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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에 갇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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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1-08-27 | 조회조회수 : 1,6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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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 세상의 중심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파악한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나와 타자들의 거리가 적정선에서 유지될 때는 편안하지만, 그 거리의 규칙이 무너질 때는 불편해 한다.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 실은 멀리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서운함에 사로잡히고, 멀다고 생각한 이가 암암리에 세워둔 심리적 경계를 넘어 성큼 다가올 때 불쾌감을 느낀다.


사람은 단독자로 태어났지만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함께 그러나 홀로’ 존재인 인간은 그 묘한 균형을 찾지 못해 흔들리고 시시때때로 감정의 부침을 겪는다. 상대방이 나의 기대대로 움직여 줄 때는 평화롭지만 자율적으로 처신할 때 불화가 빚어진다. 관계에 금이 가는 것이다. 그 금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더 커지게 마련이다.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 상대방의 말이나 특정 행동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워지기도 한다. 그 마음을 자기 속으로 끌어들여 성찰을 통해 삭히거나 승화시키면 다행이지만, 그것을 언어화하여 발설하는 순간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진다. 언어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창조하기도 하니 말이다. 관계의 파탄이다.


그때부터 어떤 프레임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거나 해석할 때 사용하는 인식의 틀이다. 프레임은 대상을 향한 우리의 감정, 태도, 판단을 내포한다. 프레임은 객관적일 수 없다. 모든 프레임은 편파적이다. 따라서 폭력적이기 쉽다. 자기 프레임 속에 다른 이들을 대입하는 것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를 딱딱한 틀 속에 가두는 것과 같다. 생명에 대한 억압인 동시에 왜곡이다. 프레임이 작동하는 순간,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의 선입견을 재확인하게 해주는 정보만 받아들인다. 프레임이 타자를 가두는 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가두는 감옥인 것은 그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를 두고 많은 논란이 빚어졌다. 사실은 논란거리라 할 만한 것도 못된다. 일단의 사람들이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는 그가 페미니스트인 증거라면서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다.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는 사안이었지만 언론이 그 이야기를 가십성으로 다룸으로 공론의 장이 형성됐다. ‘짧은 머리’와 페미니즘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이 기괴하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분열되어 있고 경직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적 사건이다. 모든 사람이 정보의 생산자가 된 시대에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부정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유통시킨다. 진실 혹은 인간에 대한 예의는 고려되지 않는다. 오염된 정보를 접하는 이들은 끈적끈적한 불쾌감에 사로잡힌다. 경쾌한 유머가 잦아들고 명랑한 얼굴 또한 사라진다. 우리는 디스토피아 앞에 서 있다.


프레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자기 확신이라는 덫에 확고히 포박된다. 갇혀 있으면서도 갇힌 줄도 모른다. 세상의 진실을 보고 있는 것은 자기들뿐이라는 오도된 선지자 의식으로 인해 그들은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프레임에 종교적 확신이 더해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근본주의적 태도가 내면화되기 때문이다. 신앙은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시민적 상식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라는 말이 아니다. 신앙의 신비는 역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만, 신앙의 진실함은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스스로 입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중심성은 뿌리가 깊어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 그러나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가끔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 사랑에 사로잡히는 순간이다. 사랑은 자기를 초월하게 해준다. 고립감을 털고 일어나 일치의 신비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우리 속에 불어넣는다. 사랑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이 있다. 고통 받는 이들 곁으로 다가가 벗이 되어주고, 그들 속에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들 말이다. 사랑을 가시화함으로 인류에 봉사하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는다.


김기석 목사(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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