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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과에서 만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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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4-02-26 | 조회조회수 : 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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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중에 치아 치료를 위해 치과를 찾았습니다. 진료 의자에 앉자, 모니터를 통해 제 치아를 촬영한 X-ray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사진에는 세월과 함께 낡아가는 치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30여 년 전 미국에 오기 전에 급하게 치료한 치아는 오랜 세월을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얼마 전에 임플란트한 치아도 하나 보였고, 깨진 치아를 치료한 흔적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어금니에 금이 가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찬물을 마실 때마다 시려오더니, 나중에는 시도 때도 없이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치아가 쪼개졌습니다. 치과에서는 치료를 위해 쪼개진 작은 조각을 떼어내더니 신경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취를 하고 신경 치료를 위해 이리저리 뒤적이던 의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신경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치과에서 치료받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방문한 신경 치료를 전문으로 한다는 의사 선생님은 최신 장비에 전문적인 손놀림으로 잇몸 깊숙이 뿌리내린 작은 신경 줄기마저 완벽하게 제거해 주셨습니다. 이제 신경 치료를 마치고 크라운을 씌우기 위해 다니던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마취하고 신경 치료 후에 막아두었던 보호막을 제거했습니다. 크라운을 씌우기에 적당하게 치아를 깎느라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다시 몇 번의 과정을 더 거친 후에 본을 뜨기 위해 입 속에 본뜨는 재료를 가득 넣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이렇게 5분 동안 가만히 계셔요.” 의사 선생님은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나가셨고,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데, 이물질이 입 안쪽에 가득 차 있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뾰족하고 딱딱한 물체가 입천장을 찌르고 있었기에 5분은커녕 5초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못하겠다고 하면 본뜨는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텐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꼼짝없이 진료 의자에 누워서 더디게 가는 고통의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데, 갑자기 주님이 지신 십자가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견뎠는데, 너는 이 작은 불편도 못 참겠다고 아우성치냐?’라고 주님께서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입 속은 계속 답답했고 입천장을 찌르는 고통은 여전했지만,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진료실 한쪽에서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교회 장로님이신 의사 선생님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환자들을 돌보면서, 불안해하는 환자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기 위해 틀어놓은 찬양이었습니다. 그전까지 들리지 않던 찬양이 치과에서 만난 십자가를 생각하는 순간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스피커에서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찬양의 후렴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입을 벌릴 수 없었기에, 마음속으로 찬양을 따라 불렀습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 내 영혼이 찬양하네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 내 영혼이 찬양하네’ 


    이 찬양의 가사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모든 세계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했습니다. 2절에서는 숲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에 담긴 주님의 놀라운 솜씨를 기억하면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했습니다. 


    그날 제 마음에 와닿은 가사는 3절이었습니다.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 우리를 위해 / 보내 주셨네 /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주 / 내 모든 죄를 대속하셨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시므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겠다는 감격의 고백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본을 뜨기 위해 입 속에 넣었던 물질을 꺼내자, 드디어 고통이 사라지고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제 고통은 그야말로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작은 불편함에 불과했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므로 우리의 죄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고난의 때를 지나는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이 회개와 절제, 묵상과 기도, 금식과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창민 목사: 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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