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구약교회의 신정정치 - 2. 아브라함의 횃불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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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그의 후손에게 부여한 “무지개 언약”이 온 인류를 포함하는 자연법적 언약이라면, 아브라함과 맺으신 “횃불 언약”은 구속받을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언약이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세운 세속적 공동체와 구별되는 새로운 신정(神政) 공동체를 원하셨다. 새로운 신정 질서는 이전 문명을 개혁하는 것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민족, 새로운 도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함으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은 이처럼 새로운 신정국가, 새로운 신정적 세계관과 신성한 문화를 창조하도록 기획되었다. 그들은 이민(immigration)의 방법으로 니므롯의 바벨론 문명에서 분리되어야 했으며, 혁명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문명을 수립하여야 했다. [Elazar, Covenant & Polity in Biblical Israel, 124-12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불러 가나안으로 인도한 이유가 그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도록 권면했고, 아브라함은 이 명령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창 12:1-5).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창세기 15장에서 맺은 횃불 언약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나그네로 살면서 메소포타미아에서 공격해 온 시날 연합군과 싸워 이긴 후에 맺어진다. 아브라함은 마므레, 에스골과 아넬과 연합하여, 소돔 연합군을 이긴 시날 연합군을 단에서 격파하였다. 그들은 다마스커스까지 추격하여 대승을 거둔다. 이는 주변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대승이었다. 그 사건이 지난 후, 아브라함은 환상 속에서 하나님을 본다.
아브라함은 롯의 가정을 포로 상태에서 해방시켰지만, 시날 땅(Shinar)의 도시국가들을 적으로 돌렸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큰 전쟁에 참여하였고, 기습적으로 얻은 승리는 다시 군사적 보복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었을 즈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안심시키면서 환상 가운데 말씀으로 임하셨다. [송제근,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 (서울: 두란노, 2003), 76-77.]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선민 공동체인 나라를 세우려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 일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하여 이루기를 기획하셨다. 창세기 15장의 횃불 언약과 17장의 할례 사건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획을 확증하는 계시적 사건이다. 신정적 질서를 위하여 하나님은 먼저 대안적 민족을 형성하기를 원하셨고, 그들이 거주할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려고 결심하셨다.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통치하지만, 민족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군주를 일으키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러한 언약의 내용은 횃불 언약 속에 포함되고 그 언약을 확증하는 증거가 횃불 언약식에 이어진 할례이다. [송제근,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 76-81.]
먼저 창세기 15장의 횃불 언약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의 첫 번째 내용은 자식이 없는 그에게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씨”(seed)를 주심으로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을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여주시며 말씀하신다.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의 부정적인 관점은 이내 긍정적으로 바뀐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이 잊을 수 없는 약속이 창세기 15장에서 다시 확인된다. 하나님께서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몸을 통하여 나온 후손이 창대한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한다. 아브라함을 이민자로 인도하시고, 파라오와 아비멜렉과 같은 왕으로부터 아내 사라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국제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후손을 일으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또한 확신한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아직도 자식을 가진 경험이 없는 아브라함은 언약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민족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굳게 믿었고, 하나님은 이를 의로 인정하셨다. [송제근,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 76. 다음도 참고하라. S.G. De Graaf, Promise and Deliverance, vol.I From Creation to the Conquest of Canaan (Ontario, Canada: Paideia Press, 1977), 박권섭 역, 『약속 그리고 구원 1: 천지창조에서 가나안 정복까지』 (서울: 크리스찬서적, 1987), 106-108.]
“씨에 대한 약속”에 이어 하나님의 둘째 복은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약속”이다. 국가는 국민과 함께 영토를 확보함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땅” 곧 가나안을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아브라함을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불러내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시는 데 대한 징표를 구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식을 준비시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삼 년 된 암소, 암염소, 숫양을 준비하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준비한다. 둘로 쪼개진 소, 염소와 숫양은 양쪽으로 벌려 놓고, 언약의 당사자들은 이제 제물 사이로 통과할 때가 되었다. 동물이 두 조각으로 쪼개진 것처럼, 언약을 배반하는 자는 몸이 쪼개질 수밖에 없다는 약속을 기억하며, 언약 당사자가 제물 사이를 지나가야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깊은 잠과 두려움에 빠졌고, 오직 하나님만이 “타는 횃불”과 “연기 나는 화로”의 모습으로 짐승 사이를 지나갔다. 횃불 언약에서 그 언약의 성실성을 담보하는 존재는 언약 당사자 양측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통하여 복의 증여가 보장됨을 보여준다. 여호와는 어둠을 밝히는 불로 지나가고, 아브라함은 깊은 잠에서 그것을 관망하는 자로 언약에 동참한다. 예수의 구원이 오직 우리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역사하는 은혜로 말미암는 것처럼, 선민의 형성과 번성이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선물임을 이 횃불 언약이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Peter Gentry and Stephen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A Biblical-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Covenants (Wheaton: Crossway, 2012), 김귀탁 역, 『언약과 하나님 나라』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358-372; S.G. De Graaf, Promise and Deliverance, 박권섭 역, 『약속 그리고 구원 1: 천지창조에서 가나안 정복까지』, 109-111.]
후손과 땅을 주신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는 그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고 여호와께서 왕이신 나라이다.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세워지는 나라는 그러므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이며, 하나님은 신정 공동체를 세우는 언약의 종주권자이자 세상의 왕이다. 국가의 설립에서 중요한 “씨”와 “땅”에 대한 요소를 확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국제정치와 유대민족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주권자, 심판자이신 왕으로서 일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러므로 바벨론과 같은 나라, 시날 연합군과 소돔 연합군의 싸움을 통해서 보는 세상 나라와는 대조되는 나라를 세우시는 새로운 나라의 왕이시다. 그 왕은 아브라함과 횃불 언약을 맺으심으로 자신의 권세와 능력을 분명하게 나타내신다. [Elazar, Covenant & Polity in Biblical Israel, 13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