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힉스의 “평화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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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국, 1834, 에드워드 힉스
내셔널갤러리오브아트(Washington D.C., US)
에드워드 힉스가 여러 번 다시 그리며 사랑했던 작품 〈평화의 왕국〉입니다. 62번의 변주 중 내셔널갤러리가 선택한 1834년의 캔버스를 골랐습니다. 작품을 처음 만난 순간, 주일학교 시절 목청 높여 부르고 나면 눈물이 고이곤 했던 어린이 찬송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가 기억 저편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는”(사 11:6) 세상을 꿈꾸던 작가, 퀘이커 교도이자 목회자였던 작가의 평화의 왕국을 향한 신앙 고백은 붓질이 거듭되며 선명해집니다.
<평화의 왕국>의 전면 중심에는 사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늑대의 품 아래 새끼 양이 온기를 느끼고 있고, 새끼 염소들은 표범의 등 위에 올라타고 있습니다. 암소와 곰이 사랑을 나누듯 나란히 앉아 이야기 나누고 있고, 아기 송아지와 아기 곰도 비슷한 포즈로 함께 뒹굽니다. 천사같은 아이들은 평화로운 동물의 왕국 사이에 뒤섞여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사 11:6)는 성경의 약속이 흙빛 대지 위에 펼쳐진 것입니다.
퀘이커 교도였던 힉스는 “내면의 빛” 교리에 따라 인간과 동물이라는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에 장벽이 허물어진 세상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사자는 소처럼 여물을 먹고, 맹수와 가축이 한 공간을 나눕니다. 이것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정의로 허리를 동이고 성실로 띠를 띠"(사 11:5)는 메시아가 도래할 때 이루어질 세계에 대한 간절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화면 왼편 배경을 보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윌리엄 펜이 1681년 델라웨어 강변에서 레나페 인디언들과 영구적인 우정의 조약을 맺는 장면입니다. 식민지 펜실베이니아의 창립자였던 펜은 원주민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었지만, 그의 아들을 비롯한 후계자들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거짓과 불공정으로 원주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냈습니다. 평화주의자 힉스는 그 아픈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캔버스 안에서라도 잃어버린 평화를 되살리려 했습니다. <성서의 아름다운 약속>과 <역사의 반복되는 배신>이 한 화폭 안에 공존하며 긴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거꾸로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평화의 왕국은 가까이서 봐도 희극이고, 불완전한 인간의 평화의 왕국은 멀리서 봐도 비극입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뒤늦게 뛰어든 직업화가의 길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작품은 평면적이었고, 원근법에 서툴렀습니다. 하지만 기술 너머의 명료한 메시지를 세인들은 발견했습니다.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사 11:9)는 예언처럼, 그가 그린 세계에는 폭력이 없습니다.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없습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기다립니다. 힉스가 예순두 번이나 그린 그 불가능을 우리도 품어봅니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예언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왼쪽의 장면처럼 성공처럼 보이는 실패 투성이의 평화일지라도, 언젠가 새로운 세계는 움트리라는 믿음. 그 믿음이 힉스의 붓을 들게 했고, 오늘 우리가 이 그림 앞에 서게 했습니다.
평화는 먼 훗날 오실 메시아만이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림의 시간마다 우리가 새롭게 그려보는 평화이면서, 끝없이 그려내야 하는 비전입니다.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살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여전히 그 평화를 상상하고 실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둠 가운데 빛을 품고 있는 우리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우리는 오늘 어떤 평화를 품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갑니까?
• 평화를 깨뜨리는 습관이나 성격은 무엇입니까? 이 대림 시기에 버려야 작은 폭력은 무엇입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들 평화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소서. 내 안의 평화롭지 못한 옛 것을 버리고 빛 되신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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