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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인가? 결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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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08-21 | 조회조회수 : 3,9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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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나는 존 듀이의 사상을 언급했다.

나는 존 듀이로 인해서 인간 세상의

모든 기본질서가 파괴되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학문의 본질과 질서가 무너진 것이다.

 

학문의 첫째 목적은 문리를 깨우치는 것이다.

그것이 기초학문을 이루고 그 학문을 성실히 연구하면 결과에 도달한다.

존 듀이의 사상 안에 기초 학문은 없다.

결과만 산출하면 된다.

그가 말하는 결과란 눈에 보이는 것이다.

 

결과란 제대로 된 동기와 과정을 거쳐서 나와야 한다.

(물론 인간 세상에서는 결정적인 실수가 오히려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먹는 시리얼이 그 예다. 약의 부작용이 오히려 다른 병을 호전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동기와 과정을 무시한 결과 지상주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동기와 과정을 무시해도 원하는 결과를 한두 번 얻을 수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간의 모든 정도(바른 길)를 파괴하는 말이다.

 

정도를 따라가면 언제나 서울에 도착한다.

그러나 로 가면 어쩌다가 한 번 서울에 갈 수는 있으나

다음에는 도착할지 못할지 장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인과율이 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의를 행하면 상을 받는다.

물론 세상에서 인과율이 늘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는 범죄한 인간이 오히려 잘 사는 일이 태반이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친일파가 대를 이어 떵떵거리고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분들의 자손은 단칸방 생활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한 때 절망한다(참조, 시편 73).

 

그러나 궁극적으로 인과율은 정확하게 적용된다.

범죄한 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

의를 행한 자는 반드시 상을 받는다.

 

시편 73편의 기자인 아삽이 절망했던 이유는

육체의 관점에서 인과율을 해석하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삽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73:17)

궁극적 인과율을 깨달았다.

 

존 듀이의 사상은 완벽하게 세상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도, 궁극적 원리도 몰랐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흙 시대의 시대정신이다.

 

우리가 금 시대라고 간주할 만한 시대의 플라톤도

궁극적 원리를 추구했다.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본질에 대한,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오늘날 본질과 진리는 그야말로 진흙이 되었다.

결과만 좋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범죄와 편법까지도 결과를 위한 수단으로 채용된다.

 

세상이 이렇게 타락할 때 크리스천은 어떠해야 하는가?

크리스천은 금, , , , 진흙의 시대정신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고(13:8)

하나님의 자녀는 그 분의 동일성에 참예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오직 하늘에 있다(3:20).

세상은 나그네와 행인으로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벧전 2:11).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천이라고 자칭하는 (나는 이들을 밤새 교인이라 이름 지었다)

사람들은 세상의 시민권을 가지고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교회는 존 듀이의 사상에 점령되었다.

 

결과 지상주의에 매몰된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세상이다.

목회학 박사 논문의 천편일률적 제목이 무엇인지 아는가?

OOO을 통한 교회성장」이다.

목회의 모든 목적이 교회성장이고 교인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OOO’에는 제자훈련, 새벽기도, 자녀교육 세미나,

부부관계 세미나, 행복바이러스 등등이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의 숫자만 늘어나면 된다.

어떤 것이 수단이고 어떤 것이 목적인가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인간 스스로정해놓은 결과만 얻으면 그만이다.

 

예수님 제자훈련의 목적이 교회 성장이었던가?

기도의 목적이 교회 성장이었던가?

성경적 자녀교육과 성경적 부부관계가 교회 성장을 위한 수단이었던가?

이 모든 것들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 백성의 성화다.

 

물론 이들은 그런 것들을 했더니 교회가 성장하더라고 주장한다.

늘 말하지만 처음 사람은 성장이 부차적으로 따라온 것을 계량화해서

논문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장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순간

진흙 시대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것이 들어오지 않는다.

인간 세상에서는 항상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는 법이다.

자연과학의 엔트로피 법칙과 함께 사회학에서 이것은

절대 불변의 진리다.

인간이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목회에 성공실패를 갖다 붙이는 사람들에게

성장은 곧 성공이요 교인의 감소는 곧 실패가 된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관점은 없다.

 

목회에는 성공과 실패가 없다.

하나님 앞에 신실 했는가 그렇지 못 했는가만 있을 뿐이다.

신실했다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것이고 신실하지 못 했다면

하나님께서 내치실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그를 기뻐하실 것이다.

 

크리스천에게 신실이란 동기와 과정이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심은 것은 동기다.

물을 준 것은 과정이다.

거기까지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결과를 맺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존 듀이의 사상에 매몰된 오늘날의 교회는

동기와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을 원한다.

하나님 영역인 결과를 자신이 거두려고 한다.

소위 비전이라는 말로 포장된 야망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취하려 한다.

이럴 때 편법이 동원되고 불법이 채용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야말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도 아니고 성도도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고 반역하는 것이다.

 

목사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신학교가 그것을 부추겼다.

위에서 말한 목회학 박사 논문은 목사들이 쓰는 것이다.

그것을 주도하는 자들은 신학교 교수들이다.

 

이 끔찍한 예레미야 시대를 보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동기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과정만

정직하고 우직하게 행하는 크리스천을 보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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