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 65세의 나이로 덴버 신학대학원 졸업한 윤찬기씨 > 지역교계뉴스 Local News | KCMUSA

[CO] 65세의 나이로 덴버 신학대학원 졸업한 윤찬기씨 > 지역교계뉴스 Local News

본문 바로가기

  • 지역교계뉴스 Local News

    홈 > 뉴스 > 지역교계뉴스 Local News

    [CO] 65세의 나이로 덴버 신학대학원 졸업한 윤찬기씨

    페이지 정보

    작성자 덴버 중앙일보| 작성일2021-05-27 | 조회조회수 : 1,151회

    본문

    “파란만장한 65년 인생, 하나님 이야기 전하며 살 것”



    9a597aab18c268f2f78df1dc02fdb526_1622141875_084.jpg
     

    한때 덴버에서“유학생 전설"이라고 불린 사람이 있었다. 무일푼으로 유학 와 청소일 해가며 덴버대학교 대학원을 1년 만에 졸업하고 땡전 한푼 없는 상황에서 결혼까지 했으며, 세계 4대 회계법인회사에 입사, 현재까지 덴버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 회계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 바로 윤찬기(65) 회계사의 이야기이다. 그런 그가 지난 몇 년간 조용하게 덴버 신학대학원을 다니다 드디어 졸업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윤찬기씨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나는 머리도 나쁘고 놀기만 좋아하던 학생이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운이 좋아서 어쩌다보니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경기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고3 시절에 졸업을 3개월 앞두고 나름 정의에 불타올라 학교 교육의 정치적 중립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했고, 결과적으로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학교에서 가졸업을 시켜줘 겨우 졸업장은 받았지만 집안배경으로 인한 연좌제와 시위 경력으로, 한국에서 살아봤자 비전이 없을 것 같아 유학을 결심했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절에는 유학은 커녕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못했다. 봄, 가을 250명씩 1년에 단 500명만이, 그것도 유학시험을 쳐서 통과한 사람들만 유학이 허락됐다.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험을 쳤는데 어떻게 또 통과가 됐다. 수중에 돈 한푼 없는 상황이었지만,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콜로라도로 유학을 왔다. 그의 나이 25세 때의 일이다.


    가장 등록금이 저렴했던 콜로라도 주립대학 푸에블로 캠퍼스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는데, 어찌어찌해서 1학기는 마쳤지만, 다음 학기부터는 낼 등록금이 없었다. 그의 집안은 파산 직전까지 갈 만큼 어려워서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그의 고생길이 시작됐다. 학교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기숙사에서도 일을 하면서 조금씩 돈을 벌며 월부로 등록금을 냈다. 여름방학 때면 덴버로 올라와 하루에 15시간씩 청소일을 해가며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바로 1983년에 덴버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야간으로 청소일을 하고, 낮에는 풀타임으로 학교를 다녔다. 잠은 짬짬이 수업이 비는 시간에 자며 버텼다. 다운타운 인근의 그레이하운드 장거리 버스터미널 자재창고 바닥에 박스를 깔고 3개월을 지낸 적도 있다.


    밤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풀타임으로 학교를 다니며 독하게 공부한 끝에 대학원을 단 1년만에 졸업해 MBA 학위를 땄다. 그 바쁜 와중에 연애도 했다. 졸업하기 1학기 전에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결혼 당시 주머니에 단돈 1달러도 없어서 별명이 ‘거지 사위'였다고.


    덴버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 온 지 단 3년 만에 공인회계사 시험을 합격했다. 시간당 3달러를 받던 그의 시급이 30달러로 단박에 올랐다. 뉴욕으로 가서 운좋게 세계 4대 회계법인기업인 어니스트 영(Ernest Young)에 입사했다. 회계법인으로는 거의 아이비리그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쟁쟁한 기업으로, 공인회계사만 9만5천명을 거느린 곳이었다. 이곳의 덴버지부 설립을 위해 다시 덴버로 왔다가 1984년부터 자신의 회계사 사무실을 차려 37년째 일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2013년에 식도정맥파열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 때부터 간이식을 기다렸다. 간이식 대기자 순위는 9번째였는데, 대기자 모두가 전화를 받지 않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30분 안에 병원에 오라는 말에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기적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나를 살려준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한 지 근 35년만에 다시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결심했다. 1주일 168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힘든 와중에도 그는 말씀 공부가 이렇게 기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축복은 죽고 나서 받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받는 것이었다. 윤찬기씨는 “65년간의 내 파란만장한 인생은 못난이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나는 이제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 다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긋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늘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셨다는 생각에 매일매일이 감사하다.”고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이하린 기자

    •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KCMUSA,680 Wilshire Pl. #419,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