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中-

죽음과 삶 사이를 여행하던 '시대의 지성'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암 투병 끝에 지난달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딸 이민아 목사를 떠나보낸 지 10년만이다.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 평생을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장관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며 한국 문학계를 포함한 곳곳에 큰 족적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1977년 이상문학상을 제정,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으로 만들었으며, 1988년에는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대본을 집필해 지금도 회자되는 '굴렁쇠 소년'을 연출했다. 1990년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으로 역임하며 지경을 넓혔다.

 ▲지난달 26일 소천한 이어령 교수.(사진출처=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소천한 이어령 교수.(사진출처=연합뉴스)

고 이 교수는 대학교 2학년이던 1956년 한국일보에 실은 '우상의 파괴'라는 논설로 주목을 받았다. 문단의 거두였던 소설가 김동리, 모더니즘 시인 조향, 소설가 이무영을 비판한 글로 문단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에는 TV가 보급되지 않아 연예인 보다 문인들이 높은 인기를 누렸다.

30대로 접어들어서는 이 교수가 평생에 걸쳐 연구하게 되는 '한국 문화'에 대한 에세이를 경향신문에 연재했다. 글은 한국의 건축, 의상, 식습관, 생활양식 등에 대해 예리하고 통찰력 있게 지적해 한국 문화의 기치를 세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글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며 1963년 1년간 국내에서만 10만부가 팔렸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며 해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진기록도 세웠다.

1982년에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출간했다. 책은 쥘부채, 주먹밥, 휴대용 카메라 등 일본 문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축소지향성’을 꼽으며 일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분석했다. 고인은 1981년부터 일본 도쿄대 비교문화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지내며 일본어로 이 책을 썼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한국어와 영어, 불어로도 번역됐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접목을 말하는 '디지로그'의 개념을 제시했다. 디지털 기술의 부작용과 단점을 공동체 정서의 아날로그 감성으로 보완하는 새로운 문명 시대를 한국이 이끌 것으로 예견한 것이다.

이 교수는 저서에서 "정보기술(IT)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지만 디지털 강국은 한국이 먼저"라며 "한국인들이야말로 디지털의 공허한 가상현실을 갈비처럼 뜯어먹을 수 있는 어금니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디지로그'는 2006년 출간된 책으로 현재 디지털 기술에 대한 한국의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고인의 통찰력이 굉장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2020년에는 '한국인 이야기'를 저술하며 '흙 속에 저 바람속에'부터 60년 가까이 연구해온 한국 문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줬다.

 ▲이어령 교수.(사진출처=연합뉴스)
 ▲이어령 교수.(사진출처=연합뉴스)

이처럼 시대를 앞서는 통찰력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해온 이 교수. 그는 2007년 회심하며 세례를 받게 된다. 본래 무신론자로 유명해 기독교계와 '이성과 영성 논쟁'을 벌일 정도로 반기독교적 인물이었던 그가 예수를 믿게 된 데는 딸인 고 이민아 목사의 실명위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6년 이 목사는 망막박리증으로 인해 빛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상황. 이 교수는 "딸의 눈을 뜨게 해주면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했다. 이 목사의 망막박리증세는 7개월 만에 사라졌다. 성도들을 박해하던 바울처럼 회심하게 된 것이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체험에 이 교수는 "절대로 밖에 나가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된다. 모든 사람이 널(이민아 목사) 비웃고 우리를 박해할 것"이라며 "기적은 구제의 사인이지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고 말했다.

문학계 거인의 세례에 따른 반발도 이어졌다. 특히, 연세대학교 철학과 강신주 교수는 "인문학자가 어떻게 종교를 가지냐"며 이 교수의 세례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인문학자는 고통의 폭이 더 넓어야 다른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는데, 그만큼 고통스럽기 전에 교회에 가는 것"이라며 "인문학자는 신을 믿는 순간 글을 쓰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가 이전에 해왔던 박해를 되돌려 받은 셈이다.

이 같은 비난에도 이 교수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지성에서 영성으로',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등을 저술하며 삶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2010년에 발간한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삶이란 질문에 해답으로 영성을 제시한다. 현재까지 신앙인들의 신앙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책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어령 교수의 유작 '메멘토 모리'.(사진출처=열림원)
 ▲이어령 교수의 유작 '메멘토 모리'.(사진출처=열림원)

이 교수가 1월에 출간한 유작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죽음과 대면했을 때 가톨릭 신부에게 던진 스물네가지 질문에 대해 이 교수의 입장에서 답한 저서다.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한 챕터를 차지한 제목이기도 하며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음과 동행한 이 교수의 진수가 담겼다.

그는 책을 통해 "메멘토 모리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라며 "이모털(immortal, 죽지 않는)한 존재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하나님 이외의 존재는 다 죽는다. 그게 원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코로나 패러독스(Corona Paradox)의 시대에 마지막 희망은 기독교"라며 "오늘날 불신받고 쇠퇴해가는 기독교에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인간의 오만과 그로 인한 재앙을 극복했던 그 힘을 되살려내야 한다"고 전했다.

 

[전화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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