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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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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2-12-12 | 조회조회수 : 8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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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한 미국 교회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가는 교회였지만 밖에서부터 드러나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 건물은 찾는 이의 마음을 엄숙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차장 한 쪽에 차를 세우고 교회 건물을 향해 갔습니다. 날은 저물어 가고 비는 추적추적 내렸지만, 주차장 앞에 서 있는 건물의 모퉁이만 돌면 교회로 들어서는 입구가 바로 나오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뛰어갔습니다. 


    그렇게 건물 모퉁이를 돌아섰는데 그곳에는 문 대신 벽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다시 주차장으로 나와 건물 반대쪽으로 돌아서니 입구가 나왔습니다. 그 사이에 흩날리는 빗방울을 고스란히 몸으로 맞았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맞았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바로 건물로 들어서도록 입구를 만들어 놓을 것이지 건물을 한 바퀴 돌아서 입구를 만들어 놓으면 어떻게 해?’라고 하면서 애꿎은 교회를 향한 불평만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방문자들이 교회에 오면 쉽게 입구를 찾도록 해야지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며, 요즘같이 편리함을 따지는 세상에서 이런 불편한 구조를 왜 안 바꾸지 모르겠다는 원성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원망의 대상은 교회를 설계한 사람에게까지 넘어갔습니다. ‘이건 분명 설계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동행했던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물었다기보다는 제 생각이 맞다는 확인을 받기 위한 투정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건축을 전공하시고, 설계사로 일하시다가 목사님이 되신 분이기에 전문가의 시각으로도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한참 뜸을 들인 후에 나온 그 목사님이 대답이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아니라니요? 이건 누가 봐도 불편한 구조인데, 설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교회가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나요?” 제 질문에 그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건축가의 숨은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 목사님의 해석이 이어졌습니다. 


    “이 교회를 설계하고 건축한 분들은 한 주간 세상에서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만이라도 경건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긴 담벼락을 따라 건물을 돌아 예배당을 향해 나아가게 만든 불편함 속에는 세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거친 삶의 흔적으로 생채기 난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영혼을 어지럽히는 부산물들을 가라앉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조금 전에 왜 이렇게 멀리 돌아가게 하냐고 불평하며 걷던 길이 달리 보였습니다. 그 길은 세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길이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자의 거친 마음을 점검하는 자성의 길이었고, 영혼을 혼탁하게 만드는 부산물을 가라앉히는 경건의 길이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어느 교회에 가든 주차장에서 되도록 차를 멀리 세우고 갑니다. 그 시간이 마음의 분주함과 영혼의 혼잡함을 내려놓고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주함과 혼잡함을 내려놓는 시간은 교회 주차장에서 예배당으로 걸어갈 때만이 아닙니다. 교회로 운전하고 오는 길도, 집에서 교회 갈 준비를 할 때도, 아니 한 주간의 삶 자체가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멀리서 운전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고속도로로 한참을 달려야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얼마든지 멀다고 불평할 수 있는 길이지만, 사실 그 먼 길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의 삶을 정돈하고 돌아보는 길입니다. 마음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한 주간 살면서 영혼에 낀 찌꺼기들을 씻어내는 시간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분주함은 소중한 사람들을 바라볼 여유를 훔쳐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다정한 눈맞춤도, 소소한 대화도 접어 두고 그저 정신없이 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을 빼앗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도 주지 않습니다. 분주함은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조차 생략하게 만듭니다. 


    오늘도 먼 길 달려와서 예배당에 앉아 머리 숙일 때,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마음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영혼의 찌든 때를 씻어 버리고 주님을 예배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예비하신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빛으로 오셔서 우리의 삶을 밝히시는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이 가득한 대강절 셋째 주일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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