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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사 복음과 잡탕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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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4-02-16 | 조회조회수 : 1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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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 역사학자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옥스포드대 학술원에서 강연을 한 바 있는데 어쩌면 그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이 강연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질문을 하였습니다. “아놀드 경, 당신은 오늘날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만약 미래에 그러니까 200, 300년 뒤 역사가들이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고 한다면 무엇을 꼽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2차 세계대전이나 공산주의 몰락이나 여성 인권 신장일까요? 우리 시대 최고의 사건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러자 토인비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동양의 불교가 서양으로 건너가 기독교를 대체하는 일이지요.” 너무나 의외의 답변 앞에 청중들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서구사회에 여전히 기독교 문화가 주류였던 당시에 서구문화 속 동양종교의 역습이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이라 내다 본 토인비의 혜안에 놀라울 뿐입니다. 이것은 역사학자의 식견을 넘어선 예언가적 통찰에 가깝습니다. 사실 토인비는 단순한 역사가가 아니라 사상가, 더 나아가서는 인류에 메시지를 던지는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서구인들의 동양철학과 종교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작가, 예술가,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동양종교를 통해 세상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토인비의 역사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은 독일 역사학자 오스발트 A. G.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입니다. 이 책을 읽고서 토인비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에게 있어 서구의 몰락은 기독교 정신의 몰락을 의미합니다. 토인비는 슈펭글러의 이론을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으로 수정했습니다.


    모든 문명이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하는 문명은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토인비는 하나의 단서, 곧 한 번의 응전에 성공한 엘리트 집단은 또다시 응전에 성공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견해를 달았습니다. 과거 성공에 매몰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창조적 소수가 바꾸지만 일단 성공한 창조적 소수는 자신들의 성공 방식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토인비의 역사관은 하나님의 구속사관과 궤를 달리하지만 서구사회의 종교다원화에 대한 통찰, 종교다원화로 인한 도전과 위기에 대한 식견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와 문명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 논하려 하는 것은 토인비의 역사관이 아니라 다원사회와 종교다원주의 문화 속 기독교의 정체성 위기에 관한 것입니다. 다원화된 현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특히 다원사회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종교와도 불가분 관계를 맺습니다. ‘종교 다원’은 이 시대의 주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에 동양 종교와 사상은 물론 온갖 다양한 문화와 사조가 유입되면서 기독교 기반 문화는 약화되고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라는 말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신교, 가톨릭, 유대교밖에 모르던 서구사회에 다양한 종교 전통을 지닌 아시아 인구가 유입되면서 종교다원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시아 인구의 유입보다 종교다원현상을 더욱 가속시킨 것은 전 세계를 단일체로 이어준 인터넷 보급으로 인한 여러 다양한 종교 전통의 지구촌 공유에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다원현상을 하나의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여겨 다른 종교로부터 기독교 복음이 서있는 독특성, 유일성, 계시성을 버리는 것은 기독교 토대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반(反)복음적 행위입니다. 이러한 급진적 이념 운동을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라 합니다. 종교다원주의란 종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절대 종교란 있을 수 없고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사상이고 이념입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하자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다원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일상 속 경험하고 있는 심각한 도전은 ‘그리스도인 됨’에 대한 문제입니다. 다원사회 속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규정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가? 이러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시도한 ‘제1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게 하라’는 신앙의 본질 회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20세기 초 에큐메니칼(ecumenical), 즉 교회일치 운동가에 의해 시도된 소위 ‘제2의 종교개혁’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 하라’는 교회의 본질 회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제3의 종교개혁’은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회복’과 관련됩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촉발한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 궁정교회 출입문에 내건 이후 50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서구문화와 궤적을 같이하면서 그것의 큰 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1세기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기독교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큰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거센 도전 앞에서 개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지, 아니면 힘없이 무너질지는 21세기 다원사회 속에서 기독교가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복음인데 유사 복음이고 기독교 영성을 표방한 듯한데 온갖 요소가 섞인 잡탕 영성이 더욱 위험한 법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부단한 개혁’입니다. 내리막길에 있을 때에도 복음과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정체성을 견지하면서 개혁해 나간다면 우리는 오르막길로 겸손히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부침, 즉 성하고 쇠할 때가 있듯 기독교 역사도 그러합니다. 기독교 역사는 요철 닮은 역사입니다. 숱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기’라는 단어에는 ‘위험’과 ‘기회’라는 의미가 함께 있습니다. 위기를 호기(好機)로 역전시키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요구됩니다.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복음 전파의 사명은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면서 복음전파를 포기하자 주장하는 일부 리버럴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입장은 결코 성서적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다른 종교와의 대화 수준을 넘어 혼합하려는 시도나 기독교적 알짬을 버리는 행위는 바울이 저주한 ‘다른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7). 기독교적 정체성을 잃은 이도 저도 아닌 잡탕 영성에 물들지 않도록 21세기 현대 교회를 흔들어 일깨우는 각성제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이상명 목사(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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