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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시마을 The Poem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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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을 The Poem Village



    A poem is forever the heart of a mother


    혜화동 ‘보헤미안’ 찻집 문을 비스듬히 열고 들어섰을 때 이미 황금찬 선생님은 빵모자를 머리에 이고 시야를 뒤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10분 늦게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동안 황금찬 선생님은 이곳 커피가 맛있다며 어색한 내 몸짓을 커피향으로 달래주었다. 주눅이 들어 가져온 커피를 숭늉 마시듯 홀짝거리며 단숨에 들이켰다.


    공간에는 늘 불편한 구름 한 점 끼기 마련이다. 금방 시 얘기로 말꼬리가 이어지자 다행히 구름마저 빈 찻잔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쯤에도 황금찬 선생님 눈빛은 단절되지 않았다.

    “형편없는 시가 많어. 쓰레기 같은 시 말이야.”

    그 쪽 길로 가다가는 필경 돌아 나오는 골목에서 헤매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 움큼씩 빠지고 있었다. 그럴 때는 빨리 길과 길을 잇는 징검다리를 찾아야 한다.

    ***

    “시 작업은 어떻게 하세요?”

    <시마을>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계속 생각하지. 머리 안에서 시가 익을 때까지. 농사짓는 것처럼. 그러다 보면 익은 시는 보지 않아도 알아. 시를 통해 시가 스스로 외워지는 거야.”

    “<시마을>이 너무 아름다운데요.”

    “일 년에 네 번 나오는데 그것도 힘들어. 사람들은 읽는 것을 싫어해.”

    ***

    <시마을>은 1년에 만 오천 원이면 그 마을에 들어가 살 수 있었다. 한 번 살아본 사람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황금찬 선생님(1918-2017)이 지구를 떠난 지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시마을>을 만 오천 원에 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요즘 <시마을> 입구에 할아버지 한 분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시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동네 어구에서 할아버지 문지기에게 몇 마디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 일종의 규칙 같은 것이 존재했다.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배려도 있었다. 그 비밀을 살며시 여기에 적을 것이다.

    “저기 사과나무에 열린 보석이 먹고 싶다.”고 하거라. 그러면 할아버지는,

    “얘끼, 이놈 저것이 사과지 보석이냐?”


    그 소리에 놀라 도망간 사람들이 다시 <시마을>을 찾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두려운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바다가 마르는 심정으로 조금은 어설픈 변명을 하거라. 사과나무 보석이 아니면 내가 보석이 될 거라고. 그때서 할아버지는,


    “시는 영원히 어머니의 마음 그밖에 놓여지지 않는다.”

    ***

    사과나무에 걸린 어머니 마음이 시가 되는 이른 오후, 찻집을 나와 혜화동 전철역으로 함께 걷는 동안 길 가던 몇몇 사람들 황금찬 선생님과 눈을 기어이 맞추고 사라졌다. 길옆에서 오뎅 파는 아주머니와는 문장을 만들어 인사를 주고받았다.


    “교회 목사님 사모님인데 얼마나 고생하는 줄 몰라.”


    전철역에서 뒷모습 그림자만 남기고 황금찬 선생님은 ‘행복을 파는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끝에서 촘촘히 사라졌다. 순간 살아지는 것에 대한 마음의 벽이 무너진 것이 그 때쯤이다.

    ***

    “모든 것이 사람의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 그래, 이제부터는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을 뜻대로 됐다.”고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그 뜻’이 항시 문제로 남는다. ‘그 뜻’이 ‘내 뜻’으로 해석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뜻’대로 삶의 목적이 분명해진 이유다.

    But let not my pleasure, but yours be done.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십자가 죽음을 눈앞에 둔 예수 그리스도조차 ‘내 뜻’이 아닌 ‘그 뜻’에 적중하는 구속을 완성했다. 사도 바울은 아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고 삶을 그 뜻에 몽땅 걸었다.

    As long as we have life we are living to the Lord; or if we give up our life it is to the Lord; so if we are living, or if our life comes to an end, we are the Lord's.

    ‘그 뜻’이 사과나무에 열린 보석일지 모른다.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될지 모른다.

    ‘그 뜻’에 적중되는 시가 보석이 되는 그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이 황금찬 선생님과 헤어지고 나서 두 뼘 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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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U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브레아(Brea)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된 저서로 25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www.epipo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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