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변하다 > 민목서신 | KCMUSA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변하다 > 민목서신

본문 바로가기

  • 민목서신

    홈 > 목회 > 민목서신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변하다

    페이지 정보

    본문


       고대 사회는 신분 사회였습니다. 주인이 있었고 주인의 소유가 되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로마제국 시대의 노예는 전체 인구의 약 20-25 퍼센트에 이른 것으로 추정합니다. 노예는 로마의 정복 전쟁에서 발생한 포로였으며, 이후에는 노예가 자녀를 낳으므로 또 노예가 됩니다. 노예는 당시 경제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농업 생산에 참여하는 노예가 있었는가 하면, 가사, 가정교사, 서비스나 상업에 참여하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당시에 존재하던 주인과 노예의 관계 속에서 커다란 정신적 변혁을 주도하는 선언을 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그리스도 안에는 “종이나 자유자나 차별이 없다”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계급의식을 말끔히 정리하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평등사상을 주장하며, 노예를 포함한 성도의 가족(household)이 사랑의 가족공동체로 거듭나도록 가르치며 배려하고 있습니다.

       근대 사회에 들어와서 철학자 헤겔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불변의 고정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헤겔은 이를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dialect)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주인은 그 위치와 위상을 지키기 위하여 노예를 필요로 하였고, 노예는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점차 노예의 노동이 숙련되고 유용한 경우가 되면, 노예는 누구보다도 주인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노예의 노동이 중요한 만큼 주인은 노예에게 의뢰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예가 자신의 위치를 바꾸는 방법은 노동을 통한 인정 투쟁에서 승리하거나 계급투쟁을 통해서 사회의 권력 구조를 변경시키는 일입니다. 근대의 시민사회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신분의 차별이 무너지는 자유로운 사회가 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는 계급투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21세기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계급의 문제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을 보여주며 아직도 상황이 해제되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적 대안의 참혹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아직도 계급투쟁의 유혹을 받습니다. 서구의 복지국가 정책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지만, 이것도 충분히 높은 세금과 자원을 확보하여야 하는 부담을 안고 시행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오래된 가르침은 계층과 계급의 문제를 기독교적 공동체 가운데서 사랑으로 해결하여야 함을 가르칩니다. 구약에서 유대인 노예는 안식년과 희년에 자유를 주라는 교훈을 발전시켜, 당시의 노예를 형제처럼 대우하라는 가르침을 베풀고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 안의 노예가 신자인 주인에게 “주께 하듯 하라”(엡 6:5)고 가르치며, 주인을 향하여는 “너도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은 너의 신분으로 너를 판단하지 않으신다”(엡 6:9)고 가르칩니다. 복음은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회심시켜 바울의 동역자가 되게 하고,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에게 용서받고 자유민이 되어 교회의 감독이 됩니다. 복음은 신분과 계급의식을 극복하는 능력입니다.

    KCMUSA,680 Wilshire Pl. #419,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