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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교도의 정치적 유산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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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첫째 주는 대통령과 공직자에 대한 투표를 마무리하는 때입니다.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대통령을 시민의 결정으로 선출하는 것은 근대 이후에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은 종교개혁자들, 특히 영국 청교도의 공헌에 힘입은 바 큽니다.  

       영국에서 청교도 운동이 시작된 것은 1550년에서 1700년에 이르는 기간입니다. 강력한 왕 헨리 8세와 튜더 가문의 왕들은 왕권신수설을 신봉하였습니다. 헨리 8세가 1534년에 수장령을 내림으로 영국의 왕은 국가와 교회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일방적인 통치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당시의 청교도들입니다. 그들은 존재의 위계질서에 대한 평등을 주장하였습니다. 중세와 그 이전의 관념 속에서, 하나님과 교회의 사제, 왕과 귀족 그리고 평민은 하늘이 내린 위계질서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는 이러한 생각을 전환시켰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 아래서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였습니다. 만인제사장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이전의 위계질서로 세상을 본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 아래서 평등한 사람들이 소명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에게 책임을 지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존 캘빈은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다양한 삶의 영역을 세우시고 그 영역의 지도자를 통하여 통치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캘빈주의자들은 더 나아가 왕이 악을 행하면 그 폭군을 교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를 마지막으로 튜더왕조(1485-1603)가 끝나고, 이후 스튜어트 왕조(1603-1707)가 들어섭니다. 스튜어트 왕조 때에 청교도들은 민권을 신장시키고 의회의 권한을 확장시킵니다. 영국 사회는 귀족 중심의 왕당파와 다른 한편으로는 하부 귀족인 젠트리(gentry)를 중심으로 중산층과 지주들로 구성된 의회파를 중심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이 중 가장 민주적인 사람들이 젠트리였고, 이 젠트리 출신의 청교도 목사들은 가장 개혁적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왕당파와 의회파의 갈등은 결국 내전이 이르렀고, 청교도 혁명(1642-1651)이라고 불린 이 내전에서 세 차례에 걸쳐서 찰스 1세, 2세의 군대를 격파한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의 영향력은 1660년까지 11년 동안의 왕권 정지와 공화국 체제를 이룹니다. 이 기간 동안 청교도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의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확정짓습니다. 청교도 내부 분열은 크롬웰의 독재와 죽음 이후 찰스 2세의 왕정복고로 끝났지만, 공화제의 이상은 그대로 남아 전제적인 왕권을 제한하는 명예혁명(1688)과 권리장전(1689)이라는 문서로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때에 생명을 걸고 신대륙에 정착한 사람들이 청교도입니다. 이들은 1776년 미국을 정치적,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독립을 선포합니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왕이 없는 국가,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 자유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청교도의 유산은 세계 속에 새로운 정치형태를 이루어 냈습니다. 청교도 정신은 자유민주주의의 견고한 기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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