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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리쾨르의 『악의 상징』과 죄악의 3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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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3-11-17 | 조회조회수 : 2,4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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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 혹자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대답하기도 하고, ‘죄인’이라고 답하기도 합니다. 두 가지 모두 맞습니다. 또한 생각하는 존재이기도 하며, 행동하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종종 “이게 아닌데”라고 후회합니다. 그리고 “아아, 난 별수 없는 죄인이구나” 탄식하기도 합니다. 


    폴 리쾨르는 “의지 철학”(philosophy of the will)을 통해서, 인간은 결국 “결정하고 행동하는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이 의지적 인간이 가진 윤리적 한계 상황, 가류성(fallibility)은 결국 흠, 허물, 그리고 과실(過失, faults)로 열매를 맺습니다. '의지 철학 I'인 학위논문, 『의지적인 것과 비의지적인 것』(1950)에서는 죄와 과실에 대한 논의를 괄호 안에 가두어 둔 채, 인간의 결정 과정을 순수하게 서술하였습니다. 리쾨르는 10년이 지난 후에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려고 두 권의 책 '의지 철학 II-1,2'을 내었습니다. “인간의 유한성과 유죄성”이라는 주제로 『가류적 인간』과 『악의 상징』(Symbolism of Evil)이라는 책을 1960년에 발간하였습니다. 

       

    리쾨르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신자로서 “죄의식”의 문제를 풀어냄으로 자기 해석학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는 철학자로서 인간의 죄악의 문제를 재해석하되, 성경의 고백을 그리고 인간에게 오래 전부터 전승된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의 고백을 재해석했습니다. 그는 임마누엘 레비나스, 게오르그 가다머와 머치아 엘리아데와 같은 신앙을 가진 석학의 영향을 받으며,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차원의 생각’만이 아니라, 계시와 신화와 상징을 통해서 나에게 ‘생각이 나고 생각이 드는 차원의 생각”이 있음을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책 『악의 상징』을 관통하는 주제는 성경과 신화의 “상징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라는 천명입니다. 

       

    리쾨르는 늘 그러하듯이 성경에서 출발하지만, 성경 속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성경과 성경 밖의 문서에 다리를 놓습니다. 이로써 성경이 가르침이 해석되고 비교되며, 교양이라는 다리를 통과하여 모든 사람에게 이르도록 인도합니다. 그는 또한 프로이트, 마르크스, 하이데거나 하버마스를 차단하지 않고 그들과 대화를 시도함으로, 신앙의 확신이 비판적 담론의 세계에 배를 띄우도록 합니다. 바로 『악의 상징』이 그러한 싹을 보이는 대표적인 저술입니다. 

       

    죄나 허물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가졌던 저의 초신자 시절에 이 책은 죄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의 필요를 자극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오류를 범한 인간은 부르짖고, 고뇌하고, 탄식하고, 괴로워하며, 옷을 찢습니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나 고대 신화 속에서도 인간은 탄식, 괴로움과 슬픔의 고백으로 차 있습니다. 그런 비극의 이유는 오류와 과실 때문입니다. 

       

    리쾨르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인간의 과실을 밖에서부터 안으로, 외부로부터 내부를 향하는 것으로 보고,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부정(不淨, defilement), 죄(sin), 그리고 죄의식(guilt)입니다. 부정 타는 것은 타부(taboo)를 접촉하여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죄의식은 우리가 느끼는 과실을 범했다는 깨달음과 불안감입니다. 

       

    과실을 범한 자의 비참과 불행, 죄책과 오염은 인간의 무거운 굴레입니다. 하나님은 세세한 규정을 통하여 우리를 번거롭게 함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유를 주려고 씻음을 베푸십니다. 죄의식은 교육적인 효과가 있어서 우리를 인도하는 참조점이 되지만, 지나친 죄의식과 정죄는 자기-파괴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십자가의 피와 부활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악의 상징은 그리스도 안에서 씻음과 속죄와 상징으로 교체됩니다. 이것이 은혜의 복음이 가진 역할입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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