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심판 가운데서도 타락한 인류 구원할 메시아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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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일보|
작성일2020-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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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응렬 목사의 창세기 산책 <7>
류응렬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목사(앞줄 왼쪽 네 번째)가 지난해 10월 미국 버지니아 김우홍 장로 자택에서 당회원들과 함께했다.
중국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칠 때였습니다. 선교사님 한 분이 특별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집중적으로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였는데,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던지 신약성경은 거의 암송할 정도였습니다. 온종일 밥만 먹고 성경만 읽어서 성경은 잘 아는데,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를 만났습니다. 성경을 펼쳐 놓고 창세기 3장 15절을 읽었습니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 알겠니.” “예수님이잖아요.” “어떻게 그걸 알았니. 누가 가르쳐 주더냐.” “아뇨, 성경을 계속 읽다 보니 예수님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의 고백에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그 아이가 성경을 읽다가 스스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사실에 놀라웠고, 하나님이 그의 지성을 밝히셔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성경은 그 자체로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이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성경을 읽기만 해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관한 책을 수십 권 쓴다 해도 창세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의 책은 지성을 만족시킬 뿐 아무런 영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구약의 복음이라고 불립니다. 신약성경에 요한복음 3장 16절이 있다면, 구약성경에는 창세기 3장 15절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약속에 근거해 인류의 죄악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고 약속대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소망이 되셨습니다.
찾아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음성은 평소처럼 따스한 목자의 음성이었습니다. 범죄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님이 찾아오시기 전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차선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때라도 회개하는 일입니다. 아담은 차선의 기회마저도 놓쳐 버립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범죄한 아담에게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아담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좋아했고 하나님도 아담과의 친밀한 관계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나 친밀함과 사랑의 대상이던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됐습니다.
“아담아, 네가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 모든 것을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이렇게 질문하실까요. 사랑하는 아담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애틋한 마음이 묻어 있는 질문입니다.
아담의 대답은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범죄의 원인이 하와에게 있다고, 여자를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듯 말합니다.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고백했던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이제 비난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자신의 고결한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가 자신의 어그러진 모습의 원인 제공자가 된 것입니다.
생명을 던져서라도 보호해야 할 아내를 무참하게 비난하는 남편의 실제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왕적인 모습이나 만물을 다스리고 책임져야 할 존엄한 모습이 다 사라졌습니다.
아담의 모습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첨예한 대조를 이룹니다.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며 아무런 죄가 없는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죄인이 돼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조롱하는 무리를 향해 주님은 눈물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메시아를 약속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타락한 인류를 구원할 약속을 하십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성경에서 가장 빛나는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한 손에 심판의 칼을 쥐신 하나님은 다른 손에 자비의 약속을 쥐고 계셨습니다. 언젠가 여인의 후손으로 나타날 메시아가 사탄의 세력을 끝낼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약속을 향해 진행되고 신약성경은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을 보여 줍니다.
‘여자의 후손’에는 원문을 보면 ‘그’라는 3인칭 남성 단수가 사용됐습니다. 즉 “그녀의 후손인 그가”로 번역해야 맞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은 여인의 후손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한 사람은 아담의 후손이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타락한 인류를 포기하지 않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해 메시아를 약속하고 보내신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집니까. 이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 구약성경이고 이 사랑의 성취가 신약성경의 예수님입니다.
류응렬 목사<와싱톤중앙장로교회>
국민일보
류응렬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목사(앞줄 왼쪽 네 번째)가 지난해 10월 미국 버지니아 김우홍 장로 자택에서 당회원들과 함께했다.
중국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칠 때였습니다. 선교사님 한 분이 특별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집중적으로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였는데,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던지 신약성경은 거의 암송할 정도였습니다. 온종일 밥만 먹고 성경만 읽어서 성경은 잘 아는데, 아직 예수님을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를 만났습니다. 성경을 펼쳐 놓고 창세기 3장 15절을 읽었습니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 알겠니.” “예수님이잖아요.” “어떻게 그걸 알았니. 누가 가르쳐 주더냐.” “아뇨, 성경을 계속 읽다 보니 예수님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의 고백에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그 아이가 성경을 읽다가 스스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사실에 놀라웠고, 하나님이 그의 지성을 밝히셔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성경은 그 자체로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이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성경을 읽기만 해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관한 책을 수십 권 쓴다 해도 창세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의 책은 지성을 만족시킬 뿐 아무런 영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구약의 복음이라고 불립니다. 신약성경에 요한복음 3장 16절이 있다면, 구약성경에는 창세기 3장 15절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약속에 근거해 인류의 죄악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고 약속대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소망이 되셨습니다.
찾아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음성은 평소처럼 따스한 목자의 음성이었습니다. 범죄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님이 찾아오시기 전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차선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때라도 회개하는 일입니다. 아담은 차선의 기회마저도 놓쳐 버립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범죄한 아담에게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아담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좋아했고 하나님도 아담과의 친밀한 관계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나 친밀함과 사랑의 대상이던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됐습니다.
“아담아, 네가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 모든 것을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이렇게 질문하실까요. 사랑하는 아담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애틋한 마음이 묻어 있는 질문입니다.
아담의 대답은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범죄의 원인이 하와에게 있다고, 여자를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듯 말합니다.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고백했던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이제 비난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자신의 고결한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가 자신의 어그러진 모습의 원인 제공자가 된 것입니다.
생명을 던져서라도 보호해야 할 아내를 무참하게 비난하는 남편의 실제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왕적인 모습이나 만물을 다스리고 책임져야 할 존엄한 모습이 다 사라졌습니다.
아담의 모습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첨예한 대조를 이룹니다.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며 아무런 죄가 없는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죄인이 돼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조롱하는 무리를 향해 주님은 눈물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메시아를 약속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타락한 인류를 구원할 약속을 하십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성경에서 가장 빛나는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한 손에 심판의 칼을 쥐신 하나님은 다른 손에 자비의 약속을 쥐고 계셨습니다. 언젠가 여인의 후손으로 나타날 메시아가 사탄의 세력을 끝낼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약속을 향해 진행되고 신약성경은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을 보여 줍니다.
‘여자의 후손’에는 원문을 보면 ‘그’라는 3인칭 남성 단수가 사용됐습니다. 즉 “그녀의 후손인 그가”로 번역해야 맞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은 여인의 후손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한 사람은 아담의 후손이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타락한 인류를 포기하지 않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해 메시아를 약속하고 보내신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집니까. 이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 구약성경이고 이 사랑의 성취가 신약성경의 예수님입니다.
류응렬 목사<와싱톤중앙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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