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호 목사의 묵상의 뜨락] 대강절 묵상 (4) 새롭게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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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분주하게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성탄절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머릿속은 여러 예배와 행사 준비로 복잡하고, 마음은 덩달아 조급하며, 몸은 잿빛 하늘처럼 무겁습니다. 문득 이런 마음과 몸으로 성탄절을 맞아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행사’가 아니라 ‘사건’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던 내가 정작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사람처럼 뛰어다니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며칠 전, 평소보다 일찍 깨어 이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번 성탄절은 어떻게 해야 다시 한 번 뜻깊은 사건이 될 수 있을까?’
지난 3주 동안 묵상한 대강절의 주제들(기다림, 함께하심, 구원하심)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이어집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개인적인 바람이 아니라 온 인류의 소망,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바라는 거룩한 소망입니다. 또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성육신하신 임마누엘의 은총은 우리보다 더 힘겹고 눈물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함께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거룩한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 당하시고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내면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분열과 불의로 얼룩진 세상을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참으로 성탄절은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절기인 동시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다가가야 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오신 주님을 경축하기만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웃에게, 특히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행사’일 뿐, ‘사건’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라는 떼제 찬양의 고백처럼, 예수님은 오늘도 고난 속에 있는 이웃 가운데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성탄을 준비할 때, 비로소 성탄은 또 한 번의 거룩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속 깊은 곳에 여전히 자기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 대한 “지극한” 사랑 즉 참된 자기 사랑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게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오염되고 병들어 지극한 사랑 대신 지독한 사랑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즉 자기만을 중심에 두고, 자신에게 집착하는 왜곡된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오신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을 기뻐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만을 위한 성탄을 준비한다면 그것은 한참 빗나간 일이 될 것입니다.
불교에는 애기애타(愛己愛他), 곧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자기 사랑과 타인 사랑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이어져 있는 하나의 자비 실천을 말하는 개념입니다. “자기 자신을 해치지 말고 남도 해치지 말라”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비록 불교의 가르침이지만, 성경의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말씀과도 깊이 통합니다. 자신을 바르게 사랑할 줄 알 때 우리는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함께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세워가는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역으로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곧 자기를 참되게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예수 그리스도를 “타인을 위한 존재(the man for others)”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 전체를 남을 위해 내어주고, 세상을 섬기기 위해 자기를 비우며,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남을 위한 자신의 삶을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온전한 사랑”이라고 부르죠. 본훼퍼는 개인의 구원에만 몰두한 전통적 신앙을 비판하며, 참된 신앙이란 예수님을 본받아 타인을 위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렇듯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회개하고,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신 이타적 삶, 곧 남을 위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성탄을 단순한 연례 행사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사건으로 맞이하는 길입니다. 대강절의 간절한 기다림은 결국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열망하는 거룩한 몸부림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일은 결심이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성령의 임재와 새롭게 하시는 은총을 간절히 구합니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내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우리를 섬기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섬김의 길을 걷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작고 소박한 실천이라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요한계시록 22:20)

이현호 목사(연합감리교회 버지니아 연회 White Memorial UMC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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