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거부운동, 신앙의 항거이자 항일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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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교수 “신앙의 순교가 독립운동이었다”
오일환 전 원장 “신사참배 거부는 비폭력·비타협적 항일운동”
고신포럼 주최, 광복 80주년 국회 학술세미나에서 강조
[데일리굿뉴스] 김신규 기자= “역사는 동기만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돼야”
"한국교회가 재판석에 앉아야 될 사람을 죄인석에 앉혀놓고 죄인석에 앉아서 재판을 받아야 될 사람들이 재판석에 앉아서 의로운 사람들을 정죄하고 내쫓았으며 자기 자신에게 용서를 선언했다."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나라 신궁을 찾아 참배한 친일 교역자들(출처= 고신뉴스).ⓒ데일리굿뉴스
광복 80주년 기념 ‘신사참배 거부운동 재조명 제4회 국회 학술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최덕성 총장(브니엘신학교)는 발제 후 토론자들과의 토론에서 이같이 밝혔다.
21일 오후 2시 국회 헌정회 회의실에서 개최된 이번 세미나는 고신포럼과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가 공동 주관으로 '다시 써야 할 한국교회사,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독립운동이다'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신앙의 운동, 그러나 결과는 독립운동

▲최덕성 총장ⓒ데일리굿뉴스
주제 발제에서 최 총장은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단순한 종교적 저항이 아닌 이 땅에서 전개된 마지막 항일운동으로 규정하며, 국가적 차원의 재평가와 서훈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총장은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이끈 한상동 목사의 증언을 인용하며, 당시 신앙인들은 스스로를 독립운동가라기보다 “우상숭배를 거부한 신앙운동의 사람들로 인식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역사는 동기만이 아니라 결과에 의해 평가된다”며, 이 운동이 실질적으로 항일 투쟁의 최후 무대였음을 강조했다.
최 총장은 “1938년 이후 국내에서 벌어진 항일운동은 신사참배 거부운동 외에는 없었다”며, 이를 “독립운동으로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적 재평가와 서훈의 필요성
최 총장은 그러면서 “보훈부가 연구비를 투입해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정식 독립운동으로 평가하고, 미서훈 인물들에게 반드시 서훈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조수옥 권사, 최덕지 전도사(해방 후 재건 교단 목사), 안이숙 사모등 여성 지도자들과 더불어, 미국 장로교 선교사 브루스 헌트(한국명: 한부선) 역시 재평가 대상임을 강조했다.
최 총장은 이미 지난해 보훈부가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국가 차원의 서훈 검토 대상으로 삼겠다고 발표했음을 언급하며, “이제는 국가가 책임 있게 결론을 내야 한다”고 밝혔다.
신사참배의 본질: 정치·종교적 예속
최 총장은 이날 발제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신도(神道)를 국교화하고,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숭배케 한 사실을 지적했다. 신사참배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정치·종교적 예속 행위였으며, 이를 거부한 한국교회는 “종교 자유와 신앙 순결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벌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의 분열과 교회론 논쟁
최 총장은 신사참배 거부운동 이후 한국교회 내에서 발생한 교단 분열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 거부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고, 한상동 목사가 운동의 실질적 동력이었다”며, 후대 교회사 연구에서 지나치게 주기철 목사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신사참배 거부 세력이 '분리주의 교회론'으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하며, 한상동의 교회론은 칼빈의 개혁교회 전통과 일치한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역사 청산과 교회의 자기반성

▲신사참배 가결에 앞장섰던 교회지도자들이 일제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헌납한 군용기 '조선장로호'(출처=옥성득 교수의 한국기독교 역사)ⓒ데일리굿뉴스
최 총장은 발제 중간에 일제 말기 교회의 친일 행각과 역사 왜곡을 구체적 자료와 사진을 통해 제시했다. 신사참배 가결에 앞장섰던 당시 장로교 총회 임원들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기록, 일부 교회가 일제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군용기 ‘조선장로호’를 헌납한 사실, 친일적 성격으로 설립된 신학교의 정체성 문제 등을 언급하며, “해방 후에도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친일 유산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신사참배 거부자들은 감옥에서 순교적 신앙을 지켰지만, 다수 교회는 배교와 타협을 선택했다”며, 이 시기를 “교회의 교회됨이 상실된 시기”로 규정했다.
한편 오일환 전 보훈교육연구원장(사랑의교회 장로)은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왜 독립운동인가'라는 주제 발제에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일제 말기 가장 치열했던 항일 민족운동'으로 규정했다. 그는 “1937년 이후 사실상 유일하게 전개된 전국적 항일운동이 바로 신사참배 거부운동이었다”며, 이는 경남·부산을 비롯한 영남 지역, 평양과 서북 지역, 만주까지 확산된 전국적 저항 조직이었다고 설명했다.
민족 정체성 자율권 지키려는 항일운동

▲ 오일환 전 원장(한양대 명예교수)ⓒ데일리굿뉴스
오 전 원장은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단순한 신앙운동으로 한정하는 시각을 비판하며, “천황 숭배와 일본 국체(國體) 수용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이를 거부한 것은 곧 민족 정체성과 자율권을 지키려는 항일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2,000여 명이 투옥되고, 200여 교회가 폐쇄된 사실을 언급하며 “이는 분명한 항일운동의 증거이며, 서훈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독립유공자 예우법 제4조를 인용하며, 독립운동의 범주에는 정치·군사적 투쟁뿐 아니라 정신·문화·종교적 저항도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비폭력·비타협적 항일운동으로서 독립운동으로 인정돼야 하며, 국가가 연구와 서훈 절차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제에 나선 최덕성 교수와 오일환 전 원장은 한목소리로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신앙적 항거이자 독립운동”임을 천명했다. 아울러 국가와 교회가 이제라도 이 운동의 신학적·역사적 의미를 올바로 조명하고, 미서훈 인물들에게 정당한 예우를 촉구했다.

▲고신포럼이 주최한 광복 80주년 기념 ‘신사참배 거부운동 재조명 제4회 국회 학술세미나’ 주요 발제 및 토론자들과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데일리굿뉴스
이번 학술세미나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한국교회사와 민족사 속에 새롭게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한다는공감대가 조성되는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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