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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리며 방향을 잡는 나침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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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3-01-17 | 조회조회수 : 2,0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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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학교 앞 문방구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곳에만 가면 찾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책과 연필 등 학용품을 비롯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딱지와 구슬, 각종 장난감이 즐비했습니다. 큼지막한 눈깔사탕도 있었고, 지금이야 불량식품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없어서 못 먹던 먹거리들이 가득했습니다. 


    문방구는 학교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아는지 문방구에만 가면 어김없이 있었습니다. 미술 시간에 물감과 붓을 가지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방구로 달려가면 선생님이 말씀하신 물감과 붓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 시간에 필요한 탬버린이나 리코더도 문방구에만 가면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자연 시간에 쓸 나침반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나침반도 문방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납작하고 동그란 플라스틱 통 안에는 반은 빨간색이고 반은 파란색인 바늘이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흔들리는 것이 고장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왕에 사는 것 좋은 걸로 사야지 하면서 바늘이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을 골라서 학교에 갔습니다. 


    선생님께서 나침반을 돌려 방향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돌리면서 방향을 찾았지만 제 책상 위에 있는 나침반은 방향을 찾지 못했습니다. 바늘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바늘을 만지더니 다시 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바늘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어느 순간 멈췄습니다. 선생님은 빨간색 바늘 끝이 가리키는 곳이 북쪽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나침반의 원리를 열심히 설명하셨지만, 그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기억하는 것은 그 나침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방향을 잡기 위해 온몸을 비틀며 흔들거리던 모습뿐입니다.


    살면서 우리도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쉬운 결정도 있지만, 때로는 미래가 바뀌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민자들에게는 고향을 떠나는 결심이야말로 가장 큰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수많은 결정을 하면서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런 결정의 순간마다 우리 인생은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인생도 그렇지만, 세상도 흔들리면서 방향을 잡았습니다. 국가적 위기도 있었고, 전 세계적 재난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요동쳤지만, 결국은 그 흔들림을 이기고 방향을 찾았습니다.


    인생이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흔들림은 어쩌면 당연한 흔들림인지도 모릅니다. 쉬운 결정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결정이 우리의 인생을 여기까지 오게 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나침반만 흔들거리면서 방향을 잡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꿀벌은 온몸을 흔들어 8자 춤을 추면서 다른 꿀벌들에게 꽃이 있는 방향을 알려 줍니다. 어느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노래하면서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흔들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흔들린다는 것은 방향을 잡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때로는 흔들리기에 어지럽고, 아프고, 힘이 많이 들어도 기꺼이 흔들리면서 가는 게 인생입니다. 


    분명한 것은 흔들리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은 가짜이기 쉽습니다. 바늘이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은 고장 났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교단 탈퇴를 묻는 교인 총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시작은 동성애 문제로 인한 해묵은 교단 내 갈등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흔들리는 것은 우리 교회이고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흔들리며 방향을 잡아가는 나침반처럼 우리 교회도 비록 지금은 심하게 흔들리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향을 잡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하나님께 우리의 내일을 맡기고 지금은 세차게 흔들릴지라도, 비틀거리면서도 믿음의 길을 올곧게 가야 합니다. 세상이 어긋났다고 우리의 발걸음까지 어긋나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우리마저 법을 어길 수 없습니다. 큰 흔들림 속에서도 방향을 찾으려고 눈물로 기도하시는 여러분과 우리 교회를 사랑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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