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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그 이후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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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08-31 | 조회조회수 : 4,9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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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과 그 이후 그 분 재림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역사다.

따라서 역사는 His Story가 맞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성경적 시각이다.

이방인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크리스천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반드시 믿어야 할 진리다.

 

이것을 분명히 믿는 사람들 중에 존재하는 무언가 모호함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역사의 주인공도 분명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만 보일 수 있다.

그것도 성경을 바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기본적 인식조차 없다.

앞글에서 언급한 오순절파가 그렇다.

 

삼위일체에서 예수님은 성자이시다.

하나님은 성부이시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되신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으로 표현한다.

굳이, 정말 굳이, 인간적으로 표현해서

굳이 서열을 정한다면 성부 하나님이 1위이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그 분에게 돌아가야 한다.

 

요한복음 14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길이지 목표가 아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도달할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역사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는 고린도 전서 15장에도

이러한 질서는 명확히 나타난다.

26절에 의하면 역사의 마지막에 사망이 멸망을 받는다.

그러면 그 분의 이야기곧 역사는 끝난다.

그리고 그 분은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신다’(고전 15:24).

그리고 요한계시록 21, 22장에서 그려지는 천국의 모습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 장엄한 그림을 볼 때 가슴이 요동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요동이 아니라 터져 버려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이 그림을 보지 못하는 자들은 마치 삼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것을 마음껏 누리게 하시려고

태초부터 십자가를 계획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를 적용시키시는 것으로 주절거린다.

 

아담의 타락으로 저주가 세상에 임하므로

그 저주를 속량하기 위해 성자께서 오셨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해하는 저주는 질병, 가난, 불화 등등

말하자면 세상 사람들이 불행이라고 말하는 그것들이다.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저주가 속량되어

그를 믿는 자들에게 이제는 질병도 없고 가난도 없고

불화도 없는, 즉 불행이 없는 행복한 삶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천박함에 토악질이 나온다.

 

바울은 이러한 세상 행복의 조건들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럼 배설물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인가?

이들에게 시편 109편의 저주를 기원한다.

이것은 나의 저주라기보다는 바울이 갈라디아서 18절과 9절에서 선포했던 저주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다른 사람을 저주하면 되겠느냐고 한다.

C.S. 루이스도 시편의 저주를 이런 식으로 잘못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럼 예수님께서 특별히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저주하신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일례로 마태복음 2315절과 요한복음 844절의 저주를 보라.

예수님의 저주 선포는 불가역적이다.

 

사랑을 빌미로 저주를 거부하는 자들은 이단적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은 2세기의 이단이었던 말시온과 닿아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존 스토트가 소위 영혼 소멸설을 들고 나왔다.

이 지점에서 존 스토트도 말시온과 닿아있다.

말시온이 구약의 하나님을 악한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을 선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던 이유는 자신의 간음 때문이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에게 구약의 하나님은 간음을 용서치 않으신다.

그런데 신약의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다.

그는 자신의 평안을 위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구별한 것이다.

 

존 스토트에게는 사랑하는 누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누나가 예수를 믿지 않은 상태에서 죽었다.

정통 기독교 교리,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고수했던 교리에 의하면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영혼은 지옥 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한다.

존 스토트의 심령은 이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영혼은

영원히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소멸되는 것으로 심판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그 자체로 이해하고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나 인간적인 기준으로 해석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운데서 칠 천명남겨진 자를 보존하신다.

사실 그것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존 스토트 아니라 누구라도 한낱 지렁이 같은인간일 뿐이다.

그 누구도 추종하지 말고 성경 전체를 이해하고 그것을 겸허히 수용하며 순종하라.

 

위에서 그려준 성경 전체의 그림을 통해 세부적으로 나머지를 살펴보라.

나는 가능한 한 성경의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여주려 이 글들을 쓰고 있다.

성경의 시각, 성경에 근거한 세계관, 그 가치관을 온전히 정립하고

참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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