 성경 선교회’로 시작해 ‘제나나 성경의료선교회’, ‘성경 의료 선교사 협의회’라는 변화를 거치면서도 언제나 선교라는 두 글자는 단체명에 새겨져 있었다.


    “제국주의 시대에 선교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미션’이라는 단어가 식민지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식민지배의 아픔과 제국주의의 폐해를 겪었던 대다수 선교대상국으로서는 미션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단체의 정체성을 점검하고 총체성과 국제협력성을 표현하기 위해 1986년 인터서브라는 명칭으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인터서브에서는 선교사들을 선교사가 아닌 파트너라고 부른다. 보통 인터서브 단체와 함께하는 파트너란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진짜 의미는 전혀 다르다. 인터서브의 파트너는 현지 교회의 파트너를 의미한다. 파트너들은 선교지에 가서 자신이 조직과 시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교지의 교회와 시설에 녹아든다. 이것이 인터서브에서 강조하는 가치인 ‘2인자 되기’다.


    선교라는 단어를 빼면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국제 인터서브는 초기의 선교와 의료라는 총체성의 균형을 잃고 지나치게 사회봉사와 NGO 활동에 치우쳐 있기도 했다. 이때 인터서브코리아가 다시 총체적 선교의 균형을 잡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1993년 처음 파트너를 파송하기 시작한 인터서브코리아는 복음전도와 제자양육의 열기를 국제 인터서브 전체에 불어넣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제 리더십과 필드 리더십에 들어가면서 지역교회들의 선교운동을 일으켰죠. 지금도 인터서브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된 삶과 공동체를 목표로 밸런스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터서브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그리고 있다. 선교사, 목회자 중심이 아닌 평신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선교운동이다. 전방개척지역에서는 더 이상 종교비자를 얻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는 민족주의를 심화시키고 국경의 문을 높이며 그 현상을 가속시켰다. 시대가 교회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서브는 최근 자체 선교사를 길러내는 리쿠르팅 스쿨을 중단했다. 선교사를 양성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더 중요한 사업에 집중할 필요를 느껴서다. 최근 4년 동안은 지역교회의 평신도를 깨우고 교육하며 컨설팅하는 일에 주력했다. 여전히 선교사를 파송하긴 하지만 단체의 절반의 역량을 한국교회를 깨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인터서브의 기존 슬로건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당신의 삶, 하나님의 선교’라는 슬로건으로 바뀌었어요. 이제 종교 중심의 선교가 아니라 평신도 중심의 총체적 선교가 필요합니다.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삶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깨우는 일에 인터서브가 선한 도구로 사용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이굿뉴스 한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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