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목사의 목양칼럼] 왜 시간(세월)은 이렇게 빠르게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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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열심히 살아온 2025년을 마무리 짓는 송년의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필자만 빠르게 지났다고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주변의 모든 분이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주 카톡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어르신이 “목사님! 올해가 휙 하고 지나갔네요”라며 전해주셨습니다.
지난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서 교인들과 친교를 나누는 시간에 어르신들과 나누는 대화도 계절의 빠른 변화에 대한 것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2025년이 어느 해보다도 더 빠르게 지나갔다는 말을 주고받으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불현듯 생각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모두 행복한 해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염려와 심각한 근심이 있거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본인이 치료하기 어려운 병을 만났을 때는 본인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길고 지루한 매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30여 년 전에 K 권사님이 고향 분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기다리는데 예수를 모르는 분이라며 함께 방문해 기도해 주길 요청하셨습니다.
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너무 중하셨습니다. 온몸에 주삿바늘이 10개가 꽂혀 있었고 손발은 묶여 있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필자가 목회자인 것을 알고서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거절치 않으셨습니다. 절차에 따라 기도를 하려는데 개미 같은 작은 목소리로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시간만 더 살게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놀랐습니다. 기왕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면 구약의 히스기야 왕처럼 죽을병에서 오랜 시간 생명을 연장해 줄 것을 구하든지 아니면 1년이나 한두 달 더 살게 해 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루도 아니고 한 시간을 구했습니다.
그렇게 구하는 환자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매초 매 순간이 심각하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인데 한 시간을 더 살면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 묶인 몸이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병원에서 나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도 없습니다. 그 한 시간에 먹고 싶은 것을 먹지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한 시간을 구했습니다. 그때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인생이 그토록 원하는 삶이지만 사람마다 자기의 삶, 생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내신 이도 주님이시고 불러가시는 이도 주님이십니다. 이것을 인생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기도를 받으셔서 그 환자분은 10일 이상 중환자실에서 더 머물다가 가셨습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죽음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중환자 상태로 온갖 고통 속에 긴 세월을 병상에서 신음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러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자체가 지옥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죽지 않고 다 이 땅에 살아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추하고 냄새나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빠른 세월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표적입니다. 만일 극한 시험이나 환란을 당했다면 길고 지루한 해로 느꼈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가족의 질병이나 여러 가지 문제, 특히 경제적인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를 주시는 것은 인생이 무엇임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십니다. 도우시는 주님께 두 손 들고 달려 나와 길고 지루한 고통의 삶에서 빠른 시간으로 들어가길 축복합니다.
2025년 12월 1일
이상기 목사(평강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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