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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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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nus Dei(Lamb of God)

하느님의 어린 양, 1635-1640,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 

프라도 미술관(마드리드, 스페인)



그리스도의 어둠 속 한 생명이 누워 있습니다. 네 다리가 묶여 있는 어린 양입니다. 저항하지 않은 듯이, 순순히 그 묶임을 받아들인 듯이. 시간을 초월한 고요의 감각으로 잘 알려진 작가,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의 명작 <하느님의 어린 양(아뉴스 데이)>입니다.  


작가의 화풍은 간결합니다. 먼 훗날 독일의 한 건축가는 이런 추구미를 일컬어 “Less is More” 즉 적을 수록 아름답다로 명명했습니다. 근대 건축의 거장, 바우하우스 교장 출신의 미스 반 데 로에의 금언입니다. 화폭에는 주제를 설명할 그 어떤 소품과 상황과 배경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제물로 바쳐질 운명이라는 암시도 필요 없습니다. 제목 그대로 <하느님의 어린 양>이면 충분합니다. 깊은 어둠은 눕혀진 양을 감싸듯 잠식해 나가지만, 어디서 쏟아지는지 유난히 밝고 부드러운 빛은 ‘초현실’과 ‘비일상’을 암시합니다. 어린양과 어둠, 빛이면 설명이 다 되는 작품입니다. 


유일한 운명의 가늠좌는 묶인 다리입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절박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분노도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깊은 침묵뿐입니다.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이 천천히 되살아납니다. 그 증언이, 이 캔버스 위에서 정물에 가까운 형상으로 평화로이 누워 있습니다.


수르바란은 17세기 스페인의 화가였습니다. 수도원의 일상을 담아냄으로 커리어를 시작해서인지, 사물을 그릴 때도 거룩함을 담아내던 작가였습니다. 흙으로 빚은 단지, 나무 탁자 위의 레몬과 오렌지, 그리고 이 어린 양. 그에게는 모든 것이 신앙의 언어였습니다. 말 없는 존재가 말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습니다. 작가는 평소에도 유난히 옷의 주름을 정확히 묘사하려고 반복을 거듭했습니다. 혼을 실어서 붓질을 하다 보면, 그 주름 조차 말하게 만드는 그 손길이 결국 양의 털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흠 없이 희고 깨끗한 양의 털, 그 순결함에 생명력이 더해집니다. 말 없이 누운 어린 양은 결국 침묵의 언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항 없는 수용, 그리고 완전한 내어줌을.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저항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움켜쥘 것인가, 내어줄 것인가. 이 그림 앞에 서면 그런 물음들이 조용히 떠오릅니다. 완전한 고요 속의 어린 양이 우리에게 묻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습니까?”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나의 삶에서 "Less is More"가 필요한 영역은 어디입니까?

• 내 삶에서 저항을 내려놓고 고요히 받아들여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어린 양처럼 순결한 마음으로 이 세상의 어둠 속에 머물 수 있게 하소서. 내어주는 사랑이 빛이 되는 그 신비를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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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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