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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집사람’과 세계여성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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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4-03-18 | 조회조회수 : 6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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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통하지만 외국에 없는 단어가 재벌(Chaebol), 먹방(Mukbang), 애교(Aegyo), 집사람(Jib-Saram) 등등이라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가 외국에는 없지만 한국 사람들이 대량유통하고 있는 단어중 하나가 ‘집사람’인데 예컨대 한국에서 일하는 30대 여성이 70%에 달하고 있는데도 호칭은 여전히 ‘집사람’이냐고 비꼬는 듯 지적질을 했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아내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라면서 사회에서 기대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한국의 뿌리 깊은 견해는 집사람이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여성의 직업적 열망과는 상관없이 여성들은 여전히 집사람이 될 것을 기대 받고 있다고 했다.


    아이고, 나도 평생 아내를 두고 집사람이라고 불러왔거늘 무슨 커닝하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래가지고 그 기사를 다시 읽어보곤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가 집사람이라고 부른다 해서 집구석에 처박혀 집이나 지키라고 문을 걸어 잠그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나는 바깥사람이니 당신은 집사람답게 빨래나 부엌일만 하라고 묶어두길 했는가? 특별히 이민와서 사는 우리네는 오히려 집사람이 바깥사람이 되고 바깥사람이 집사람이 되어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 집이 그렇다. 집사람이 경제활동(?)을 더 많이 해서 나보다 수입이 많고 나는 그 수입에 빈대 붙어 살아오고 있지 않은가? 그럼 나는 집사람이 되고 아내가 바깥사람이라고?


    그 지적을 길게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다. 다만 집사람이란 말은 땅에 물 스미듯 우리 문화 속에 뿌리내린 정감이 넘치는 고유명사란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절대로 직장을 갖지 말라는 뜻도 아니고 여성 경시는 더욱 아니고 가부장제도의 병폐 따위도 아니다. 내 생각은 그렇다.


    지금 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 수많은 기념일 중에 ‘세계 여성의 날(IWD)’이 있다. 지난 3월 8일이 그날이었다. 유엔(UN)이 인정하는 연례 기념일이다.


    그 기원은 1908년 뉴욕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성 1만5000명은 거리로 나와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투표권 보장 등을 외쳤다. 그리고 1년 뒤, 미국 사회당은 최초의 전국 ‘여성의 날’을 선언했다. 이후 여성의 날을 국제 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 인물은 인권 운동가인 클라라 제트킨이라는 여성이다.


    제트킨은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여성 노동자 국제 컨퍼런스’에서 이같은 생각을 제안했고, 그 자리에 참석한 17개국 출신 여성 100명이 만장일치로 이에 동의함으로 세계여성의 날이 탄생되었다.


    가만있자, 1908년 뉴욕의 여성들이 임금인상과 투표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럼 116년 전에는 여성에게 투표권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니키 헤일리란 여성이 공화당 대통령 예비경선에서 트럼프와 맞장 뜨다가 결국은 지난주 중도하차를 선언했지만 그 인도 이민자 출신의 ‘거침없이 하이킥’은 얼마나 위대했는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여성에게 대통령 출마? 그건 말도 안되는 ‘깨몽’이었고 겨우 투표권을 달라고 데모하던 시대였다. 여성의 날이 이루어낸 공헌 때문인가?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미국은 아직도 여성 대통령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한때 힐러리 클린턴이 벼르고 나섰지만 실패했다. 한국은 다르다. 여성대통령을 탄생시킨 위대한 나라 아닌가? 한국은 미국보다 훨씬 더 깨어있는 쪽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걸 보면 집사람이란 말을 놓고 그냥 집에 가두고 싶어 하는 한국남성들의 사회적 통념으로만 관찰하는 것은 좀 피상적이란 생각이 든다.


    미국에선 아예 3월을 ‘여성 역사의 달(Woman’s History Month)’로 지킨다. 금년의 주제는 ‘형평성, 다양성, 포용성을 옹호하는 여성’이다. 이런 여성들의 끊임없는 권리쟁취의 역사를 우리는 응원하고 호응해야 한다. 그게 너무 앞서가다 못해 래디칼 페미니즘으로 기우는 것은 좀 그렇지만...


    이 여성역사의 달에 오히려 우리는 학교 갈 권리조차 없는 세계 속의 여성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프칸의 탈레반은 초등학교 이상의 여자들이 학교에 가면 길을 가로 막는다고 한다. 당연해야 할 교육의 권리가 여성이란 이유 때문에 박탈당하고 있는 곳이 어디 거기 뿐일까?


    아프리카 수단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피난길에 오른 90%가 모두 여성이라고 들었다. 평생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일부다처에 말 한마디 불평도 못하고 천대 속에 살아가는 이슬람 여성들이나 먹을 것이 없어 기절할 듯 거리를 떠도는 북한 꽃제비들의 현실은 또 얼마나 참혹한가? 여성이란 이유 때문에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는 이 세상의 불쌍한 여성들에게 하나님의 각별하신 가호가 임하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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