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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진달래”보다 “아리랑”에 더 가까운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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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3-08-11 | 조회조회수 : 2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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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수 이후, 아브라함의 시대로부터 왕국의 견고해지는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지속되었고 풍성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꾸준히 심화시켰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왕이요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대단하신 “우주의 통치자”(Cosmic Ruler), “영원하신 왕”(Everlasting King)이자 “스스로 계신 자”(YHWH) 하나님께서 인간의 우상 숭배 때문에 “질투하신다”는 성경 본문을 읽으면 놀랍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노골적으로 자신이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은 없고, 무익하며, 자신만이 세상을 창조하고 운행하며, 노예 민족을 해방 시켜 자유롭게 하는 참된 하나님이라고 수없이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처럼 초연한 연인의 모습은 결단코 아닙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하나님은 자신을 떠나는 연인을 초연히 보내 주시는 분이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눈을 돌려 다른 우상을 섬기면, 괴로워하고 분노하고, 선지자를 통하여 자신의 아픈 마음을 토로하시다가 결국은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의 민요 “아리랑”의 창작자 같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이는 사랑하는 연인을 보내지 않겠다는 말이고, 연인과 함께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네가 없으면 나의 행복도 없고, 나 없이 너도 반드시 병들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그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알을 숭배하며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꼭 아리랑 노래 가사처럼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Baal)임이라”(렘 3: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렘 4:1).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결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상기시키며, 이스라엘을 향해 “나는 너희 남편이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를 보고 그 바알의 이름까지 사용하시며, 내가 진정한 “바알”이라고 하십니다. 이 바알은 셈족의 신의 이름인데, 그 의미는 종종 남편, 주인 그리고 소유주로 해석되었습니다. 

       

    현대인은 신을 종교적 차원의 존재라 생각하지만, 사실상 고대의 신, 엘, 몰렉, 그모스, 벨, 마르둑과 레 등의 신은 정치-종교적 왕이자 숭배받을 초자연적 존재의 명칭입니다. 신은 예식(ritual)의 대상만 아니라, 삶의 전반을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왕, 곧 영원무궁한 왕이셨습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권세 있는 남편을 만나는 것이 아내의 행복을 거의 결정하는 것처럼, 참된 신은 이생의 삶은 물론이고 저승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를 자신의 닮은 꼴,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우상 숭배를 싫어하며, 질투하시고, 회심을 요청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사람 꼴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십 리도 못가 발병이 납니다. 하나님이랑 가야 합니다. 셋째로는 하나님 안에서야 비로소 인간의 존엄과 영광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탕자를 기다리듯이 오늘도 나를 기다리십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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