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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교회와 유대교의 에덴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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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뉴스M| 작성일2022-07-26 | 조회조회수 : 14,7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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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들고 어디서 낙원을 찾는가?



    12세기 중반 서구 교회에는 동방의 어느 지역에 그리스도교 사제가 다스리는 왕국이 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어마어마한 영토의 크기, 각종 진기한 동식물, 풍부한 농산물, 강력한 군사력 등 갖출만한 것은 다 갖춘데다가 기독교 왕국이라고 하니 서방 교회가 이 소문에 솔깃한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왕은 그런 권력에도 불구하고 겸손까지 하여서 스스로 사제의 칭호를 택해 바깥 세계에서는 그를 사제왕 요한(Prester John)으로 불렀다.


    소문은 소문을 낳아 사제왕 요한이 서방 교회에 보냈다는 편지가 100여 통 이상 돌아 다녔고, 곧 사제왕이 교황을 알현한다는 소문에서부터 그의 군대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해서 힘를 보탤 수도 있다는 데까지 사제왕의 이야기는 위기에 몰린 서방 교회가 듣고 싶은 이야기로 각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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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현도 참전도 당연히 없었고 나라 자체가 헛소문일뿐이었다. 이슬람의 발호, 각종 전염병의 유행, 동서양 교회 사이의 깊어 가는 골, 지지부진한 십자군 전쟁의 전황(戰況)은 새로운 곳에서 나타날 메시아를 기다리기에 좋은 토대가 되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사제왕 요한이 징기스칸에게 멸망당한 케레이트 부족장 트오릴 칸(완 칸,Unc Khan)이었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르코 폴로’에는 징기스칸의 후손으로 자신의 왕국을 갖고 있었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 나얀이 나온다. 교황청은 징기스칸의 직계 손자인 쿠빌라이가 서구세계로 진격할까 두려워 나얀을 이용하는데 드라마에서 교황과 만난 나얀이 자기가 사제왕 요한을 본 후에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때 교황은 정말 만났냐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동방견문록의 사실성이 의심받고 있지만 어쨌든 13세기 후반까지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는 계속 회자되고 있었다는 의미다.


    나얀은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에게 맞선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당했다. 징기스칸 가문에 나얀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네스토리우스파, 사제왕 요한 그리고 교황과 나얀의 관계는 마르코폴로의 기록말고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허구의 이야기인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는 어디서 나왔는가? 앞서 여러 번 언급한 도마와 인도 왕 구다파라,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는 궁전건축의 설화를 담은 도마행전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구다파라 왕 전승은 6세기 경 다시 한번 각색된다. 성서에 나오는 동방박사의 이름과 숫자가 이 때 정해졌다. 성경에는 3개의 선물이 아기 예수께 바쳐졌다고 나오지 세 사람이라는 숫자는 특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6세기 교회는 여러 전설을 모아서 세 사람의 이름을 가스파르, 발타자르, 멜키오르라고 정하는데 이중 가스파르가 바로 1세기 인도의 왕 구다파라였다는 것이다.


    동양에 대한 신비가 쌓여가던 중에 중세의 위기에 닥치자 동양 어딘가에 사제왕 요한이 다스리는 풍요로운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김호동의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지역에 네스토리우스 계열의 부족국가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국가 중 하나의 이야기가 확대 후 와전되었을 것이다.


    12세기 유명한 역사가 오토는 사제왕 요한을 처음 공식적으로 언급한 인물이다.


    사제왕 요한은 복음서에 언급한 옛 박사들(마기)의 후예로 그들이 지배했던 것과 같은 모든 민족을 지배하고 있으며 또한 그 영광과 번영 때문에 에머랄드의 홀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야나가 노부미, ‘환상의 동양’에서 재인용)


    여기서 언급된 3명의 동방박사 중 한 명은 가스파르, 즉 구다파라 왕이라고 했다. 따라서 사제왕 요한은 동방박사 중 구다파라의 직계 후손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몇 해 뒤, 12세기 중엽에 사제왕 요한이 보냈다고 하는 편지가 서구 교회에서 유행처럼 번지면서 이 전승은 더욱 의미와 희망을 갖추어 갔다.


    도마교회의 전통만으로 이런 유행이 가능했을까?


    ‘편지’라는 단어에 집중하면 실마리가 보인다. 사제왕 요한의 편지 사건이 있기 200여년 전 스페인 코르도바의 궁전에서 일하던 하스다이 이븐 샤프루트는 동유럽에 접해 있다고 알려진 하자르 인들의 왕 요셉 벤 아론에게 편지를 썼다.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처럼 동유럽 어딘가에 유대인(혹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이 다스리는 왕국이 있다는 소문이 전해졌기 때문에 그에게 보내는 편지다.


    상인들이 저에게 와서 '알 하자르'(Allkhazar)’라 불리는 유대인들의 왕국이 있다고 말하였으나 저는 이들이 저에게 접근하고자 아첨으로 하는 말이라 생각하고 그 말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일에 대해 어찌 생각 하여야 할지 모르고 있던 차에, 어느 날 콘스탄티노플에서 저들 왕의 선물을 우리 왕에게 전하는 사절단이 왔기에 그들에게 이 일을 물어보았 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사실이고, 그 왕국은 '알 하자르'라 불리며 알콘스탄티노플과 그나라 사이에 뱃길로 15일 걸린 여행을 한 번 했다고 하지만 땅으로는 그 나라와 우리 사이에 많은 민족이 있다고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 왕의 이름은 '요셉'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마음으로부터 힘이 솟구쳐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희망이 격해졌으며, 머리 숙여 하늘에 계신 주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귀국 에 가서 진상을 알아내고 귀하신 왕께 인사드리며 우리 형제인 그 신하 들과도 인사를 나눌 충성스러운 사절을 찾았으나, 거리가 너무 멀기에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슐로몬 산드, ‘만들어진 유대인’에서 재인용)


    ‘만들어진 유대인’은 제목처럼 유대인의 인종적 단일성을 부정한다. 저자 슐로몬 산드는 현재 텔아비브대학 교수인데 이 책이 우리 말로 번역(김승완 옮김, 2021년) 출판될 때 각종 서평은 유대인의 정통성을 부정한 그의 연구는 에릭 홉스봄, 베네딕트 앤더슨의 탈민족주의 비판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치켜 세웠다. 민족주의가 인종적 동일성에 기초한 개념이라면 그에 대한 이런 분석은 맞다. 그러나 저자는 민족적 동일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먼 러시아(동방) 지역까지 유대인 왕국이 건설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유대(교)인, 즉 유대주의 신봉자인듯 하다. 구성원은 집단 개종한 비유대인일 수 있지만 어쨌든 지도자는 유대인의 후손이다. 알 하자르의 요셉 왕도 구약의 예언자 오바댜의 후손이라는 것이다(슐로몬 산드가 단언한 것은 아니고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 전할 뿐이다).


    구 소련지역에 편만해 있는 유대인들을 보면 10세기 이전에 그들의 인종적 혈통이 무엇인든 간에 ‘유대인’으로 호명되는 사람들이 주축인 왕국이 존재했던 것은 맞다. 저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들의 고대어와 히브리어의 일부 유사성 등 다양한 사료들을 제시한다. 적어도 이까지만 보면 기독교의 사제왕 요한보다는 알하자르 요셉왕이 많은 사실(史實)에 기초하고 있다. 다만 알하자르 왕국의 이야기는 많아도 요셉이라는 왕의 이름은 찾아 볼 수 없다.


    ‘편지’ 부분에 가면 민족주의를 극복했다는 슐로몬 산드의 진정성이 의심된다. 사제왕 요한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편지가 진짜일리 없지만 적어도 최초 발신자는 ‘사제왕 요한’이다. 반면 알하자르 왕 요셉의 편지 이야기는 최초 발신과 그에 대한 요셉왕으로 온 편지의 수신이 모두 하스다이 이븐 샤프루트의 글 속에서만 확인될 뿐이다.


    요셉왕 요한왕 둘 다 사기라는 말이다. 사료로만 따지면 요셉 왕의 이야기가 조금 더 풍성하지만 이야기의 탄생 과정만 놓고 보자면 하스다이 이븐 샤프루트가 시작한 요셉왕의 이야기는 허술하다.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중세 교회가 요셉왕의 경우를 많이 모방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럼 왜 전설(거짓)의 왕은 동방에 나타나는가?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했는데 이 동산에서 흐르던 하나의 강이 네 개로 갈라졌다. 네 개 중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은 특정할 수 있는데 나머지 두 강이 모호했다. 중세신학자들은 기혼을 나일강에 비손을 갠지즈 강이라고 추정했다. 예루살렘에서 보기에 인도 갠지즈 강도 동쪽인데 갠지즈 강의 원류인 그 ‘강’은 더욱 동쪽에 있어야 했다. 다시말해 동방은 도래할, 아니 그곳에 있어야 할 에덴의 장소였다.


    종교에서 낙원을 찾고, 낙원에 얽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기독교 및 유대교와 같은 원류를 가진 이슬람의 출현이 두려웠기에 낙원 신앙은 더욱 다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여기서 유대교는 자유롭다) 거의 200여년에 달하는 기간동안 ‘십자군’의 이름으로 자신들이 살던 터전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난 후 찾는 낙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현대 사회의 기독교는, 여기서는 유대교도 자유롭지 못하다, 혐오와 배척으로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데 앞장 서고 있다. 도대체 지금 발 딛고 있는 곳을 지옥으로 만들면서 찾는 낙원은 동서남북 어디에도 없다.  요셉왕 이야기의 최초 발설자 하스다이 이븐 샤프루트는 코르도바의 이슬람 왕실에서 요직에 있던 유대인이었다.  그는 왜 애먼 데서 낙원을 찾았을까? 슐로몬 산드에게 물어봐야 하나?


    김기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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