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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타너의 “이집트로의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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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로의 피신, 1923, 헨리 오사와 타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New York, NY)



어둠이 좁은 골목길입니다. 주님의 가족이 나귀를 나눠 타고 중동 어딘가의 푸른 밤을 스쳐갑니다. 아치형 문들이 깊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벽들은 세월의 흔적을 품은 채 이 경건한 야간 행렬 앞에서 침묵합니다.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하고 일러준 그날 밤, 그들은 헤롯의 칼날을 피해 이 낯선 땅으로 향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화가였던 작가는 자신의 이방인 경험을 이 작품에 투사합니다. 익숙했지만 배척뿐이었던 고향땅 펜실베니아를 떠나 파리에 도착했을 때 작가 자신이 경험했던 그 느낌이 생생합니다. 위축되고 두려워서 벽으로 붙어서 조심 조심 걷는 모습은 이 작품의 백미입니다. 특별히 과장된 장면이나 천사 같은 존재 없이도 충분히 긴장감이 드러납니다. 위축된 그 몸짓, 도로 한 복판이 아닌 가장자리를 걷는 성가족, 추격의 두려움과 갈 곳 없는 막막함, 이를 감싸고 있는 푸른 밤의 서늘함이 도드라집니다. 타너의 경험과 성서의 이야기가 만나 성가족은 우리 곁의 이민자, 난민, 폭력을 피해 국경을 넘고,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황급히 피신하는 이들의 얼굴이 됩니다.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빛과 어둠의 대비입니다. 칠흙같은 어둠이 달빛을 만나 사막을 푸르게 적시고 있습니다. 보일듯,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 이 ‘서류 없는 국경 통과자’들을 흐릿하게 비추는 빛입니다. 빛은 희망이자 동시에 위험입니다. 그들을 인도하는 빛이지만 동시에 그들을 드러낼 수 있는 빛이기도 합니다. 타너는 이 역설을 아름답게 포착합니다. 돌아갈 곳을 지우고 떠나버린 발걸음에는 두려움이 동반된 벅찬 기대가 공존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차갑습니다. 도시의 밤거리는 황량합니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고, 숨을 곳도 없습니다. 베들레헴의 마굿간이면 갈 데까지 간 줄 알았더니, 내 나라를 떠난 민족에게 첫날 밤은 기약없이 서러운 법입니다. 오직 가족뿐입니다. 마리아는 품은 아기를 더 꼭 끌어안고, 갓 꿈에서 깨어났을 요셉은 얼떨떨함을 넘어 어느새 가장의 무게를 품었습니다. 


신앙의 여정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품었다는 것 자체로 좋은 일이 곧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믿기로 작정했다고 해서 운수가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위험의 강을 건너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세례라는 죽음의 강을 함께 건너 생명을 얻은 전우들이 모여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룬다면, 고독과 두려움이라는 세계관이 붕괴되는 죽음의 단계를 넘어 섰을 때 오롯이 그리스도인으로 설 수 있는 <개인>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가가 포착한 것은 신앙의 달콤함이나 화려함보다는 신앙의 무게입니다. 요셉이 아기 탄생의 축복된 시간에 머무르지 않고 지체 없이 떠난 것처럼, 하늘의 인도하심에 지체없이 순종하고, 미지의 언약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무게를 견뎌내는 일, 그것이 신앙의 그 다음 단계입니다. 


이 작품을 보는 우리는 묻게 됩니다. 오늘 밤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국경을 넘는 이들, 폭력을 피해 집을 떠나는 이들, 미래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무리에 동행하는 신앙의 단계를 밟아나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빛은 아직도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평화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나는 낯선 곳에서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때 나에게 다가온 "흰 옷을 입은 이"는 누구였습니까?

• 오늘 내가 지나치는 골목에서, 내가 스쳐가는 얼굴들 가운데 피난길 위에 있는 이를 알아볼 수 있습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품고 걷게 하시는 주님, 낯선 땅에서 문턱을 넘는 이들과 함께하소서. 우리가 그들의 여정에 작은 빛이 되게 하시고, 그들의 발걸음에 평안이 함께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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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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