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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바사이티의 “세베대의 아들들을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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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lling of the Sons of Zebedee

세베데의 아들들을 부르심, 1510, 마르코 바사이티

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 이탈리아)



작품이 탄생한 베네치아의 물길을 닮은 그림입니다. 짙푸른 갈릴리 바다의 물결은 유난히 잔잔하게 일렁입니다. 멀리 산들은 녹황색 침묵으로 서 있습니다. 합니다. 바사이티의 화폭 위에서 시간은 고요히 멈춰 섭니다. 1세기 갈릴리의 모노톤이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화려한 색을 입고 되살아납니다.


황금 분할 비율로 가로 세로 선이 겹치는 포인트에 그리스도가 눈에 띕니다. 부드럽게 들린 손길로 뭍에 오르는 세베대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이미 제자로 부름 받은 브라운 톤의 베드로가 우편에, 짙은 올리브 톤의 안드레가 좌편에 서서 아직은 어색한 듯, 손을 따라 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부르심의 주체라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부르심의 증인입니다. 


세베대의 아들들, 참으로 푸르른 청춘들입니다. 야고보의 기울어진 몸은 이미 주님을 영접할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염이 없는 요한은 그 뒤를 묵묵히 따르면서도 못내 아버지에 대한 미련을 남기는 듯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마 4:21-22) 이 말씀이 작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성서는 슬픔도 기쁨도 없이 묵묵히 사건을 전달합니다. 


배를 버린다는 것. 아버지를 떠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직업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정체성을 버리는 일이자 안전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로 걸어 들어가는, 두려운 일입니다. 아직 배에서 내리지 못한, 즉 생업 수단에 여전히 발 딛고 선 아버지 세베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화폭 속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습니다. 놓아줌의 고통, 축복의 슬픔. 그리고 그의 손 끝에서 “이 사람을 보라”는 암시를 읽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부름 받은 자녀들을 축복하는 손짓입니다. 하늘의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순명하는 아버지의 <떠나보냄>입니다. 


무대 뒷편의 사람들을 바라봅시다. 멀리서는 여전히 3인 1조로 고기 잡이에 한창입니다. 사건이 일어나는 선착장 바위 밑에 두 사람 표정도 볼만 합니다. 터번을 쓴 사내는 흔치 않은 호숫가 풍경에도 애써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딴청을 핍니다. 흰 수염의 사나이는 고뇌에 젖은 장인의 모습이 엿보이지만 구원의 사건과 관계를 맺지는 않습니다. 다들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한 날 오후의 스쳐가는 바람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입니다. 같은 물가에 있어도 누군가는 부름 받고, 누군가는 듣지 못하며 일상에 머무릅니다. 


다만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어린 아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깨끗한 도화지같은 어린 아이의 마음에 담긴 부르심의 사건은 대를 잇고 이어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음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 어린 아이가 앉아 있는 널빤지 구석에 자신의 서명을 작게 적어 놓았습니다. 아이에 자신을 투사했습니다. 성화의 작가로서 지금껏 500년이 넘도록 복음을 전하고 있으니, 충분히 자격 있습니다. 


이 작품은 대형 작품입니다. 세로 길이는 4미터에 달하는 압도적인 스케일입니다. 바사이티가 그린 제단화가 걸린 곳은 카르투지오회 수도원이었습니다. 하루 7번 기도하고 찬송하며 모이던 제단 앞에서, 수도사들은 매 순간 자문했을 것입니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미 제자의 자리에 서서 축복하는 베드로와 안드레의 자리인가? 아니면 여전히 삶의 무게에 짓눌린 채 눈길 한 번 안주고 그물을 수선하는 어부들의 자리인가? 아니면 오늘 주께 부름 받은 내 삶이라는 작품 속 주인공인가? 호숫가에 울려 퍼진 부르심의 음성은 세월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나는 지금 이 그림 속 어디에 서 있습니까? 이미 부름 받아 증인이 된 베드로와 안드레아의 자리입니까, 이제 막 배를 떠나려는 야고보와 요한의 자리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그물을 손질하며 딴청 피우는 터번 쓴 어부의 자리입니까?

• 내가 버려야 할 '배'는 무엇이며, 내가 떠나야 할 '아버지'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나를 안전하게 묶어두고 있으며, 무엇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습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저를 부르시는 그 음성이 오늘도 갈릴리 호숫가에 울려 퍼지고 있음을 압니다. 제 배와 그물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가리키시는 그곳으로 기꺼이 따라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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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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