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시와 사진]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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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죽지 않은 노병,
아직도 사라지지 아니한
문명의 흔적
수명을 늘리기 위해
기름과 역청에 절은 채
너는 오늘도
석유 냄새를 뿜는다.
듬성듬성 박힌
전공의 발 디딤대는
분명 고통스런 옆구리 가시.
바람 잔잔한 오전에는
우-웅 깊은 신음 소리를 낸다.
이고 있는 수천 근의 전선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어둔 밤 밝히는
쏠쏠한 재미 때문
사거리 모퉁이에서
모진 세월 견딘 것은
주변 사람의 간이 이정표,
동네의 게시판 노릇 때문
그 몸의 눈높이에 박힌
수백 개의 못, 스테이플러 침은
"잃은 개 찾음," "거라지 세일,"
파티 장소 지시하던
삶의 애환과 사랑의 흔적
만일 네게 피와 물이 있었다면
십자가에 늘어져 죽은
행복한 예수처럼
모든 체액(體液)을
다 흘리고 말았을 것을
찬바람에 윙윙거리는
전선의 비명 몸으로 받으며
오늘도 너는
하소연도 눈물도 없이
인근의 가정 굽어살핀다.
시와 사진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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