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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승훈의 書架멍] "神들과의 싸움: 고대 세계의 無神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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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4-01-02 | 조회조회수 : 1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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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게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다는 말이 있거니와 나에겐 먹고 싶은 거보다는 읽어보고 싶은 게 더 많다. 해서 이제부터는 New York Times best seller보다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우선 읽고, 다음 내가 느끼고 얻은 걸 쓸 생각이다. 결정을 하고 나니 벌써 여러 권 읽을 책들이 쌓였는데 그 중 제일 먼저 선정한 책은 無神論에 대한 책이다.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았지만 나의 신앙과는 전혀 관계 없이 신의 존재 여부와 관련된 책이라면 찬성이론이나 반대주장을 가리지 않고 나는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케임브리지대학, 그리스문화 교수인 팀 휘트마시(Tim Whitmarsh)의 이 책은 New York Times Book Review 표지에 서평이 오르는 대접을 받은 책으로, 나는 "神들과의 싸움: 고대 세계의 無神論(Battling the Gods: Atheism in The Ancient World)"을 ‘나의 關心事’ 첫 번째로 선정했다. 


    神들과의 싸움: 고대 세계의 無神論(Battling the Gods: Atheism in The Ancient World)

    Tim Whitmarsh, Knopf, 2015, 290pages


    이 책은 기원전 천년, 고대 그리스로부터 기독교가 국교가된 로마 시대까지를 넷으로 나누어 神의 존재, divinity / 신격과 권위를 부정했던 주장들을 살펴보고 있다. 無神論 하면 우리는 흔히 유럽의 계몽 주의, 산업혁명과 더불어 과학적 사고방식이 만연한 현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무신론적 주장은 새로운 것인가, 오래된 것이라면 그 내용은 현대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그리스의 고전 호머의 일리야드 말미에는 트로이를 지지하는 신들과 그리스를 지지하는 신들이 사람과 더불어 전쟁을 치르는데, 神들의 마음 씀씀이는 마치 사람의 그것과 비슷한 것을 보게 된다. 해서 고대 그리스에는 그것을 표현하는 ‘theomachy / 신들의 싸움’이란 단어까지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신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全知全能한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神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이 없는 우주의 가능성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 결과 그들이 주장하는 무신론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 책은 신을 부정하는 주장의 역사를 살피는 책이지만 역사책은 아니고, 또 철학적인 입장에서 무신론의 진실을 증명하려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정착되기까지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문명과 로마시대에 풍미했던 무신론적 주장을 살피면서 그 주장의 본질, 배경과 변화를 찾아보고 있다. 굳이 성격을 밝히자면 이 책은 종교적 회의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이라고 저자는 전한다. 다만 한 가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 책을 쓰기 위한 조사 연구에서 저자가 깊은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은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多元性(pluralism)과 자유스러운 논쟁은 좋은 생활(good life)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인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Archaic Greece), 고전적 아테네(Classical Athens), 헬레니즘 시대(The Hellenistic Era), 로마(Rome), 네 편으로 나누어 그 시대에 풍미했던 무신론 주장을 살피고 있다. 각 편이 펼치는 세부적 차이점이 일반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만 한 것은 별로 없다. 일반적으로 고대 사회에 풍미했던 무신론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역사상 처음 파괴될 수도, 분리될 수도 없는 가장 작은 실체(reality) 즉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는 원자(atom)라고 규정한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투스(460 – 370 BC)에 따르면, 자연 법칙을 설명할 수 없는 원시인에게 신은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현재 컴퓨터에서 쓰는 용어 디폴트(default) 즉 컴퓨터의 출하시 설정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표준 상태나 비슷하게 사람이 처음 생겨날 때 디폴트로는 신을 갈망하는 요소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신을 찾게 된다는 주장이다. 종교를 자연 현상(natural phenomenon)으로까지 여기는데, 뇌 일부에 종교적 충동을 부추기는 god spot이 있어 신을 찾는다는 현대 신경신학자(neurotheologist)들의 주장을 연상시킨다.  


    - 소피스트의 원조 프로타고라스(480 – 421 BC)는 "On the Gods"라는 글을 통해 인생은 너무 짧고, 분명하지 않은 것이 너무 많고, 지식조차 부족해서 신의 존재 여부나, 존재한다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알 도리는 도저히 없으며, 따지고 보면 그것은 사람이 알아볼 수 없는 不可知論的(agnostic)인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리스 의학의 원조, 히포크라테스(460 – 377 BC) 의학의 기본 前提(premise)는 건강은 각자 자신의 독특한 생리적 자질(physiological nature)에 따라 정해지는 것으로, 病은 신의 인간사의 개입 때문이 아니라 섭취하는 음식물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 그리스의 고전인 호머의 일리야드나 오딧세이는 신에 관한 많은 사연을 담고 있지만 그것은 종교의 교리를 기록한 經典(scripture)이 아니라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묘사한 책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교리를 설명하거나 무엇을 믿어야 한다거나 신으로 부터의 계시를 전달하는 사제(司祭)가 없었으며, 있었더라도 그들의 임무는 사원에서 시행되는 예식의 집전이나 재정 관리에 국한되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신학적 정통파적 신념(theological orthodoxy)를 강요하는 기관과 사례가 없었으며, 예루살렘, 메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와 같은 순례지도 없었고, 도덕적, 정신적 정통파적 신념을 강요하는 노력 또는 제도가 전혀 없었다. 그 결과 무신론은 관용되었으며,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격이 부여되기도했지만 무신론을 주장했다고해서 신성 모독죄를 적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스에서는 신의 역할은 극도로 미미했고, 신의 권위와 divinity를 주장하는 글은  없었으며 혹시 있더라도 그것은 이집트나 유태 문화와 관련되어 제한적으로 언급되었다.  


    -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것은 무신론자가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신이 있다는 증거를 대라는 질문이다.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해 가장 돋보이게 묘사한 표현은 노예 사이에 오간 대화이다. 신이 있다는 증거를 대보라는 질문을 받은 한 노예의 대답은 “내가 노예가 된 저주가 신이 있다는 증거 아냐?“였다고 한다.     


    - 한마디로 多神論 사회에서는 무신론에 대단히 관대했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렇다고 그리스에 무신론을 제재하는 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로 소크라테스(469 – 399 BC)는 市 당국이 모시는 神을 인정하지 않은 죄와 당시 법률 규정에는 없었지만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형장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신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죄를 입법화 시킨 법의 정신은 신학적이나 교리적인 것이 아니었고 도시 국가의 정신적 단결을 겨냥한 다분히 정치적 입법이었으며, 소크라테스의 경우 사형을 면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죽엄을 둘러쌓은 흥미로운 사실 두가지가 있는데;   

    - 적절한 시민의 의무는 국가가 만들어낸 규정 안에서 행동을 해야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재판을 통해서 생각까지도 그 범위를 벋어나면 안 된다는 역사상 첫 사례를 남겼다는 것,

    - 소크라테스는 신의 존재를 부인했던 무신론자는 아니고 나름대로 직접 신으로부터 오는 계시(sign from the gods – daimonion)을 믿고 있었다고 전한다. 모든 신앙의 핵심이어서 내게는 대단한 관심사지만 상세한 내용은 전해진 것이 전혀 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언어가 발달하고, 글자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神의 관한 모든 것은 문자를 통한 經典으로 등장하고, 多神論은 一神論(monotheism)으로 변했으며, 경전에 쓰여진 글 하나 하나는 모두 다 神이 mortals(신에 대해 죽게 마련인 인간)들에게 직접 내린 언약과 법칙이 되어 사람들이 준수해야하는 규정으로 변했으며, 경전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사제 계층이 생겼으며, 그들이 설정한 正敎的 신앙을 강요하게되었다. 해서 유태인, 기독교인과 회교신도들에게 경전에서 언급된 계명은 협상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야만 했고 지겨야만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경전에 명시된 모든 규률의 집행은 국법으로 다루게 되었다.   

       

    일단 옳은 종교와 틀린 종교를 가리는 패러다임 성립되자 무신론자가 설 자리는 없어지고 우주 철학적, 또는 철학적 언쟁은 격렬하게 계속되었지만 기독교 일신 체제(framework of Christian monotheism)를 벋어난 논쟁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무신론이라는 개념 자체가 신의 존재를 믿는 유신론에 대한 이성적 비판이라기보다는 단순히 기독교적 신의 대한 불신으로 간주되어 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는 서방 세계에서 무신론적 주장과 대화는 거의 천년 동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무신론의 분명한 浮上이 역사적 변칙(historical anomaly)은 아니다.  긴 역사를 거시적 안목으로 보면 일신교적 종교의 세계적인 지배가 변칙적인 것이며, 그것 보다 더 변칙적인 것은 그런 주장 때문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었다는 것이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조승훈 

    서울 고등학교, 고려대학 법과대학, University of San Francisco MBA.

    San Francisco 번화가 California & Pork Street 교차점 케이블카 종점 책방 경영

    1986~2018년까지, 한국으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책을 직접 선정해서 보냄 

    매주 주간매경 서평 8년, MBC 일요일 아침 “독서와 인생” 라디오 프로그램 3년 진행

    코미디언 마가렛 조(Margaret Cho)의 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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