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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長夏)의 계절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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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3-08-15 | 조회조회수 : 4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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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가주의 불볕더위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 정도 날씨를 가지고 덥다고 말하기가 겸연쩍지만, 예년에 비해 기온이 오르고 습도도 높아지면서 이래저래 더위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옛날에는 에어컨 없이도 지낼만했는데, 이제는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들게 되었다고들 말합니다. 


    전문가들은 올 7월이 기상 관측이 시작된이래 전 세계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달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 말대로 남가주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뜨거운 맛을 보고 있습니다. 데스밸리는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고 하고, 알래스카에서는 빙하가 녹으면서 발생한 홍수로 건물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미 남서부와 멕시코, 유럽과 아시아도 그 어느 때보다 더 무더운 여름을 지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지구 온난화’라는 타이틀로 호들갑을 떨던 언론은 이제 ‘지구 열대화’라는 단어를 쓰면서 두려움을 심습니다. 


    남가주의 여름은 진행형입니다.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를 지났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여름은 계속될 것입니다. 더위로 몸살을 앓는 계절이지만, 그래도 여름은 더워야 여름답습니다. 봄이 움트는 계절이요, 가을이 무르익는 계절이고, 겨울이 매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생명이 자라는 계절입니다. 자란다는 것은 막혔던 것들이 뚫리고, 꼬였던 것들이 풀리는 것입니다. 나무는 따스한 여름 바람을 맞으며 푸른 가지를 길게 뻗고, 각종 열매는 여름 햇볕 가득 머금은 채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여름에는 자연의 생명체만 뚫리고 풀리면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응어리진 마음도 뚫리고 풀리면서 자라야 합니다. 겨울 추위처럼 세차게 몰아치던 세상 풍파에 움츠러든 마음이,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해서 부는 꽃샘바람처럼 매몰차게 일어나는 질투와 시기의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계절도 여름입니다. 옛사람들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또 하나의 계절이 있다고 하면서 ‘장하(長夏)’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장하의 계절은 속으로 익어가는 때입니다. 그런 장하의 계절을 지나기 전, 속이 다 영글기도 전에 따는 열매나 채소의 이름 앞에는 ‘풋’이라는 접두사가 붙습니다. ‘풋고추, 풋과일, 풋사과, 풋마늘, 풋배추’에 붙는 ‘풋’은 ‘처음 나온’ 혹은 ‘덜 익은’이라는 뜻입니다.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면서 우리가 덥다고 투정 부리는 사이에 교회 마당에 있는 작은 텃밭에서 딴 풋고추가 주일 점심 식탁을 찾아왔습니다. 


    식탁에 올라온 풋고추는 너무 맵지 않으면서도 아삭한 식감으로, 더위에 잃은 입맛을 되돌리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장하의 계절에 만난 풋고추를 한 입 베면서 과일이나 채소, 곡식에만 장하의 계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장하의 계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에 필요한 장하의 계절은 성숙해지는 시간이고, 기다림을 통해 무르익는 시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장하의 계절’을 지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만들던 시간은 하나님의 약속이 영그는 ‘장하의 계절’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이삭을 낳으면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25년이라는 ‘장하의 계절”을 지나야 했습니다. 또,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애굽의 왕자로 40년, 광야에서 40년이라는 ‘장하의 계절’을 보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람들의 의심과 냉대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까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복음을 전한다고 하니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가서 3년을 보냈고, 고향 다소로 내려가서 다시 한참을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은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사라진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기다림을 통해 사명이 영그는 ‘장하의 계절’이었습니다. 


    장하의 계절은 설익은 인생이 무르익는 때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속이 영그는 변화의 시간입니다. 기다림의 시간만큼 품이 넓어지면서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숙성의 계절입니다. 실타래처럼 엉긴 인생의 문제와 응어리진 우리의 마음이 풀리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장하의 계절’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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