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다쳐 괜찮아 > 묵상/기도 | KCMUSA

[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다쳐 괜찮아 > 묵상/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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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다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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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 사진작가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다쳐 괜찮아 



    서울 용산 삼각지 뒷골목에 탁자가 4개뿐인 '옛집'이라는 허름한 국숫집이 있습니다. 주인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진하게 멸치국물을 우려내 국수를 말아냅니다. 10년 넘게 국수 값을 2천원에 묶어놓고도 면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무한 리필해 주었습니다. 몇 년 전, SBS TV에 할머니 국숫집이 소개된 뒤 나이 지긋한 남성 한 분이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국숫집과 얽힌 자신의 사연을 전했습니다.


    “15년 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아내까지 저를 떠나버렸습니다. 용산역 앞을 배회하던 저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끼니를 구걸했죠. 그러나 가는 음식점마다 저를 쫓아냈고, 저는 잔뜩 독이 올라 식당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국숫집에까지 가게 된 저는 분노에 찬 모습으로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다 먹어갈 무렵 할머니는 국수 그릇을 낚아채더니 국물과 국수를 다시 듬뿍 넣어 주었습니다. 그걸 다 먹고 난 냅다 도망쳤습니다. 연이어 뒤따라 나온 할머니는 소리쳤습니다.”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다쳐, 괜찮아.”


    도망가던 그 남자는 배려 깊은 할머니 말이 맘에 걸려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그 후 파라과이로 이민을 가서 성공한 후 방송사에 전화를 하면서 할머니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미 할머니는 그 사람이 국수를 먹고 있을 때 돈이 없을 것이라는 짐작을 한 듯합니다.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다쳐, 괜찮아.”


    만약 할머니가 “돈 안 받을 테니 많이 먹어”라든지, “돈 안 받을 테니 도망가지 마”라고 했다면 필자는 그 내용을 여기에 옮길 이유가 없습니다. 없는 사람에게 없는 것은 죽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망갈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뛰지 말고 걸어가”라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한 배려와 사랑입니다. 용서보다 앞서는 것이 배려와 사랑입니다. 배려와 사랑 없이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괜찮아.”


    세상에 이와 같은 위로와 넉넉함이 어디 있을 까요? 돈이 없거나 몸이 아프거나 모든 것이 사라졌거나, 망했거나,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릴지라도, “괜찮아.” 이것은 도망가는 사람의 동선에 시야가 고정된 눈길입니다.


    할머니 얘기는 좀 더 계속 되었습니다. 남편이 병으로 사망 후 국숫집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심장마비로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으로 국숫집 문을 닫았습니다. 국숫집의 단골손님은 노동자, 학생, 군인 등 대다수 넉넉한 여유가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문 닫힌 국숫집에 하나, 둘 쪽지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다시 문을 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할머니를 통해 지난 세월을 엮었던 삶의 한 공간에 남겨 있던 잊지 못할 풍경 때문일 것입니다.


    ‘할머니의 국수’ 생각만 해도 세상이 따듯해집니다.


    할머니 국숫집 이야기는 “향기 나는 나무는 찍는 도끼에 향을 묻힙니다”로 끝납니다. 하지만 아무리 향기 나는 나무라 할지라도 도끼로 찍히는 그 상황은 절박함 내지는 죽음보다 더 한 고통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향기를 잃지 않고 도끼에 향을 묻힌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 향기로 또 다른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의 향기,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다쳐, 괜찮아.”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사망, 음침, 골짜기, 최악의 삼각점입니다. 해가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조건들이 쌓여 갑니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사실을 고난의 환경에서 내가 인지한다면, 그것이 복입니다.


    괜찮아, 기운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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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U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브레아(Brea)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된 저서로 25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www.epipo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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