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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일화일언”을 읽고 •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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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일언 (장희선, 도서출판 영문)”을 읽고 • 이예지 

세계한인기독언론협회 주최 제11회 신앙도서독후감 수상작품 



<과거의 먼 자리에서 있었던 오래된 이야기가 지금의 삶을 움직일 수 있을까? 「일화일언」은 이 물음에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답한다. 실화인지 우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생생한 일화들은, 아주 오래된 기록 같으면서도 여전히 길과 지혜를 건넨다. 그리고 그 이야기 한 편이 성경 말씀 한 줄과 맞닿을 때, 우리의 삶을 다시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돌릴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펼친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 날 총회를 다녀오신 담임목사님께서, 선물받은 책을 한 권 주시며 읽어보라 권하셨고, 처음에는 신앙 서적이니까 믿음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나의 예상은 조금씩 깨어져 갔다.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믿음의 영웅으로 기록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서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삶이 성경 말씀 한 구절과 나란히 놓이면서 오히려 더 진하게 신앙의 질문들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먼 자리에서 있었던 오래된 이야기가 지금의 삶을 움직일 수 있을까? 「일화일언」은 이 물음에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답한다. 실화인지 우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생생한 일화들은, 아주 오래된 기록 같으면서도 여전히 길과 지혜를 건넨다. 그리고 그 이야기 한 편이 성경 말씀 한 줄과 맞닿을 때, 우리의 삶을 다시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돌릴 수 있었다.


크고 특별한 기적이나 거창한 신앙 고백을 말하지 않더라도 각 이야기 안에서 드러나는 한 사람의 태도와 선택이 말씀 앞에서 다시 해석될 때, 오늘을 살아가는 내 삶의 기준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시대를 달리한 이야기 속 선택이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삶의 방향을 다시 묻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스가랴의 이 말씀은 황희 정승의 일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어느 날 길을 가던 황희 정승은 젊은이가 늙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깊이 감동했다. 약값조차 구하지 못해 어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울고 있던 효심 어린 청년에게 그는 “참으로 효자 중의 효자다”라며 하인을 시켜 돈을 건네 주었다. 며칠 후 그는 또다시 같은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거짓이었다. 황희 정승의 선행을 들은 불효자가 돈을 얻기 위해 흉내를 낸 것이었다. 그러나 황희 정승은 “거짓으로라도 효도하다 보면 정말 효자가 되느니라”고 말하며 그에게도 돈을 주었다.


이 장면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황희 정승의 시선이었다. 그는 사람의 진심보다 가능성을 보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심지어 거짓된 동기에서 시작했더라도 선행이 반복되면 결국 사람의 마음에 남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저자는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이력이 남고, 이력이 붙으면 버릇이 된다’고 말한다. 선행이 습관이 되면 그것이 곧 인격이 된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처음엔 솔직히 이 이야기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거짓의 탈을 쓴 사람에게까지 보상을 준다는 것은 너무 이상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할수록 ‘선행이 습관이 된다’는 말에는 깊은 진리가 담겨 있었다. 선행은 결과보다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방향에 의미가 있다.


나는 행동 자체보다 그 행동을 이끄는 마음의 중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 믿음이 삶으로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고 믿는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삶을 통해 드러나는 법이다. 나는 완전한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선한 마음을 지키려는 작은 실천이 내 삶의 결을 조금씩 바꾸어 간다. 그래서 작은 선행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이 이야기는 결국, 믿음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나는 조용한 순종임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신앙의 방향을 바로 세우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태도와 시선도 달라지기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다음 이야기인 ‘쓸데없는 군걱정’은 바로 그 마음의 평안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옛 중국 기(杞)나라에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근심하며 날마다 걱정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불안함에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하늘은 기체가 쌓인 것이라 무너질 염려가 없다”고 안심시켰지만, 그는 다시 “그렇다면 해와 별이 떨어질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친구는 “그 빛나는 것들은 기체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니 떨어져도 해치지 않는다”고 설명했고, 그는 또 “땅이 꺼지면 어쩌나”라며 걱정을 이어갔다. 이처럼 이유 없는 걱정에 사로잡힌 기 나라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기우(杞憂)’라는 말이 생겼다.


옛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 이야기가 왠지 내 마음을 찔렀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통제할 수 없는 일에도 내 힘으로 붙잡으려는 마음이 내 안에도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끊임없이 불안을 품는 내 모습이 바로 ‘쓸데없는 군 걱정’을 하는 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근심 속에 갇히기보다 그 마음을 맡기길 원하신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믿음의 평안’이란 결국 마음이 어디에 머무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문제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다. 우리가 말하는 ‘내려놓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내 마음의 주도권을 내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멈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실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이다.


걱정이 많은 날일수록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 마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힘으로 버티려 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그분께 내 마음과 내 삶을 온전히 맡기는 일이다. 작은 선행이 믿음의 표현이라면, 불필요한 걱정을 내려놓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조용한 순종이다.


이 이야기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얼마나 쉽게 염려 속에 갇히는지를 보여준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상상하며 두려워하고, 결국 그 걱정에 묶여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미래의 불확실함 앞에서, 혹은 사람과의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걱정으로 마음을 채울 때가 많다. 그러나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 찰수록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는 그만큼 좁아진다.


결국 이 책은 신앙은 평안한 감정이 아니라, 신뢰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아무리 상황이 불안정해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내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준다. 걱정을 내려놓는 일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더 신뢰하겠다는 결단이며, 그 믿음은 결국 섬김의 삶으로 이어진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남을 높이는 인물’의 이야기는 그런 믿음의 방향을 보여준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던 자리에서 이름의 순서를 두고 논쟁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순서는 무슨 순서야. 죽는 순서지.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르는데 순서를 따질 필요가 있나.” 그의 한마디는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는 스스로의 이름이 앞서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름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공동체를 살리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의 겸손은 자신을 낮추기 위한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믿음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드러나지 않은 것의 가치’를 떠올렸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 누가 알아주지 않고 이름이 남지 않아도 그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 그것은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이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가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섬김은 겸손의 또 다른 이름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손길 속에 신앙의 진짜 무게가 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신다는 믿음, 그 믿음이야말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이유이다.


요즘 세상은 남보다 앞서려 하고 인정받으려는 경쟁이 일상이다. 그러나 높아지려는 마음은 교만을 낳지만, 남을 높이려는 마음은 사랑을 낳는다. 나의 성공보다 누군가의 성장을 기뻐할 수 있을 때, 하나님은 그 마음을 통해 일하신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높음의 기준’을 다시 배웠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높음은 지위나 성취가 아니라, 남을 세워 주는 사랑의 태도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 장면처럼 진정한 신앙은 스스로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겸손과 사랑으로 자연스레 드러나는 삶 속에서 완성된다. 그런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그 향기를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라 믿는다.


「일화일언」은 단순히 옛 사람들의 지혜를 전하는 책이 아니었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말씀과 만나 오늘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하나님은 여전히 작은 선행 속에서, 걱정을 내려놓는 쉼 속에서, 그리고 남을 높이는 사랑 속에서 일하고 계신다.


이 책을 덮으며 다짐해 본다. 작게라도 선한 말을 하고, 불필요한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며, 남을 높이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리라. 믿음은 결국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것임을 깨닫고 오늘도 조용한 순종으로 믿음의 길을 걷고 싶다. 이것이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분명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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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U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브레아(Brea)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된 저서로 25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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