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행낭에 담긴 산소발생기… 선교사-한국교회-선교단체 연합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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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교회 등 12대 지원, 델리-뭄바이-첸나이 분산… 한인·현지인 모두에 제공
지난 1일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주 가지야바드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이 종교시설에서 무료로 제공한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의자에 눕거나 앉아있다. UPI 연합뉴스
인도 델리에서 사역 중인 A선교사는 지난달 30일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 뉴델리에 있는 주인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6개의 물건을 받았다. 물건은 하루 전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항공편을 통해 들어온 산소발생기였다. 인도는 지난 1일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수가 40만명선을 돌파하면서 세계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의료 시스템이 붕괴된 인도에선 산소통 등 치료에 필요한 의료기는 동이 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외교부는 지난달 29일 한인단체의 요청으로 공관을 통해 14대의 산소발생기를 외교행낭을 이용해 보냈다.
외교부가 외교행낭으로 산소발생기를 보낼 수 있던 데는 인도 현지 한인 선교사들과 한국의 선교단체, 교회 등의 연합 작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29일자 국민일보 37면 참조).
선교사들이 산소발생기를 구하기로 한 결정적 이유는 인도에 파송된 한인 선교사가 지난달 19일 뉴델리의 한 병원에서 치료 받던 중 별세한 뒤다. 어렵게 병원에 입원했지만 필요한 산소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95~100%가 정상인 혈중 산소포화도는 60%까지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인도한인선교사협의회(전선협)를 이끄는 A선교사는 1일 전화 통화에서 “(4월)17일 입원할 때만 해도 걸어서 음식을 받아갈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악화됐다”며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는 무방비로 있는 선교사들이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인도에 있는 한인은 1만1000여명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인 중 70%는 주재원이나 협력업체 직원인데 기업이 산소통이나 산소발생기 등을 확보한 상태”라며 “나머지 30%는 자영업자, 선교사, 학생 등으로 사실상 의료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전했다.
A선교사는 사흘간 아마존을 비롯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소통을 구하려고 했지만 재고는 없었다. 의료계통에 있는 현지인에게 의료기를 취급하는 358개 업체 리스트를 받아 하루 종일 전화를 돌렸지만 물량은 바닥난 상태였다. 대신 대체할 방법을 찾았다. 산소가 주입돼 해외배송이 어려운 산소통 대신 기기 안에 산소가 없는 산소발생기를 해외에서 구입하는 방법이었다. 산소발생기는 가정 등에서 사용하는 의료 장비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인도에서 산소통 부족으로 사망자가 속출하자 지난달 30일 인도 서북부 펀잡주 암리차르에서 시위대가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산소통을 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먼저 해외 배송과 세관 통관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일반물류로 물건이 신속하게 인도에 들어올 수 있을지, 인도 정부가 의료장비에 부과하는 관세가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외교행낭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KWMA 산하 미래한국선교개발센터장인 정용구 선교사는 A선교사와 대화하던 중 산소발생기 도입을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식을 공유한 KWMA 강대흥 사무총장이 외교행낭을 제안했다.
이를 들은 A선교사는 “한인회에 외교행낭 아이디어를 공유했고 한인회가 사업으로 채택했다.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외교행낭 사용의 확답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움직일 차례가 됐다. 인도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산소발생기 모델을 찾아야 하고 이를 구입할 자금을 모아야 했다.
정 선교사와 박명재 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A선교사 등이 SNS로 대화하며 인도 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230V, 50㎐ 규격의 산소발생기 모델을 찾았다.
경기도 성남시 지구촌교회 해외선교부는 ‘M52 오병이어 헌금’으로 전인도한인선교사협의회에 8대의 산소발생기 구입을 지원했다. 김바울 선교사 제공
그 사이 한국에 있는 한국위기관리재단 서남아 코디네이터인 김바울 선교사는 한국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기도 분당 지구촌교회(최성은 목사)가 8대(1304만원)를 지원했고, 새삶교회(안귀모 목사)와 양촌제일교회(조봉수 목사)도 한 대씩 지원했다. 산소발생기를 판매한 의료장비 업체는 사용처를 들은 뒤 중고 산소발생기 3대를 후원하기로 했다. 외교행낭 규격에 맞추기 위해 확보한 13대 중 12대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지난달 28일 외교부가 인도대사관에 보낸 14대 중 6대는 한국교회가 전선협에 보낸 것이다. 8대는 한인회에서 구매했다. 전선협이 구매한 나머지 6대는 3일과 4일 총영사관이 있는 첸나이와 뭄바이에 각각 3대씩 들어간다.
뉴델리에 산소발생기가 도착한 그날 저녁 A선교사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사용 지역을 나누기 위해 화상 회의도 가졌다.
A선교사는 “델리에 들어간 6대는 인도 북쪽, 첸나이는 남부, 뭄바이는 서부지역을 담당한다. 인구가 많고 코로나19 상황이 어려운 곳, 의료혜택을 못 받는 곳에 산소발생기를 우선 제공하기로 했다”며 “선교사는 물론 한인, 현지인 상관없이 코로나19로 위중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도 지원을 계속할 예정이다. KWMA는 3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산소발생기 지원 등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병실 부족으로 자택에서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는 선교사와 한인들을 돕기 위해 원격의료 상담 서비스 연결을 준비 중이다. 기아대책도 김 선교사의 요청을 듣고 산소발생기 추가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A선교사는 “외교행낭을 이용한 덕에 이렇게 빨리 산소발생기를 받을 수 있었다. 외교부에 감사하다”면서 “또 지구촌교회를 비롯해 도와주신 한국교회와 김바울 선교사, KWMA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소발생기도, 의약품도 필요하다. 의약품은 암시장에서 50배 가까이 폭등했지만 그것마저도 없어서 못 살 정도”라며 “한국교회의 많은 도움과 기도 부탁 드린다”고 요청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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