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기록하는 사진작가…"잊힌 전쟁, 잊힌 용사 기억해야"
페이지 정보
본문
"전쟁은 병사들이 고향에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잊혀져 버렸다."
한국전쟁 미 육군 참전 용사이자 작가인 윌리엄 차일드리스의 말이다. 포성이 멎은 지 73년이 흘렀지만, 한국전쟁은 여전히 '잊힌 전쟁'으로 불린다. 그리고 극동의 이름 모를 작은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이들은 '잊힌 참전 용사'가 돼 존재마저 희미해졌다.
라미 현(본명 현효제·38)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알리고자 2017년부터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이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진 촬영 후에는 액자로 만들어 참전 용사에게 무료로 전달한다. 작업명은 '프로젝트 솔져(Project Soldier) 네 번째 이야기: 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찾아서'다.
그간의 기록은 지난 6일 열린 'Freedom is Not Free: 프로젝트 솔져-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찾아서' 특별전시회를 통해 선보여 관람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인 25일, 전시회 폐막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

▲프로젝트 솔져를 이끌고 있는 라미 현(본명 현효제) 작가
-특별전이 막을 내리네요. 소감이 어떤가요.
"한국전쟁이 단순히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자유와 직결된 이야기임을 나누고 싶었는데, 많은 분에게 공감을 끌어 낸 것 같습니다. 관람하시면서 많이들 우시더라고요. 특별히 그동안 만나 뵈었던 참전 용사들께서 하나같이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기억될 수 있는 박물관(기념관)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번 특별전이 그러한 염원을 조금이나마 실현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뜻깊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미국에서 방문하신 참전 용사도 계시는데, 감회가 남달랐을 듯합니다.
"네, 미국에서 오신 참전 용사 제롬 골더 씨는 본인 사진이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크게 감격하셨어요. 미국에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참전 용사가 워낙 많다 보니까요. 그런데 이번 전시에 와서 한국 사람들이 정말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시고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골더 씨뿐만 아니라, 많은 참전 용사의 사진과 영상이 전시돼 있던데, 이 기록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우연한 기회에 육군 1사단 홍보영상 제작을 맡게 되면서 장병들과 인터뷰하게 됐어요. 한 주임원사가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없어서 가족 앨범 하나를 미처 못 채웠다고 이야기하는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군복무를 했지만, 군인과 그 가족의 희생이 얼마나 큰지 처음 깨달은 거죠. 그 일을 계기로 군인과 관련한 사진을 찍게 됐고, 2013년 프로젝트 솔져가 시작됐습니다.
군인들을 쭉 찍어오다가 2016년 군복 사진전을 열게 됐는데, 그때 한국전쟁 미 해병 참전 용사 살 스칼레토 씨가 오셨어요. 참전 용사를 실제로는 처음 봤거든요. 가서 인사를 드렸는데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눈에 광채가 나고 자부심이 엄청나더라고요. 문득 궁금했어요. 내 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에 와서 참전했는데 왜 저런 자부심이 생길까. 도대체 그들에게 한국전쟁이란 무엇일까. 참전 용사들을 찾아가서 직접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것이 프로젝트 솔져 네 번째 이야기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Searching for Korean War Veteran)의 출발이었습니다."

▲라미 작가가 한국전쟁 참전 용사(왼쪽)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사진 제공=프로젝트 솔져)
-지금까지 만난 참전 용사가 몇 분 정도 되나요?
"대략 2,500여 분일 거예요. 한국전쟁 유엔 참전국이 22개국인데, 19개국 참전 용사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2017년부터 영국, 캐나다, 미국의 참전용사들을 찾아갔고, 13개국 참전용사들은 한국 오셨을 때 만났습니다. 사실 영국이나 미국 등을 제외하고는 찾기가 힘들어요. 그래도 영국과 미국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이 있고 워낙 조직도 잘 돼 있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데, 다른 나라 같은 경우는 한분 한분 다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한국에서 온 청년을 보며 참전 용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대부분 좋아하셨죠.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을 만난 게 처음인 분도 많았거든요. 그분들로서는 아무래도 70여 년 넘게 잊혀졌던 일들에 대해 한국 청년이 직접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니까 뿌듯하신 거죠.
반면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도 계셨죠. 한 참전 용사는 전화로 '코리아'만 들어도 우셨어요. 약속을 잡고 갔는데, 40분 내내 우셔서 결국 사진만 찍고 인터뷰를 못 했어요. 그분들에게 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머릿속에서 계속 전투 중이거든요.
소수이지만, 전화를 드리자 소리 지르는 분도 계셨어요. 왜 기껏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상기시키냐면서요. '한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신 분도 계셨죠. 그런 분은 못 만났죠."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가요?
"많은 분이 기억에 남죠. 한 분을 꼽자면, 미 해군 참전 용사 존 스포폴스 씨예요. 저희가 찾았을 때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어요. 그분을 만나러 보훈 병원을 찾아갔어요. 텅 빈 병실 한쪽에 큰 두루마리들이 있더라고요. 물어보니 이분이 아티스트인데 본인 작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병실을 작업실처럼 꾸며서 사진을 찍었죠. 그리고 정확히 3개월 뒤에 스포폴스 씨 며느리에게 부고 연락이 왔어요.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스포폴스 씨와 작품을 같이 찍고 싶었는데, 엄두가 안 나 한쪽에 놓고만 있었대요. 그런데 제가 우연히 나타나서 찍은 거죠. 스포폴스 씨도 사진 보고 마음에 든다며 정말 기뻐하셨대요. 아무래도 같은 아티스트로서도 그분이 기억에 남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요.
"많죠. 국군 참전 용사나 해외 참전 용사나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뭔지 아시나요? '감사합니다'가 아니에요. '사람 몇이나 죽여 봤냐?', '사람 죽일 때 어땠냐?'라는 말들을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거예요. 무엇보다 그분들에게 가장 가슴 아팠던 말은 똑같아요. '왜 너만 살아왔냐?'. 아직도 참전 용사 대부분이 그런 죄책감, 트라우마를 갖고 계세요."

▲한국전쟁 참전 용사 제롬 골더 씨의 모습 (사진 제공=프로젝트 솔져)
-아마도 10~20대 참전했을 그분들에게 그때의 한국전쟁은 어떤 전쟁이었는지, 75년 후 지금의 그분들에게는 한국전쟁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방문한 참전 용사 골더 씨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52년 전에는 지옥에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천국에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이 말씀이 그 의미를 대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자유를 위해서 희생하셨는데, 안타깝게도 다음 세대들은 한국전쟁에 큰 관심이 없어요. 참전 용사를 비롯해 자유를 지키는 수많은 분에 대한 존경이 없죠.
"모르죠. 왜냐하면 기록이 없으니까요. 교육이 중요한데 교육하지 않거든요. 미국 같은 경우는 사회 전체가 참전 용사를 비롯해 군인, 경찰, 소방관 등에 대한 존경을 잊지 않도록 꾸준히 가르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기껏해야 보훈의 달, 국군의 날 등 기념일에만 일회성으로 감사하죠.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는 거지,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줘야 하고, 그들에게 알려주는 의무가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우리도 책임에 소홀한 거예요. 모르면 가르쳐주고 일깨워줘야 하는데 방치했거든요. 더 많은 관심과 교육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이번 전시도 준비했던 거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알리기 위해 기록을 남기시고 전시도 하시는데요. 때론 어떤 책임감, 사명감이 무겁게 느껴지진 않으세요?
"사실 책임감이라든가 사명감은 별로 없어요. 재밌어서 하는 거거든요. 재미없으면 안 했을 거예요. 뭐 그걸 누군가는 사명감이라고도 하지만요. 개인적으로 사진이나 기록을 남긴다는 건 되게 즐거운 일이고, 귀중한 일이고,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고, 잘 기록해 놓으면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누군가 보고 느끼며 조금씩 바뀌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그걸로 된 거예요."
-사명감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 작업을 위해 사비로 10억 원가량을 지출하셨고 수억 원에 달하는 빚도 안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현재 4명이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해외 갈 때는 PD 한두 명과 가고요. 한 번 나갈 때마다 항공권 등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6천만 원이거든요. 다시 그거를 와서 작업하는 것도 두 배 정도 들어요. 사이즈는 큰 작업인데 시간은 없고, 인원은 적으니까 일단 묵묵히 하고 있는데, 녹록지 않죠. 그래서 많은 사람의 모금과 도움을 독려하는 거예요.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으니까요."

▲지난 6일 열린 특별전시회에서 라미 작가가 관람객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있다.(사진 제공=프로젝트 솔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기록을 남기면서 우리 사회에 일으킨 변화들이 있었다면요?
"감사함을 느낀 거죠. 공기가 있는데 우리가 모르듯이, 우리가 녹아있는 일상의 자유에 대해 몰랐거든요. 참전 용사라는 존재들이 조금 더 주목받고 알려짐으로써 자유의 가치와 그 이유, 그리고 그 이면에는 숭고한 희생이 있다는 것 그 정도만 알아줘도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마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 모자 쓰신 분들을 보면 감사 인사하라고 했거든요. 저희 강연을 들었던 한 여고생이 등굣길에 지하철 노약자석 앉아계신 참전 용사를 봤나 봐요. 고민하다가 용기 내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는데, 참전 용사가 '74년 동안 그런 소리 한 번도 못들어봤다며 펑펑 우시더래요. 감사하다는 인사는 살아있을 때 하는 거지, 죽어서는 의미가 없거든요."
-이 작업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성장한 지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한국전쟁을 배웠지만, 전투나 숫자 등으로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저 과거에 있었던 전쟁에 불과했거든요. 그런데 참전 용사들을 통해 스토리를 알게 됐고, 무엇보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죠."
-우리 사회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요?
"우리는 역사적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기준으로 봐요. 한국전쟁 유엔 참전 용사도 그들이 왜 왔는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 당시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이라는 현대의 잣대로 보기 때문에 상당 부분 어긋나고 왜곡되는 거죠. 그러나 그분들 대부분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왔던 거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그때 그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거예요. 그러면 왜 그랬는지 이해하고 나아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 게 없이 현재 기준으로만 봤을 땐 모든 게 다 잘못돼 보이겠죠."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시간이 우리 적이라는 거죠. 이분들은 이제 매일매일 죽어 가거든요. 캠핑카로 미국을 돌 때도 만나러 간 그날 돌아가신 분이 계세요. 그러니까 마음이 급해지는 거죠. 우리는 기록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자부심이 된다고 하지만, 기록하지 않거든요. 기록은 돈이 드니까 기념만 하죠. 가벼운 것만 취하고 무거운 건 취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까 내가 조금 더 여유 있고, 조금 더 능력 있으면 더 빨리, 더 많이 찾아갈 수 있는데... 아쉽게도 제 능력은 제한돼 있으니까요. 최선을 다해도 부족할 때가 있죠. 그런 게 힘든 거죠."

▲한국전쟁 미 해병대 참전용사 차운시 L. 챕먼 씨의 모습. 챕먼 씨는 지난 1월 별세했다.(사진 제공=프로젝트 솔져)
-현재 대략 몇 분이 살아계신가요?
"많이 돌아가셨죠. 국군은 이제 3만 명 이하 살아계신다는 것 같아요. 미군의 경우 정확한 한국전쟁 통계는 없지만, 대략 5만 명에서 6만 명 사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추정치예요.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 많거든요. 예를 들면 노무자들은 기록이 안 됐어요. 실제로 한국전쟁 참전 용사라고 하지만 인정 못 받은 사람도 많고요."
-그렇다면 이 작업은 마지막 한 분을 기록할 때까지 계속 진행하실 건가요?
"그렇죠. 살아있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전쟁 참전 용사뿐만 아니에요. 한국전쟁 이후에도 자유를 지키는 수호자들, 수많은 사람이 자유를 지켰어요. 주한미군 베테랑부터 베트남 참전 용사, 현역 군인 등 이제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는 해야 하거든요. 현재 이러한 작업도 같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한국전쟁은 하나의 과정, 한 챕터일 뿐이죠. 앞으로 자유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할 거니까요."
-궁극적인 목표가 있나요?
"마지막에는 교육 기관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예요. 왜냐하면 저희가 사진과 영상, 인터뷰 그리고 아카이빙 등을 12년 동안 해왔는데, 문제는 저희가 다 다닐 수 없거든요. 그런데 교육 기관을 만들면은 더 빠르게, 더 많은 사람들을 기록할 수 있어요. 그래야지 이런 기록을 다음 세대에 잘 전달할 수 있고요."
-프로젝트 솔져를 통해 남기고 싶은 유산이 있다면요?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거죠. 앞으로 우리가 자유를 잘 누리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한데, 다음 세대도 그걸 알아주고 계속해서 그걸 지켜 나가길 바라는 거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만난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은 '국가가 날 필요했고, 내가 응답했고, 내가 섬겼다. 그리고 신이 모든 걸 결정하셨다'고 이야기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분, 특히 많은 기독교 국가에서 참전할 수 있었다고 봐요. 기독교는 사랑이잖아요. 참전 용사들은 그 사랑을 참전으로 실천하신 분들이에요. 이제는 우리가 받은 사랑과 숭고한 헌신을 기억하고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주면 좋겠어요."

▲한국전쟁 국군 참전 용사(오른쪽)와 라미 작가의 모습 (사진 제공=프로젝트 솔져)
데일리굿뉴스 천보라 기자
관련링크
-
데일리굿뉴스 제공
[원문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