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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구약교회의 신정정치 -3. 언약의 주권자 하나님의 신실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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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USA| 작성일2026-01-06 | 조회조회수 : 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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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오직 왕이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드러낸다. 창세기 15장은 주권이 그 왕 하나님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왕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데 그 계획은 다음과 같다. 


첫째, 땅은 급속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 400년 이후에 주어진다고 알리심으로 여호와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준다. 둘째, 아브라함의 후손은 먼저 400년 동안 이방 나라에서 나그네가 되어 종노릇 하며, 고난을 경험하게 될 것이 예고된다. 따라서 이 고난은 섭리적 고난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선민을 압제하던 나라 이집트를 징계하고 큰 재물을 얻어 나올 것을 가르침으로, 자신이 의로운 통치자이심을 보인다. 넷째, 선민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소유하는 일은 원주민 아모리 백성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이루어짐을 예고함으로, 하나님이 정복과 심판을 동시에 운영하시는 지혜자이심을 보인다. 다섯째 이스라엘 민족의 영토는 북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에서 남쪽으로는 애굽강 사이의 땅을 보이심으로 열방의 경계를 정하시는 국제정치의 기획자이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영역은 현재 가나안의 열 종족 - 겐, 그니스, 갓몬, 헷, 브리스, 르바, 아모리, 가나안, 기르가스와 여부스 족 - 이 살아가는 땅임을 보이심으로 국가의 경계를 확정한다. 

   

횃불 언약에서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나가셨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 되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로 나타나셔서 이제 약속의 자손 이삭을 낳을 것을 예언하신다. 하나님은 은총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아브라함이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고 당부하신다. 사라가 처한 불임의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이미 86세에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이스마엘이 13살이 되었을 때 전능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이 있을 것을 예언하신다. 언약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창세기 17장은 창세기 15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횃불 언약에서 일방적인 부담을 지고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이제 언약의 다른 당사자 아브라함의 반응으로 할례를 받을 것을 명하신다. 


할례는 횃불 언약의 표징이다. 이제 ‘존귀한 아버지’라는 의미의 이름, 아브람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브라함으로 바뀌고, ‘나의 공주 혹 나의 귀부인’이라는 의미의 사래는 보편적인 민족의 ‘공주 혹은 귀부인’인 사라로 개명된다. 하나님은 이렇게 새로운 언약의 당사자가 된 부부를 향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예언하며, 새로운 언약의 표징으로 집안의 온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라고 종용하신다. 아브라함은 그날에 자신은 물론, 이스마엘과 온 집안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표시를 몸 안의 흔적으로 남기게 된다.


홍수 이후에 맺어진 노아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은 이후에 있을 모든 언약의 표징이다. 창세기 9장에 소개된 무지개 언약과 15, 17장의 횃불 언약과 할례는 다음과 같이 비교된다. 첫째, 무지개 언약이나 횃불 언약의 유사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혹은 “편무적인”(unilateral) 언약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이 은혜의 언약을 통하여 스스로 제한받으신다. 하나님은 무지개 언약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계의 생존과 번성을 보장하는 자비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다면, 횃불 언약을 통하여 거룩한 백성, 곧 선민의 생존과 번성을 맹세하신다. 이는 쌍무적인 언약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자비에 기반을 둔 편무적 언약이다. [그러나 이런 편무적인 언약이 21세기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의 결단에 의해 핵전쟁과 환경파괴가 자행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연장시킬지는 더 많은 고찰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의 책 9장의 “창세기 대홍수와 핵 홀로코스트”를 참고하라. Richard Bauckham, The Bible in Politics: How to Read the Bible Politically (London: SPCK, 2nd. ed., 2011), 민종기 역, 『성경과 정치: 정치적 안목으로 성경 읽기』 (논산: 대장간, 2024). 272-290.]


둘째로 이 두 언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주도권(initiative)에도 불구하고, 이 두 언약은 대조적인 특성을 가진다. 노아 언약은 온 인류를 향한 보편적 자연법적 언약이라면, 아브라함 언약은 대조적인 특별한 공동체를 세우시겠다는 선민을 위한 언약이다. 선민의 언약은 영원한(eternal) 언약이다. 선민의 언약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진다. 노아의 언약 또한 하나님의 편무적인 일방성을 가진다. 그러나 노아의 언약은 물의 심판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할 뿐이다.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핵전쟁과 같은 스스로 파멸적 선택을 한다면, 이는 불의 심판(벧후 3:7-13)을 스스로 선택하는 셈이다. [창세기 9장의 언급으로 한정시킬 때, 노아의 언약은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이다. 그러나 넓은 관점, 홍수 이전부터 있던 하나님과 노아의 관계성을 생각하면 노아 언약은 편무적인 차원과 쌍무적인 차원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Daniel Elazar, Covenant & Polity in Biblical Israel, 79.] 


II. 시내산 언약의 혁명적 특성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언약의 하나님은 강압이나 복종을 통해서 인간과 권력관계를 이루시지 않고, 언약이라는 자발적 동의를 통해서 권위형태(authority-pattern)를 형성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새로운 공동체(community), 공영체(commonwealth)나 정체(polity)를 이룬다는 차원에서 정치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언약을 맺는다’(카라트 베리트)는 의미는 어원이 말하듯이, “짐승을 쪼개는 행위”를 통해 언약 당사자를 “묶는 것”(binding)이며, 이는 언약 당사자에게 윤리적 의무를 발생시키는 상호 간의 약속이다.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시는 언약은 비록 인간의 의지가 죄에 훼손되었을지라도 자신의 의지를 통해 ‘자발적 동의’(voluntary consent)를 표현하고 이에 대한 책임 있는 실천을 요청한다. 하나님은 이처럼 미래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의 의사를 고려하여 계약 당사자 상호 간의 도덕적 의무를 동반하는 공동체를 구성한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횃불 언약의 내용은 430년 이후 정치-종교적 공동체를 발생시키는 시내산 언약으로 정점에 이른다. [Elazar, Covenant & Polity in Biblical Israel, 1-2, 23-24.] 
 
이 언약은 기본적으로 자애로운(compassionate) 언약, 혹은 호의적인(benevolent) 언약이지만, 이에 대하여 반응하는 공동체의 의무를 요청하는 “쌍무적 언약”(reciprocal covenant)이다. 그리고 이 언약은 정치-종교적 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신정정치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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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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