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광림교회 민경보 목사의 나의 영성 목회 경험 나누기 > 신학과 설교 | KCMUSA

안산광림교회 민경보 목사의 나의 영성 목회 경험 나누기 > 신학과 설교

본문 바로가기

신학과 설교

홈 > 목회 > 신학과 설교

안산광림교회 민경보 목사의 나의 영성 목회 경험 나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당당뉴스| 작성일2025-09-19 | 조회조회수 : 119회

본문

[한국교회의 본질적 목회를 고민하기 위해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모여 시작한 영성목회 포럼의 준비 모임에서 발표한 글들을 게재하고자 한다. 글을 게재하는 순서는 1. 유해룡 교수, 2. 김수천 교수, 3. 권진구 교수, 4. 오방식 교수, 5. 민경보 목사 순으로 하여 매주 게재할 예정이다.]


fe5fabdf12bf3b12c756ca01948fb9ef_1758067187_46.png
 

안산광림교회 민경보 목사



나는 고등학교 수련회 때에 성령을 체험하고 주의 종이 되었다. 그러나 목회를 시작하면서 부딪친 고민은 ‘왜 은혜를 많이 받아도 성도들의 삶은 크게 변화되지 않는가?’였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고전적 영성 훈련(렉시오 디비나, 예수의 기도, 센터링 프레이어 등)을 접하며 깊은 기도의 세계를 경험했다.


귀국 후 안산광림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교회에 이를 접목하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강한 반발과 오해에 직면했다. 이 경험은 한국교회에서 고전적 영성을 도입하려면 사전에 영적 토양 작업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적절한 접근 방법이 필요함을 알게 했다. 이를 잠시 나누려고 한다.


 

1. 전통 영성 훈련에 대한 거부감


먼저 교우들이 거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깊이 있는 성경적 근거와 목회적 안내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고전적 영성 훈련에 대한 좀더 친절한 안내를 했었더라면 영성 훈련에 대한 거부감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부족함으로 인해서 많은 저항을 경험했다.


1) 정서적 저항


성도들의 ‘정서적인 저항’은 교리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정서(감정)에서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성도 중에서 그 누구도 신학적인 문제나 교리적인 내용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우들이 거부한 것은 일단 정서적으로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로운 영성 훈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정서적인 갈등이 있었을까?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통성기도, 빠른 응답, 뜨거운 찬송처럼 표현이 크고 속도가 빠른 예배 습관이 형성되어 있다. 이 리듬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지난 140년의 한국교회 전통이 만들어낸 것이다. 교우들은 이 리듬에는 잘 반응한다. 그러나 느림·침묵·조용한 성찰을 전제로 하는 고전적 영성 훈련들은 그 리듬이 다르다. 이것이 고전적 영성 훈련에 거부감을 표현한 가장 기초적인 이유인 듯하다.


또한 고전적 영성 훈련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자신들이 평가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새로운 영성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기존의 영성 훈련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영성 훈련을 시작하면, ‘나는 기도를 깊게 못 해’, ‘나는 부족한 사람’ 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이에 수치심을 갖는 이들이 있었다. 따라서 고전적 영성 훈련을 피하거나 이에 대해서 방어적으로 나왔다. 가장 힘든 부분은 ‘이건 가톨릭교회에서 행하는 영성 훈련’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설명을 듣기도 전에 먼저 정서적으로 문을 닫는다. 이것은 ‘우리 방식이 아니다’라고 단정 짓고 경계한다.


2) 공동체적 분열


또한 영성 훈련을 실시해 보면, 고전적 영성 훈련을 받은 성도들과 기존 성도들 사이에 영적인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전적인 영성 훈련을 받은 이들은 영적 우월감이 생기는 반면, 이 훈련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결과,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 보이지 않는 전선이 생기게 된다. 한국교회는 통성기도를 바탕으로 한 열정적인 신앙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 고전적 영성 훈련은 침묵과 내적 성찰을 강조한다. 사실 이 둘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지만, 목회 현장에서는 ‘열정과 침묵의 대립’ 처럼 여겨진다. 때문에 성도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편이 나눠진다.


더 나아가 동일한 훈련을 두고도 신학적 해석의 차이가 나타난다. 어떤 이들은 이를 깊은 은혜의 길이라고 보지만, 다른 이들은 “비개신교적 신비주의”라고 규정한다. 이런 해석의 차이가 곧 신앙적 대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훈련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준비 과정과 수용 방식에 있었다. 훈련의 성경적 근거와 목적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도입되면, 성도들은 낯설고 위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지도자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깊은 신앙과 얕은 신앙”이라는 대립 구도가 형성되면서, 교회가 영적으로 양분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적 영성 훈련을 교회에 도입하려면, 먼저 교우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영적 토양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았다. 그래서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먼저 교우들이 전통적인 영성 훈련을 받아들일 만한 영적 토양을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교우들에게 전통적인 영성 훈련을 접목해 나갔다.



2. 영적 토양 만들기


내가 영적 토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은 첫째 설교였고, 두 번째는 교회력을 바탕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절기 예배’, 세 번째는 ‘특별한 기도 훈련’이었다.


1) 설교를 통한 토양 조성


내가 영적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 주력했던 것은 바로 설교였다. 설교를 통해서 성도들의 신앙과 의식의 지평을 넓히려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나는 과감하게 먼저 설교 시간을 늘렸다. 일반적으로 약 30분 정도 하던 설교 시간을 45분으로 늘린 것이다.


이 또한 교우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샀다. 처음에는 설교 시간이 길어지자 조는 이들도 많았고, 피곤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아주 많았다. “꼭 이렇게 길어야 합니까?” 장로님들도 불평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 역시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설교 시간을 늘린다고 교회가 달라지겠는가?’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짧은 시간 안에서 교우들의 영적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경 본문을 충분히 해석하고, 그안에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풀어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단순한 교훈이나 위로를 넘어서서 깊은 깨달음을 얻고 감동을 받아 결단에 이르게 하려면 30분으로는 부족했다.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긴 설교를 하고 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교인들이 점차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설교를 깊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성도들의 삶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가장 큰 변화는 설교를 기대하며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설교란 어쩔 수 없이 들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 시간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으로 변한 것이다.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는 간증을 많이 듣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 교회는 서서히 전통적인 영성 훈련을 받아들일 만큼 영적 토양이 준비되고 있다.


내가 영적 토양을 조성하기 위해서 성령님께 기도하며 애쓴 것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영적 깨달음이다. 내가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영적 깨달음’이다. 성경의 뜻을 마음에 열어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요16:13, 고전 2:12–14). 깨달음은 “새 계시”가 아니라, ‘기록된 말씀의 의미’가 살아 움직이는 사건이다. 이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과 함께 새로운 영적 지평이 열린다(눅 24:32).


둘째는 영적인 감동이다. 영적 깨달음은 영적 감동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영적 감동이란 우리의 정서를 움직여 의지적 결단까지 이르게 한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진리에 의해 형성되고(요 16:13), 그리스도를 향해 기울며(요16:14), 순종으로 열매 맺는 마음의 움직임이다(행 2:37). 영적인 감동은 ‘아는것’을 ‘행하려는 마음’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인격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성령은 죄를 책망하기도 하시고(요 16:8), 동시에 복음으로 위로하시기도 한다(히 4:16). 영적 깨달음이 감동으로 이어질 때 진리와 정서가 하나로 묶인다.


셋째는 영적인 결단이다. 깨달음과 영적인 감동은 잠자던 의지를 깨어나게 한다. 깨달음을 얻어 생각이 변화되었고, 영적 감동을 통해서 정서가 변화되었기에, 이제는 행동의 변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실천을 위한 결단을 하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영성 훈련을 받아들이는 영적 토양이 되었다. 영적인 결단은 진리의 확신과 사랑의 점화가 의지를 움직인 결과이다.


2) 절기 예배


그다음에 내가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은 교회력에 따라 실시되는 절기 예배이다. 나는 절기 예배를 영성과 감성을 하나로 묶어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예배’가 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지키는 절기 예배에는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등이 있다. 이 절기 속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서사가 들어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 절기 중에서 성탄절과 사순절과 부활절에 특별한 예배를 드린다. 예를 들어서 사순절에는 2주 정도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서 십자가와 복음에 대한 깊은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한다. 이때 나는 상식적인 내용보다는 더 깊은 영적인 진리를 나누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상식화된 말씀은 더 이상 감동을 주기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따라서 매번 새롭고 깊은 영적 진리를 전하려고 노력한다.


그 말씀의 토대 위에 나는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마음을 얹는다. 때로는 찬양으로, 때로는 침묵하며, 때로는 그 말씀을 묵상함으로 말씀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 후에 이것을 예배로 승화시켜서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거나 영적인 체험을 하게 한다. 이를 위해서 고난 주간에는 청각과 후각과 촉각과 미각을 활용한 다감각 예배를 준비하기도 한다. 특히 부활절 예배 시에는 모든 순서들이 다 성찬식을 향하게 한다. 심지어 설교까지도 성찬을 위한 말씀을 선포하여,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을 느끼고 맛보도록 돕는다. 부활절 예베에는 성찬식이 예배의 전부가 된다.


3) 특별한 기도 훈련


우리 교회에서는 일 년에 네 차례 특별새벽기도회가 열린다. 2주간 실시되는 특별새벽기도회는 주로 계절에 맞춰져 있다. 이를 통해서 새벽기도회의 전통을 이어갈 뿐만 아니라, 흩어졌던 마음들을 다시 모아 영적인 일에 집중하게 한다. 특별히 특별새벽기도회 때에는 깊은 영적인 말씀과 함께 새로운 기도를 훈련하는 기회가 된다. 이 특새를 통해서 우리 교우들은 점차 깊은 기도를 배우고 있으며, ‘필요를 구하는 기도’ 대신 ‘말씀으로 기도하는 법’도 익히고 있다. 또한 기도나 말씀묵상을 하기 전에 ‘잠심의 상태로 들어가는 법’도 구체적으로 배워서, 고전적 영성 훈련의 영적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3. 지속적인 영성 훈련의 정착


일반 예배나 절기 예배 말고도 소그룹으로 영성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1) 중보 기도팀의 훈련


우리 교회에는 많은 중보 기도팀이 있다. 각 기도팀마다 기도하는 목적이 다르다. 하지만 이들을 훈련하는 목적은 단 하나이다. ‘더 깊은 기도’를 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찬양 안에서의 임재와 기도’,‘ 예수의 기도’,‘ 렉시오디비나’, ‘창조 묵상과 기도’, ‘시편으로 기도하기,’ ‘통성기도에서 침묵 기도까지’와 같은 훈련을 하고 있다.


2) 리더들의 영성 훈련


우리 교회에서는 신천 권사들에게는 12주 영성 훈련을 하고 있다. 이때 신천 권사들로 하여금 ‘신앙의 중심을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이동시키는’ 훈련을 하고 있으며, 고전적인 영성 훈련을 통해서 영적 성장을 기하고 있다.


또한 신천 장로님들을 위해서도 영성 훈련을 실시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먼저 장로 후보들을 선택하여 일 년 동안(전반기 12주, 후반기 12주) 영성 훈련을 실시한 후에, 당회에서 장로로 피택 받게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때 장로 후보들은 장로의 사명을 위한 기본 교육과 전문적인 영성 훈련을 받는다. 이때 고전적 영성훈련도 함께 실시하여 영적인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 과정을 통과한 장로들은 섬기는 장로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3) 3040을 위한 공감 세미나


특별히 우리 교회에서 가장 관심을 집중하는 세대가 3040세대이다. 이들은 생각하는 것도 기존 세대와 다르고, 가치관도 많이 다르다. 때문에 오히려 고전적 영성훈련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들을 존중해서 이들 스스로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3040 공감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이 세미나는 3040이 주체가 되어 주제도 정하고, 강사도 정한다. 또한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함으로, 3040세대가 교회에 뿌리를 잘 내리도록 돕고 있다.


4) 시므온 스쿨


우리 교회에서는 70세가 넘은 교회 어르신들을 ‘시므온 스쿨’로 묶어서 매주 수요일 오전에 예배와 기타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영성이 더 깊어져야 한다. 때문에 시므온 스쿨에서는 노인들에게 맞은 다양한 영성 훈련과 예배를 통해서 저들을 영적으로 성숙시키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했던 많은 영적체험과 삶의 경험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게 한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이땅에 보내신 이유와 보람을 찾게 되고, 앞으로 남은 생애도 그 사명을 다하게 한다.


이 외에도 우리 교회에서는 분기마다 제자 훈련과 성서 훈련과 고전적 영성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남, 여선교회 수련회나 마더 와이즈, 화더 와이즈와 같은 공동체 훈련을 할 때에고 고전적 영성 훈련을 접목시켜서 교우들을 영적으로 성숙시키고 있다.


 

4. 교훈과 제안


나의 부족한 영성 목회 경험을 나누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정서적 낯섦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신앙 습관을 존중하면서, 보완적 차원에서 전통적인 영성 훈련이 소개되면 좋겠다.


둘째, 충분한 설득과 세밀한 안내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영성 훈련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 훈련을 받은 후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한 후에 영성 훈련을 하면 좋겠다.


셋째, 훈련 자체보다는 영적 토양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 설교를 충분히 개발하기를 권한다. 설교를 통해서 영적 지평이 열려야 한다. 설교 시간이 꼭 길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설교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깨달음과 감동과 결단이 있었으면 좋겠다.


넷째, 교회 공동체 전체를 포괄하는 영성 훈련이 되면 좋겠다. 특정 그룹이 아니라 모든 세대와 직분을 아우르는 훈련을 해야 교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다섯째, 점진적, 체험적 도입이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제도화보다 절기나 특별기도회나 소그룹 활동을 통해서 조금씩 스며들게 하면 좋겠다.


고전적 영성 훈련은 한국교회의 고유한 영성과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벽기도, 통성기도, 헌신과 섬김의 유산을 더 깊이 지지하는 상호 보완적 은혜의 수단이다. 내외적으로 위기에 직면한 지금, 우리는 과감히 고전적 영성 훈련을 회복하여 이 위기를 성숙의 기회로 전환하기를 소망한다.


KCMUSA,680 Wilshire Pl. #401,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