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봉사, 전도의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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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일보|
작성일2020-07-01 |
조회조회수 : 2,9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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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정중교회
충북 청주 정중교회 정현 목사(사진 오른쪽)와 교인들은 교회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매주 호떡 전도와 칼갈이 전도를 한다. 지난달 23일 호떡을 굽고 나누는 모습. 정중교회 제공
매주 금요일 밤 10시만 되면 정중교회 정현(47) 목사는 교회 옆에 세워진 라보 트럭에 시동을 켠다. 서둘러 트럭을 몰아 도착한 곳은 마을 장이 열리는 인근 아파트 단지 앞 공터. 정 목사는 3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 호떡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전날 밤부터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차를 대는 것도 힘들다.
정 목사는 낮 기온이 39도까지 오른 무더운 여름날에도 호떡 굽는 걸 쉬지 않았다. 지금은 단골까지 생겼다. 최근에는 칼을 무료로 갈아주는 일도 시작했다. 충북 청주 오송의 교회에서 지난 22일 정 목사를 만났다.
주는 전도의 한계
정 목사가 처음부터 호떡을 나눠준 건 아니다. 정 목사는 2009년 정중교회에 부임했다. 당시 교회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었다. 그러나 일대가 개발 구역으로 묶이면서 교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보상도 받지 못했다. 교인이었던 A권사가 땅을 기증해 교회를 세웠지만 이를 증명할 서류가 없었다. 땅은 A권사의 손자 이름으로 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교인들이 거의 떠났다. 정 목사는 부임하자마자 개척 아닌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됐다.
지금의 자리도 임대다. 2013년 이곳으로 온 정 목사는 마을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교회를 개방했다. 바로 앞에 학교가 있어 학생들의 출입이 많았다. 정 목사는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타고 다니는 자전거 바람이 빠지면 넣어주기도 하면서 어울렸다. 자전거 전등을 사다 아이들에게 달아주기도 했다. 그해 주일학생만 13명이나 됐다. 그러나 아이들의 출석이 이듬해로 이어지진 못했다. 부모가 다니지 않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허탈했지만, 다시 힘을 냈다. 이번엔 어린이보다 어른 전도에 초점을 맞췄다.
정 목사가 찾은 방법은 건빵 전도였다. 부임하기 전 ‘우리 밀 살리기 운동본부’에 잠깐 몸담았던 정 목사는 우리 밀로 건빵을 만들어 전도지와 함께 나눠줬다. 처음엔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도 우리 밀로 만든 건빵이라고 얘기하자 멈춰 서서 받아 갔다. 특히 아기 엄마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래도 뭔가 허전했다. 건빵을 받아간 사람은 많았지만, 대화를 나눈 이는 손에 꼽았다. 주는 전도의 한계를 여실히 느꼈다. 우리 밀 건빵이 일반 건빵보다 4배나 비싼 것도 문제였다.
대화가 필요해
전도에 유용한 다른 용품이 없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번뜩 떠오른 게 봄철 황사용 마스크였다. 2016년부터 마스크를 전도지에 달아 나눠줬다. 가격이 건빵보다 훨씬 쌌다. 그러나 이것도 받아 가면 끝이었다. 먹는 게 아니다 보니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집에 마스크가 쌓여 갔다. 그러다 찾은 게 호떡이었다. 기본 장비가 있어야 했는데 감사하게도 전도사 시절 주례를 봐줬던 육군 부사관 형제가 헌금을 했다. 정중교회 사정은 전혀 모른 채 “정 목사님 생각이 나서 연락을 드렸다”며 200만원을 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근무하며 정중교회에 출석하던 자매도 결혼하고 이직하면서 100만원을 헌금하고 갔다. 교인들도 십시일반 거들어 라보트럭 중고차를 샀다.
2017년 10월부터 호떡 전도를 시작했다. 정 목사와 사모 둘이 새벽예배 끝나고 교회 앞에서 호떡을 나눠줬다. 등교하는 학생들도, 출근하는 직장인도 지나가다 들러 호떡을 받아갔다. 호떡을 굽는 동안 그토록 바라던 대화 시간이 생겼다. 억지로 대화하려 하지 않아도 찾는 분들이 ‘왜 공짜로 나눠 주냐’고 물었다.
번화가로 나갔다. 인지도가 없으니 사람들이 찾지 않았다. 근처 붕어빵 장사하는 상인에게서 심한 말도 들었다. 그래도 꾸준히 했다. 1~2년 지나니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봐 줬다. 호떡 맛이 좋다는 소문도 났다. “얼마나 하는지 두고 봤는데 꾸준히 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고, 교회에 대해 물어오는 분도 있었다.
정 목사는 호떡을 나눠주면서 원하는 사람에게선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들에겐 아침마다 말씀 문자를 보낸다. 교회에 나오라고 강권하진 않지만, 그리스도의 향기를 그렇게 전한다.
지난달 23일 칼을 갈아주는 모습. 정중교회 제공
작은 교회 아닌 마을 교회
현재 정중교회 출석 교인은 10명 남짓이다. 적은 수이지만 처음 정 목사 가족끼리 드렸던 때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정 목사와 사모 둘이서 하던 호떡 전도에 교인들이 동참하면서 사역이 활성화됐다. 3년 전부터 정중교회에 출석하는 장병규(52) 집사는 최근 칼갈이 전도 아이디어를 냈다. 장 집사는 “목사님이 예전에 말씀하셨던 적이 있어서 해보자 말씀드린 것뿐”이라고 했지만, 칼갈이 전도는 금세 동네에 소문이 났다. 한 번에 7~8자루를 가져오거나 장작 패는 도끼를 갖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칼갈이 역시 대화할 여지가 생겼다. 호떡 전도는 매주 토요일만 하지만, 칼갈이 전도는 시간을 정해 주중에도 몇 번씩 나간다. 정 목사는 “성도들이 불평 없이 전도에 동참하는 모습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중교회는 최근 어렵게 종교부지를 배정받았다. 아직 잔금을 치르지 못해 어려움이 있지만, 정 목사는 “성도들의 헌신에 목회의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전도를 하다 보면 교회 교인이 몇 명인지, 교회가 큰지, 건물이 있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며 “그게 교회의 전부는 아닌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정 목사는 “전도가 참 어렵다. 전도를 해보니까 한 영혼이 왜 귀한지 알겠다”며 “그럼에도 하나님 주신 사명이기에 쉬지 않고 전도하려 한다”고 다짐했다.
국민일보 청주=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충북 청주 정중교회 정현 목사(사진 오른쪽)와 교인들은 교회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매주 호떡 전도와 칼갈이 전도를 한다. 지난달 23일 호떡을 굽고 나누는 모습. 정중교회 제공
매주 금요일 밤 10시만 되면 정중교회 정현(47) 목사는 교회 옆에 세워진 라보 트럭에 시동을 켠다. 서둘러 트럭을 몰아 도착한 곳은 마을 장이 열리는 인근 아파트 단지 앞 공터. 정 목사는 3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 호떡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전날 밤부터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차를 대는 것도 힘들다.
정 목사는 낮 기온이 39도까지 오른 무더운 여름날에도 호떡 굽는 걸 쉬지 않았다. 지금은 단골까지 생겼다. 최근에는 칼을 무료로 갈아주는 일도 시작했다. 충북 청주 오송의 교회에서 지난 22일 정 목사를 만났다.
주는 전도의 한계
정 목사가 처음부터 호떡을 나눠준 건 아니다. 정 목사는 2009년 정중교회에 부임했다. 당시 교회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었다. 그러나 일대가 개발 구역으로 묶이면서 교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보상도 받지 못했다. 교인이었던 A권사가 땅을 기증해 교회를 세웠지만 이를 증명할 서류가 없었다. 땅은 A권사의 손자 이름으로 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교인들이 거의 떠났다. 정 목사는 부임하자마자 개척 아닌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됐다.
지금의 자리도 임대다. 2013년 이곳으로 온 정 목사는 마을 목회의 길로 들어섰다. 교회를 개방했다. 바로 앞에 학교가 있어 학생들의 출입이 많았다. 정 목사는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타고 다니는 자전거 바람이 빠지면 넣어주기도 하면서 어울렸다. 자전거 전등을 사다 아이들에게 달아주기도 했다. 그해 주일학생만 13명이나 됐다. 그러나 아이들의 출석이 이듬해로 이어지진 못했다. 부모가 다니지 않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허탈했지만, 다시 힘을 냈다. 이번엔 어린이보다 어른 전도에 초점을 맞췄다.
정 목사가 찾은 방법은 건빵 전도였다. 부임하기 전 ‘우리 밀 살리기 운동본부’에 잠깐 몸담았던 정 목사는 우리 밀로 건빵을 만들어 전도지와 함께 나눠줬다. 처음엔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도 우리 밀로 만든 건빵이라고 얘기하자 멈춰 서서 받아 갔다. 특히 아기 엄마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래도 뭔가 허전했다. 건빵을 받아간 사람은 많았지만, 대화를 나눈 이는 손에 꼽았다. 주는 전도의 한계를 여실히 느꼈다. 우리 밀 건빵이 일반 건빵보다 4배나 비싼 것도 문제였다.
대화가 필요해
전도에 유용한 다른 용품이 없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번뜩 떠오른 게 봄철 황사용 마스크였다. 2016년부터 마스크를 전도지에 달아 나눠줬다. 가격이 건빵보다 훨씬 쌌다. 그러나 이것도 받아 가면 끝이었다. 먹는 게 아니다 보니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집에 마스크가 쌓여 갔다. 그러다 찾은 게 호떡이었다. 기본 장비가 있어야 했는데 감사하게도 전도사 시절 주례를 봐줬던 육군 부사관 형제가 헌금을 했다. 정중교회 사정은 전혀 모른 채 “정 목사님 생각이 나서 연락을 드렸다”며 200만원을 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근무하며 정중교회에 출석하던 자매도 결혼하고 이직하면서 100만원을 헌금하고 갔다. 교인들도 십시일반 거들어 라보트럭 중고차를 샀다.
2017년 10월부터 호떡 전도를 시작했다. 정 목사와 사모 둘이 새벽예배 끝나고 교회 앞에서 호떡을 나눠줬다. 등교하는 학생들도, 출근하는 직장인도 지나가다 들러 호떡을 받아갔다. 호떡을 굽는 동안 그토록 바라던 대화 시간이 생겼다. 억지로 대화하려 하지 않아도 찾는 분들이 ‘왜 공짜로 나눠 주냐’고 물었다.
번화가로 나갔다. 인지도가 없으니 사람들이 찾지 않았다. 근처 붕어빵 장사하는 상인에게서 심한 말도 들었다. 그래도 꾸준히 했다. 1~2년 지나니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봐 줬다. 호떡 맛이 좋다는 소문도 났다. “얼마나 하는지 두고 봤는데 꾸준히 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고, 교회에 대해 물어오는 분도 있었다.
정 목사는 호떡을 나눠주면서 원하는 사람에게선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들에겐 아침마다 말씀 문자를 보낸다. 교회에 나오라고 강권하진 않지만, 그리스도의 향기를 그렇게 전한다.
지난달 23일 칼을 갈아주는 모습. 정중교회 제공
작은 교회 아닌 마을 교회
현재 정중교회 출석 교인은 10명 남짓이다. 적은 수이지만 처음 정 목사 가족끼리 드렸던 때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정 목사와 사모 둘이서 하던 호떡 전도에 교인들이 동참하면서 사역이 활성화됐다. 3년 전부터 정중교회에 출석하는 장병규(52) 집사는 최근 칼갈이 전도 아이디어를 냈다. 장 집사는 “목사님이 예전에 말씀하셨던 적이 있어서 해보자 말씀드린 것뿐”이라고 했지만, 칼갈이 전도는 금세 동네에 소문이 났다. 한 번에 7~8자루를 가져오거나 장작 패는 도끼를 갖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칼갈이 역시 대화할 여지가 생겼다. 호떡 전도는 매주 토요일만 하지만, 칼갈이 전도는 시간을 정해 주중에도 몇 번씩 나간다. 정 목사는 “성도들이 불평 없이 전도에 동참하는 모습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중교회는 최근 어렵게 종교부지를 배정받았다. 아직 잔금을 치르지 못해 어려움이 있지만, 정 목사는 “성도들의 헌신에 목회의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전도를 하다 보면 교회 교인이 몇 명인지, 교회가 큰지, 건물이 있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며 “그게 교회의 전부는 아닌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정 목사는 “전도가 참 어렵다. 전도를 해보니까 한 영혼이 왜 귀한지 알겠다”며 “그럼에도 하나님 주신 사명이기에 쉬지 않고 전도하려 한다”고 다짐했다.
국민일보 청주=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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