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곤혹스러운 박수갈채의 문제(The Sticky Matter of Applause)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칼럼

홈 > 문화 > 칼럼

[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곤혹스러운 박수갈채의 문제(The Sticky Matter of Applause)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2021-09-14 | 조회조회수 : 754회

본문

새로운 예배의 거의 보편적인 상징들 중의 하나는 솔로 연주자나 혹은 그룹이 박수 갈채를 유도하는 음악을 선곡(발췌)하는(applauding musical selections) 습관입니다. 이 관습은 50년 전에는 그 어떤 예배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에, 텔레비전 전도 및 레코딩 스타들에 의한 종교음악회(sacred concerts)의 영향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카리스마 교회들 또한 이 현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성경적인 예를 따라(시 47:1), 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리드미컬하게 자주 박수를 칩니다. 그리고 때로는 “하나님께 박수를 보낸다”라고 해석하는 긴 박수를 치면서 회중들이 하는 대로 따라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또한 사람들이 설교 후에 복음에의 초청에 응할 때 회중의 기쁨의 표현으로써 사용된 박수갈채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이해심을 갖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에, 설교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이나, 또는 목사님과 함께 목회 기도를 하면서 손뼉도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제 느낌으로는, 교회의 그러한 특수한 문화적 관습 이외에, 예배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위한 박수는 “연주를 잘했다거나, 노래를 잘 불렀다” 혹은 “난 당신이 한 연주가 좋았습니다”라고 말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표현 모두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연주자나 청취자의 즐거움과 더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르간 연주자로서, 제가 예배에서 어떤 발췌곡을 연주한 후에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연주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미의 제물이 되기를 의도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 그 음악에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엡 5:19)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거나 혹은 아멘으로 응답하며 조용히 감사한 마음으로 들으셨더라면 저는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박수갈채는, 선의의 일이더라도, 우리에게서 그 기회와 특권을 빼앗아 갔습니다. 비록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여러분은 예배를 연주회(concert)로 만들었어요.”


최근에, 예배 기획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한 목사님이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그런 음악을 듣고 너무 감정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그저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야 합니다. 감정 표현을 억누르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논쟁(손뼉 치는 것 자체뿐만 아니라)은 박수를 자극하는 듯한 음악에 관하여 중요한 무언가를 말해줍니다. 명백한 것은 그것은 소리로써 매우 인상적이어서 하나님도, 심지어 음악의 가사도 아닌, 그 소리 자체로 혹은 압도적인 연주로 주의를 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루틀리(Routley)와 월터스토프(Wolterstorff)가 왜 교회음악은 겸손성(modesty)과 소박성(simplicity)이 특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관행에 내재되어 있는 유혹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가장 자극하는 음악에 제일 활기차게 반응합니다. 독주자나 음악감독들은 더 중요한 이유 때문이 아닌, 회중의 박수갈채 계측기로부터 받은 정보에 근거하여 그들의 음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자신을 베이비부머 시대(6-70대)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특징짓는 많은 사람과 대부분의 다른 세대의 사람들도 박수치는 것을 단순히 그들이 선택한 반응일 뿐이며, 최소한 그들은 음악인들에게 재능을 주시는 데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만일 박수가 “마음으로부터” 소중하고 중요한 복음의 진리를 우아하게 노래하는 조용한 합창 연주를 포함하여 예배의 모든 순서의 행위에 따랐다면, 박수 치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현시(self-revealing)에 대한 새로운 반응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동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훌륭하고 멋진 소리에 의한 감정의 자극에 대한 반응에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KCMUSA, P.O. Box 2306, Fullerton CA 92837 |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