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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영성 작가] 내면으로 떠난 순례자 글길에 이정표를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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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파수꾼’ 소망한 인간 실존의 탐구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가을날’), “사랑이 꽃잎처럼 찾아 왔던가…하나의 기도처럼 찾아 왔던가 말해다오”(‘사랑은 어떻게’), “고독은 비와 같고…고독은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고독’) “주여 당신에게 무엇을 바치리까. 말씀해 주십시오/ 만물에게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신 당신에게”(‘오르페우스의 연가’ 제1부 20번째 소네트)….


    언제가 한 번쯤 낭송했을 법한 독일의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아래 사진)의 시들이다. 아름다운 언어의 연금술사 릴케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낙엽, 가을, 사랑, 장미, 고독 등이 등장하는 대중적이고 서정적인 그의 시가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어 심오한 ‘릴케의 맛’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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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의 길에 부는 바람


    릴케는 매일 밤, 욥기를 읽으며 말씀의 파수꾼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언어를 조각하듯 시와 산문을 썼다. “나를 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삼아주소서/ 돌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자가 되게 해주소서/ 나에게 바다의 고독을 볼 수 있는 두 눈을 주소서… 나를 당신의 텅 빈 나라로 보내주소서… 거기서 나는 순례자쪽에 서렵니다/ 눈 먼 늙은이의 뒤를 따라/ 모르는 사람뿐인 길을 가렵니다.”(‘당신 말씀의 파수꾼으로’)


    릴케는 헌신적인 신의 탐구자, 성자 또는 구속자로 인정하는 일반적 견해와 결정적인 의미에서 종교적 시인이 아니란 평가가 공존한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진지했다. 과민한 성격에 병약했던 그는 마음에 의구심이 일 때마다 신앙의 양심에 귀를 기울였다. 평소 성서를 몸에 지니고 다니며 탐독했다. 가장 아끼는 성경구절은 욥기 30장. 1903년 7월 18일자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잠자기 전에 종종 나는 욥기 30장을 읽었다. 그것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나에게 참된 말씀이었다.”


    그의 불안과 고독이 얼마나 깊었기에 매일 밤 욥기를 읽었을까. 그는 지극히 보수적인 프라하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서 완고한 어머니에 의해 신앙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딸을 잊지 못해 릴케를 6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군사학교에 보냈다. 이에 대한 반작용과 엄혹한 유년 군사 시절 고통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그의 심리 근저에 자리잡았을 듯하다. 그에게 종교는 어머니 콤플렉스와 연관된 갈등이며 또 그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볼프강 레프만은 ‘릴케 평전’에서 “릴케는 신과 내세에 대한 믿음이 상실된 시대에 인간 실존의 의미를 찾으려고 시도했다”고 평했다. 릴케는 자아의 고독과 소외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죽음과 삶의 화해를 추구한 시인이다. 그의 시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질문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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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케의 이름을 알린 ‘기도 시집’ 표지.
     


    릴케에 의하면 인간의 존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길 위에 있다. 거기서 인간은 자신만의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여겼다. 또 삶이란 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노래했다. 그는 ‘기도시집’ 제2부 ‘순례의 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순례의 길에는 늘 바람이 분다/ 순례는 세상의 사물들과 친해지는 길이다/ 가로수 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누구일까?”


    ‘기도시집’(1905)은 릴케가 깊은 경건성으로 가득찬 시인으로 인정받게 했다. ‘기도시집’은 ‘수도사 생활의 서’, ‘순례의 서’, ‘가난과 죽음의 서’ 3부로 구성됐다. ‘기도시집’이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이 작품이 대중의 심리적 욕구와 맞았기 때문이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말로 대변되는 기독교에 대한 혐오, 새로운 종교에 대한 동경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새로운 길잡이와 위안이 필요했다. 문학계가 릴케를 규정한 말은 ‘종교적 시인’이었다. 그러나 정작 릴케는 자신이 종교적 시인의 틀에 갇히는 걸 원치 않았다.


    1922년 1월 16일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이스의 연가’를 완성한 후 성직자 짐머맨에게 쓴 편지에서 “내면에는 신을 체험하고자 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열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종교적인 면에서 표본이 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에서 조각가인 로댕에게 사사한 후에 ‘신시집’(1907)을 출간했다. 신시집 속에는 성서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많다. 십자가 처형, 이집트인 마리아, 최후의 심판, 감람원 등 신약성서 소재의 작품들은 물론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함, 아비삭, 예언자들 속의 사울, 사울 왕 앞에서 노래하는 다윗 등 구약 성서적 시들이 시집 전체에 큰 역할을 한다. 그가 작품에 수용하고 있는 성서적 영향은 단순한 관심과 취미가 아니라 본격적인 탐구의 결과였다.


    말씀의 파수꾼으로


    그는 인간의 실존, 그 깊은 곳을 산문으로도 탐구했다. 1910년 발표된 ‘말테의 수기’는 전통적인 연대기적인 서술방식을 거부한다. 내용은 덴마크 귀족 출신의 젊은 시인 말테가 파리에서 죽음과 불안에 떠는 생활을 쓴 수기다. 통일된 줄거리는 없지만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담고 있어 인간 실존의 고통을 묵상하게 한다.


    “부인들이 아이를 잉태하고 서 있는 모습은 그 얼마나 우수에 찬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가. 가늘디가는 두 손을 올려놓고서 그것이라고는 깨닫지 못한 채 보호하고 있는 커다란 태 속에는 두 개의 열매가 숨어 있었다. 어린 아기와 죽음이. 넓기만 한 얼굴에 감도는 진하고 풍요에 찬 미소는 태내에서 성장하고 있는 어린 아기와 죽음을 때때로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말테의 수기’ 중)


    릴케가 말하는 두 개의 열매는 ‘생명’과 ‘죽음’이다. 임신은 분명 하나의 생명을 더 얻는 일인데 달리 보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잉태한 것이다. ‘죽음을 잉태하는 임산부’를 묘사한 장면은 릴케만의 심상이다. 생명과 죽음을 탐구하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 명확히 드러난다.


    ‘말테의 수기’ 마지막엔 성서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를 차용했다. ‘말테의 수기’ 속 탕자는 가족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집을 나가는 탕자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생명’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야 한다고 여기는 말테는 평생 유럽 각지를 방랑하며 산 릴케의 모습이다.


    시인으로서의 릴케의 생애는 4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고향 프라하에서 시인으로 출발한 시기다. ‘인생과 소곡’ ‘가신봉폐’ ‘꿈의 관’ 등 낭만적인 시집을 발간했다. 2기는 개성에 눈을 뜬 시기다. 러시아 기행을 통해 시 세계에 종교성을 가미했다. ‘구시집’ ‘형상시집’ ‘기도시집’ 등을 발간했다. 3기는 파리 시절이다. 파리에서 고독한 생활은 그를 인간 실존의 모습에 눈뜨게 했다. ‘말테의 수기’는 이때의 내적 묵상이다. 4기는 대작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를 10년에 걸쳐 완성한 시기이다. 1차 세계대전 후 그는 스위스 문학단체의 초청으로 스위스로 이주했다.


    많은 사람이 릴케와 함께 장미를 떠올린다. 그 정도로 장미는 그의 시작 인생 전반을 관통하며 죽음까지 장식했다.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가 덧나 숨졌다는 항간의 이야기와 달리 그는 3년여간 백혈병으로 극심한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위스 발롱의 한 요양원에서 외롭게 숨졌다. 물론 사랑하는 여인에게 장미꽃을 꺾어주다 가시에 찔린 것이 화근이 되긴 했지만 사인은 백혈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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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케의 무덤에 세워진 묘비명. 자신의 묘비명으로 남긴 시가 적혀 있다.


    스위스 라롱의 성 미카엘 암석교회에 있는 그의 무덤엔 직접 지은 묘비명이 서 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


    국민일보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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